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관련한 게시판 자료 백업입니다.


2007/09/20 
울리히 로스
      한국교육 잡생각2
요즘 아이들이 평생 만나는 선생님은 몇명일까?
평생 2-3명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든다.
한국 공무원 90만명 중 약 33만명이 교육공무원이라고 한다.
옛 것을 돌아보거나 다시 살리는 문제를 고민하는 모양인데...
난 서당식 교육이 자꾸 생각난다.

 
이한
 
 어떤 연유에서 2-3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좀 더 자세히 써주시면 다른 분들도 함께 고민에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몇만명 중에 몇만명이 교육공무원이라서 너무 많다는 막연한 판단보다도 그 몇십만명이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겠지요.
실제로 그 많은 수의 교육공무원들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탈숙련화된 일입니다. 즉, (1) 교과서를 강의하고, (2)학생들을 교실에서 통제하고, (3)시험문제를 제출하고, (4)시험답안지를 채점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3)과 (4)는 작위적인 학교활동이기 때문에, 직무별능력평가제도가 정착된다면 제거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아무 가치도 갖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에 밀착되어 그들의 관심사와 소질을 파악하고, 각 단계에 맞는 도전을 제시해 주기 위하여 내부적 평가를 하는 인력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2)의 경우에는 단순히 학교활동에 맞춰서 학생들을 '통제'하는 일이 아니라, 그 학생들의 학습을 '촉진'하는 일에 쓰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만한 인력은 여전히 필요하겠습니다.
(1)의 경우에 대부분의 시간이 쓰여지고 있는데, 이것은 책과 mp3, 동영상, EBS 교육방송이 존재하는 시대에 중복된 일입니다. 학생들이 같은 시간에 각자에게 우연히 할당된 교사의 강의가 아니라, 전국에서 그 과목을 제일 강의잘하는 사람들(학습자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강의자가 여러명이고 이론의 여지가 있는 지식의 경우에는 각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여러 강의가 병존할 수 있지요. 그리고 이들 최고 강의자 군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서 바뀔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강의내용도 매년 갱신되겠지요) 것을 듣는다면 더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음은 분명합니다. 칠판에 쓰는 것들의 대부분은 교재를 충실히 만들면 대체할 수 있고, 보충적으로 동영상과 그 밖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각 반마다 대형 프로젝트를 설치하지 않더라도 효과적인 강의의 개별 학습은 가능합니다. 결국 정해진 시간 강의를 자신의 수준에 맞추어 듣게 하고, 교사인력은 학습자와 상담하고, 내부평가하며, 다음 단계를 제시하고, 소질을 파악하고, 동기를 이끌어내고, 전국에 내어놓을만한 자신의 강의를 준비하는 데 써야 할 것입니다. 한 명의 세계사 교사가 세계사의 전면에 걸쳐서 최고의 강의자가 되기는 힘들지만, 한 섹션만이라면 부단한 투자를 통해서 최고의 강의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예술품이라면 공공재로서 공급되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이런 공공재를 공급하는 사람이 2-3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울리히 로스   
 제가 2-3명의 선생님을 말씀드린것은 평생의 스승개념에 가깝습니다. 물론 지금도 친하게 평생 연락하는 선생은 있을 수 있지만 학문적 생활적으로 의식하고 영향을 미치는 선생은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지금의 학교체제가 초 중 고 그리고 매년 1년단위로 나뉘는 것이 마치 허들경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남에서 유행한다는 선행학습등도 결국 허들경기를 미리 예행연습하는 것이고, 이는 종목의 특성상 미리 연습해 본넘이 유리하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매년 바뀌는 담임선생이라는 제도가 오히려 대다수의 부모나 학생에게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줄 뿐만 아니라 우왕좌왕하게 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상당수는 제대로 경기도 파악 못하고 낙오되는 것이죠. 매년 학년이 바뀔때마다 책 과 노트 다 버리고 새 책 새 노트로 바꾸고.... 아래에서 말씀드린 중1 학생에게 제가 3공노트를 권하고 지식을 차곡차곡 축적하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었는데, 대번에 학교에서 이런 공책쓰지말라고 야단 맞았다더군요.  옛날에 수학정석이나 성문종합영어가 인기있었던 이유도 결국 한권에 전체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선생도 좀 그런 체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서 과거의 서당이나 서양의 도제시스템등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도구는 이미 과잉성장상태이니 선생과 학년을 세분해서 나누는 것이 오히려 혼란을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끄적여 본것입니다. 물론 교육공무원이 무조건 많다고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인원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알지도 못하니 판단하기에는 이른상태입니다.
 
이한
허들경기=특 히 같은 연령대의 학생과 함께 정해진 시간에 쳐야 하는 시험=을 강요하는 체제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겠지요. 그리고 각 허들 코스마다 담당자가 있는 것을 보고 '평생의 스승'이 너무 많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구요. 정확하게 말한다면 '허들 경기 주관자와 채점위원'은 수십명이 존재하는데, 학문생활의 모범이 되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당이나 도제시스템을 탐구해서 뭔가 더 구체적인 통찰을 이끌어내는 작업도 흥미롭겠지요. 그렇지만, 일리히도 도구의 성장 자체를 불신한 것이 아니라 과잉성장을 불신하였듯이, 도제시스템과 같이 마스터에게 독점적 권력이 주어져 있는 제도보다는, 도서관같이 누구나 접근가능한 공생적 제도가 더 선호할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친절하고 능력있는 도서관 사서와 같은 학습의 보조자는 그러한 공생적 도구의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존재일 것입니다.
한편, 탈학교사회에서 일반적 의미에서 '교사'는 '학습보조자'의 역할을 진정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데, 이 때 학습보조자가 모든 단계에서 통합되어야 할지, 아니면 단계별로 좀 나뉘어져야 할지, 아니면 학습보조자 자신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지는 섣불리 말하기 힘듭니다.
1년마다 학습보조자를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겠지요. 지금 학교체제에서 담임교사가 계속 바뀌는 것은, 단지 통제와 채점의 담당자가 바뀌는 관료적이고 탈숙련화되고 기계화된 업무 담당자의 교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선생'이 바뀐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학습보조자 개념이 전혀 없으니까요.
그러나 탈학교사회라고 하더라도 주요학습보조자는 3-4년마다 바뀔 수 있고 분야에 따라 빨리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 커리큘럼을 세팅해주는 사람은 각 분과에 대해서 깊이 있는 이해를 가지기 힘들고 각 분야의 스승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은 영어와 관련하여 지식전달능력과 학습촉진능력을 중점으로 갖고 있는데 학생이 전통 한복 만드는 기술을 배우겠다 하면 거기 데려다주고 때때로 배움의 진척상황을 흥미롭게 물어보고 상담해주는 것 이상을 하기는 힘들겠습니다.
존 롤즈가 많은 대학원생과 박사과정 연구자들에게 학문과 삶의 모범으로서 영감을 주었다 하더라도 고등학생중학생초등학생에게까지 유효하리라 생각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또 존 롤즈가 그렇게 시간이 많았다고 할 수도 없구요.
마지막으로 제도를 합리적으로 짠다 해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것이겠지요. 모든 사람에게 존경할만한 2-3명의 스승과 직접 인간관계를 맺고 일생동안 교류하게 한다는 것은 제도로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일단 필요 인구당 학문적 생활적으로 존경할만한 사람이 너무 적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친분관계를 맺을 기회를 한번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배움과 관련하여 존경할만한 사람들은 모두 책을 통해 만날 수 밖에 없는 실정이지요. 그러나 그것도 나름대로 좋습니다.
한편, 교육적 관계에 대해 별로 고민하고 있지 않은 후학자를 선학자가 억지로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자신의 인생관과 태도로 인해 스승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결국, 제도를 고민하는 사람은 교육적 관계에서 가르치는 쪽에 있는 사람과 배우는 쪽에 있는 사람 양쪽의 약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교차적이고 중층적인 배움의 관계 설정으로 교육적 경험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위에 글이 좀 명확하지 않은데 그러니까 지금 학교체제의 교원이 하는 일은 두 가지로 기능적으로 분리되는 것입니다. (물론 동일한 인물이 두 가지를 다 담당할 수는 있겠습니다)
(1) 학습보조자: 그 학습자의 전반적 커리큘럼을 세팅하고 다음 단계의 도전을 제시하는 일
(2) 선학자: 특정한 분야에서 먼저 배워서 적절하게 가르치는 기술이 있는 사람. (i)특별히 곁에 두고 가르치면서 세밀한 교육적 교류를 나누는 경우 (ii) 특정다수나 불특정 다수 상대로 강의자료를 생산하는 경우
선학자가 학습보조자의 역할을 모두 떠맡게 할 수도 없고, 학습보조자가 선학자의 역할을 모두 떠맡게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학문의 모델이나 삶의 모델은 살아가면서 자연히 누군가를 찾게 되겠지요. 모든 스승의 요소를 인격화한 존재를 전제로 제도를 짤 필요는 없겠습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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