<시민교육센터 교육학 기고 3>
교육과 비교육(1) : 교육과 교육이 아닌 것
(교육에 대한 학문적 이해로의 진입)
[18] 제가 애초에 드린 강의계획서는 어떻게 보면 강의하려는 지식의 논리적인 순서가 강조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경험구조가 논리적인 순서로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본 강의에서 다루어지는 교육관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강의계획서에서 제시된 순서와 함께 공부하시는 분들의 경험의 순서를 함께 생각하면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more..
[19] 먼저 이제까지 제가 여러분께 부탁 드린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i) 스스로의 교육관을 적어볼 것
ii) 본 강의에서 제시되는 교육관과의 불일치를 잘 살펴볼 것
입니다. 제가 드리는 참고자료들은 ii)를 하시는 데에 참고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참고자료는 시간이 되시는 대로 읽으시길 바라고, 오늘은 저의 짧은 글로 ‘불일치꺼리’를 하나 제공하고자 합니다. 사실 ‘불일치’라는 것도 상대적이라, 이 글을 읽고 불일치를 느끼실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겠지요. 대화하는 상대방의 상황을 고정시켜놓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일방적인 강의의 맹점일 것입니다. 어쨌든 이 글과 자신의 교육관과의 불일치점을 찾을 수 없더라도 본인의 교육관과의 불일치를 발견할 수 있는 글들을 찾아 꾸준히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 오늘은 ‘비교육’ 이라는 용어의 쓰임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비교육’ 이라는 용어의 일반적인 쓰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이 용어를 학문적으로 사용할 때에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앞서의 강의에서는 ‘교육’이라는 용어가 여러 가지 ‘맥락’ 속에서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요. 우리가 ‘배’나 ‘상’ 등의 동음이의어를 일상 생활의 여러 가지 맥락 속에서 잘 사용하는 것처럼 {1}, 본 강의에서 ‘교육’이나 ‘비교육’ 등의 용어가 학문적인 맥락 속에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해서 여타의 맥락에서의 해당용어의 사용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맥락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구분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교양이라는 것이 본 강의에서 제시할 다원주의적 입장이기도 하지요.
[21] 그럼 본격적으로 ‘비교육’ 에 관한 이야기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맥락들을 떠올려 보는 것에서 시작하도록 하지요. 예를 들어, 가정에서 부모가 또는 학교에서 교사가 아동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비교육적’이라고 하거나, 학부모가 교사에게 촌지를 건네는 행위 등을 ‘비교육적’이라고 하는 생각은 신문이나 일상의 대화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요. 또는 보통 ‘주입식 교육’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에게 특정 형태의 지식을 암기하도록 강요하는 ‘교육방식의 일종(?)’ 이 ‘비교육적’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일상에서 ‘비교육’ 이라고 불리는 행위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편의상 체벌, 촌지, 강요된 암기, 이 세 가지의 예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특정한 ‘비교육’ 을 염두에 두셔도 좋습니다.
[22] 어쨌든 위와 같이 상식적인 맥락에서 ‘비교육’ 을 논할 때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점은 대단히 부정적인 정서적 반응과 흥분이 동반된다는 것입니다. ‘교육이 잘 되려면 이 비교육들이 없어져야 한다’ 고 하거나, ‘없어져야 할 비교육들이 (대개 학교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 라는 등의 방식으로 ‘교육문제’ 가 정의되기도 합니다.
[23] 그런데 여기에서부터는 이 ‘비교육’ 들에 대해서 그리 통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육문제는 비교육들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비교육들은 없어져야 한다.’ 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논지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우선 몇 가지 질문을 시도해 보지요.
i) ‘비교육’ 은 나쁜 것인가? 또는 ‘교육’은 좋은 것인가?
ii) 통상적으로 ‘비교육’ 라고 불리는 현상들은 그것이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나쁜’ 것인가?
iii) 이러한 ‘교육’과 ‘비교육’ 의 구분이 진위판별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되는 학문적 논의에서도 유용한 구분이 될 수 있는가?
[24] 여기에서 i) 의 질문은 통상 이루어지는 ‘비교육’ 논의들의 기본적인 전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이 논의들이 전제로 삼고 있는 생각이 ‘교육은 무조건 좋은 것이고, 비교육은 무조건 나쁜 것’ 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따라서 체벌이든, 촌지전달이든, 암기를 강요하는 것이든 그것이 어떻게 나쁜 것인지 이유를 자세하게 밝히지 않아도 ‘비교육적’ 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면 옳지 않은 것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25] 그러나 사실 어떤 것이 좋기만 하고, 그것이 아닌 것은 나쁘기만 한 경우는 꽤 드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와 경제 두 가지를 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단, 정치나 경제가 각각 마냥 좋기만 하다거나 ‘비정치’나 ‘비경제’는 각각 마냥 나쁘기만 하다는 생각은 상당히 낯선 생각입니다. 또는 경제는 정치에 대해서는 ‘비정치’ 이며, 정치는 경제에 대해서는 ‘비경제’ 인데, 경제는 ‘비정치’ 이기 때문에 좋지 않고 정치가 ‘비경제’이기 때문에 좋지 않다는 생각도 언뜻만 보아도 황당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교육’ 을 다루는 장에서는 당연하게 통한다는 것은, ‘교육’ 이라는 것이 아주 특별한 것이거나 또는 그 생각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6] 당장 체벌이나 촌지전달, 강요된 암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인 사람에게는 [25]번의 문제제기가 더 황당한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는 이러한 논의를 제기하는 사람을 체벌이나 촌지전달을 없애는 운동에 반대하는 사람으로 여겨 아군보다는 적군으로 분류하고 무시하거나 공격하는 수도 많습니다. 이것은 일견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25]의 사고방식은 체벌이나 촌지전달을 없애는 것과는 다른 가치에 종속된 사고방식이며,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전환할수록 체벌폐지와 같은 목적의식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체벌이나 촌지전달이 사회의 선을 늘리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면, ‘비교육’을 ‘교육이 아닌 것’으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진위를 가리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27] 또 [25]와 같은 논의는 전자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논점일탈에 해당하기도 합니다(이러한 논점일탈이 전자의 입장에서 낭비적이기만 한지 또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강의의 뒷부분에서 또 다루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 글에서 독자에게 원하는 것은 이러한 논점일탈입니다. ‘비교육’ 과 같은 말을 문자 그대로 따져보는 것이 진위를 따지는 데에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서는 ‘교육’, ‘비교육’ 의 개념을 문자 그대로 써 보는 것을 통하여 ‘교육’과 ‘비교육’ 의 언어가 사용되는 통상적인 언어게임에서 일단 빠져 나오고자 합니다. ‘비교육’ 을 단순히 ‘교육이 아닌 것’ 으로 한 번 다루어 보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교육’ 에는 체벌, 촌지전달, 암기의 강요와 같은 통상적으로 좋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 외에 정치, 경제, 사랑, 일 등이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28] 통상적으로 ‘비교육’ 을 논의하는 방식에서 ‘교육은 무조건 좋고, 비교육은 무조건 나쁘다' 는 전제 외에 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어긋나는 것에 무분별하게 ‘비교육’ 이라는 딱지를 붙여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무분별하다’ 는 것은, 그것이 일관적인 의미를 구성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체벌, 촌지전달, 암기의 강요가 모두 ‘비교육’ 이기 때문에 나쁘고, 이것을 개선하는 것이 교육을 개선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여기에서의 ‘교육’은 ‘체벌을 하지 않는 것, 촌지를 전달하지 않는 것, 암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 됩니다 {2}. 그렇다면 여기에서 정의되는 ‘교육’은 앞에서 제한해서 논의하기로 한 세 가지 예에 한정되지 않는 수많은 ‘비교육’ 의 수만큼의 많은 가치들을 포함하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교육이 포함해야 할 어떤 것의 ‘수’가 많다는 것이 교육의 의미를 구성하는 데에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열거되는 수많은 것들이 ‘한 가지 종류’로 포괄될 수 있는 것이라면 ‘교육’ 이라는 한 가지 의미로 소통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비교육’ 의 반대쪽에 있는 수많은 좋은 가치들이 교육이라는 한 가지의 것으로 묶일 수 있는지가 의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29] 이제 ii)의 질문을 다룰 차례가 되었습니다. [28]에서는 ‘비교육’ 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의 반대편에 있는 좋은 것들은 모두 교육이라는 한가지로 묶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제시했지요. 이 의심이 맞는 것이라면, 체벌, 촌지전달, 암기의 강요 등은 교육과는 다른 가치의 측면도 포함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이러한 것들은 사실 ‘혼질적’ 인 가치들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다음 글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 즉, ‘비교육’ 이라고 불리는 체벌, 촌지전달, 암기의 강요 등이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는 것 외에도 그것이 좋고 나쁘고를 따질 수 있는 보다 많은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30] 물론, 이들이 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나쁘다기 보다는 교육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쁘다는 의견이 가능하지만(‘비교육’이라는 말은 일종의 비유어일 뿐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 어떤 것이 교육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나쁘다는 것 또한 특이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논리는 교육에 악영향을 줄 때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경제논리가 전반적으로 나쁘다고 한다면 역시 부당한 의견이 될 것입니다. 경제논리로 발전된 경제가 교육에 필요한 자원을 풍부하게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체벌, 촌지전달, 암기의 강요 등이 ‘나쁘지 않다’ 고 설득하려고 하는 것은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보다는 이들이 ‘한가지 의미에서 전적으로 나쁘거나 전적으로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체벌은 교육에 악영향을 주는 것 외에도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라는 의미에서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으며, 또는 위험한 행동 등으로부터의 아동의 즉각적인 보호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또한 체벌에 반대하거나 촌지전달을 막는 행동에서 약간 거리를 두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생각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체벌이 단지 비교육적이기 때문에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선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31] 결론을 말하자면, [27]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에 체벌은 기본적으로는 사랑, 일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미에서 ‘비교육’ 일 수 있으며, 그것이 ‘비교육’ 인 것과는 별도로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32] 본 강의에서는 ‘교육을 학문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 에게, 자신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가치에 반대하는 것이 ‘비교육(적)’ 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교육문제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조금 거리를 두는 것에서 시작하기를 권합니다. 교육과 교육이 아닌 수많은 것들과의 경계가 있다는 것의 의미로서 ‘비교육’ 이라는 용어를 한 번 사용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한 번 생각해 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교육과 교육이 아닌 것의 경계를 짓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자연히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이 방법에 대한 공부는 다음에 올 두 개의 글, 기존에 교육학이 가져왔던 오류의 반성에 대한 두 개의 글을 통해서, 그리고 구조주의를 비롯한 기존의 학문의 방법론 공부를 통해서 할 수 있게 될 지 모릅니다.
2007. 4. 1
김신애
{1} 예를 들어, 우리는 “배 먹었어?”, “배 탔어?”, “! 배 아퍼?” 라는 문장 속에서 동음어인 ‘배’를 각각 다른 의미로! 인식합니다 . 같은 소리가 나는 용어라 할지라도 ‘먹었어?’, ‘탔어?’, ‘아퍼?’ 와 연결되면서 의미의 구속(한정)을 받는 것이지요. 이 부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논의는 뒷 부분에서 <의미의 구조성> 을 논하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학문과 교육(상)’ pp. 522-532 (3.3. 인식 대상의 구조) 부분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물론 대상의 구조는 그것을 지칭하는 언어의 구조와는 다를 것이고요. 저는 이 글에서 대부분의 예를 ‘교육’과 직접적인 것으로 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 책과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참고문헌을 읽으시면 보다 일반적인 예들(단순지각의 구조성, 의자의 구조)과 소쉬르, 오우크쇼트와 같은 철학자들의 생각에도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깊이 공부하시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같은 책 pp. 852-893 (5.5. 구조주의적 방법) 부분을 더 읽어 나가십시오.
{2} 여기에서 ‘체벌을 하지 않는 것, 촌지를 전달하지 않는 것, 암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 을 합한 것이 교육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이 영향을 주는 어떤 것이 교육이라는 의견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관계를 고려한다면 그것은 이미 그 영향을 주는 것과 교육이 서로 다른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체벌을 하지 않는 것, 촌지를 전달하지 않는 것, 암기를 강요하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비교육’ 이 되어버리므로, 체벌, 촌지전달, 암기의 강요 등이 ‘비교육’ 이기 때문에 나쁘다는 논조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education3.t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