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기능 중 중요한 것이 분쟁의 해결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B, C라는 사실이 있으면 X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 공지되어 있을 때, A, B, C 사실을 두고 있는 두 당사자 갑과 을은 법원으로 갈 필요 없이 이러한 결론을 토대로 자신들의 분쟁을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한국은 경제규모가 더 큰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보아도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건수가 지나치게 많다. 왜 그럴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둘 다 '상식적인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하나는 A, B, C라는 사실이 있는가 자체에 대해서 다툼이 심하기 때문이다. 꼭 한 쪽이 사실관계를 왜곡하여 주장한다. 예를 들어 돈을 빌렸는가 빌리지 않았는가와 같이 간단한 사실도 다툼이 된다. 그러면 다른 쪽은 억울해서 소를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사실 자체가 그냥 억울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퇴직금을 1000만원 받아야 하는데 100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그러나 퇴직금을 줄 때 부제소합의(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합의)를 덜컥 한다. 그럼 900만원 못받은 것 때문에 소를 제기한다. 그러나 소송요건을 충족하지 못하여 결국 지게 된다.
이처럼 지나친 법률분쟁 비용이 발생하고,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법률분쟁의 결론이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들은 애초에 법률행위(계약처럼 권리변동을 가져오는 행위)를 할 때 신중하지 못하고 불리한 것을 생각도 하지 않고 덜컥 해버리며, 필요한 증거들을 제 때 수집하지 못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 포기 각서를 덜컥 쓰는 것이다. 또는 부제소특약을 덜컥 쓰거나, 갱신기대권을 포기하는 계약서를 덜컥 쓰거나, 포괄임금산정제를 덜컥 쓰거나, 각종 서약서를 덜컥 쓰거나, 책임을 진다는 사실확인서를 덜컥 쓰거나, 영업양도인의 말만 믿고 영업을 양수하고서는 아무 생각없이 상호를 속용한다. 보증금을 받지도 않았는데 생각도 하지 않고 이사를 간다거나, 저당권을 알아보지도 않고 이사를 들어온다. 영수증도 받지 않고 현금으로 돈을 빌려주거나, 물건 값이나 서비스 값을 지불해버린다. 영수증을 받았지만 잃어버린다. 강제집행을 수락하는 문언이 적힌 공정증서나 제소전 화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준다. 세상은 넓고 덜컥덜컥 하는 것들은 많다. 그리고는 쓰고 나서, 일을 저지르고 나서, 아니면 그 이후에 사건이 다 터지고 나서 법률가를 찾는다. 그러나 법률가를 찾는 것은 쓰기 "전"에 해야 할 일이지 쓰고 "나서" 할 일이 아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조기에 제때 증거를 수집하지 않는 것이다. 연장, 야간, 휴일근로를 했으면 증거를 남겨야 한다. 회사가 공식적인 근무기록을 남기고 있다면 그 근무기록을 복사를 하든, 사진을 찍든 해야 한다. 근무기록을 회사가 남기지 않고 있다면, 또는 공식적인 근무기록이 실근로시간과 다르다면, 실근로시간을 입증할 물리적인 증거를 남겨야 한다. 버스회사 노동자는 자신의 근무경로와 근무일지를 회사에 제출할 때 사본을 한 장 가지든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패스트푸드점 노동자는 날짜와 시각이 같이 나오는 시계와 함께 매일매일 돈 못받는 야근 모습을 작업장에서 찍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올린 날짜가 남는 비공개 카페에 올려야 한다. 증거는 꾸준히 수집하고 나중에 일거에 모아서 권리 청구를 하는 것이다.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었다면 근로계약서를 한 부 받아야만 한다. 작성시에. 누군가에게 불법행위를 당해 피해를 당했다면 피해를 당한 즉시에 증거를 찍고, 기록하고, 남기고, 진술을 받아야 한다. 내용증명을 느긋하게 보내면서 당신이 잘못했으니 물어내라고 하는 사이 이미 상대방은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증거를 왜곡할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예방법학이다.
예방법학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법률관계별로 유의해야 할 점들을 교육한다.
(2)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가를 쓰거나, 사거나, 팔거나, 옮기거나, 인수하거나, 투자하거나 하기 전 법률가와 꼭 상담하는 것이다.
(3) 그리고 법률관계별, 분쟁유형별로 평소 증거를 수집하는 매뉴얼을 받아서 그대로 증거를 수집한다.
이렇게 하면 사회의 전체 법률비용이 줄어들 뿐더러, 기존 법정에서의 입증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던 강자들의 전횡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된다. 국민들은 폐결핵이 걸려서야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침이 나와도 의사를 찾아갈 수 있는 것처럼, 사건이 터지고 만신창이가 되어 법률가를 찾을 것이 아니라 아주 평온할 때 일상적일 때부터 다만 '법률행위'를 할 때에 변호사를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일상적인 예방법률활동에도 대가가 지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대가는 국민건강보험과 같이 국민법률보험에 의해 지급되어야 한다. 감기진단을 하고 간단한 진료를 하고 감기약을 처방하듯이, 변호사는 법률관계 진단을 하고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 분쟁을 예방하고 증거를 수집할 것을 조언하게 된다. 지금은 이 조언의 가치를 사람들은 0으로 본다. 조언을 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어도, 또는 그 조언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많은 노력이 투여되어도 그렇다. 소송을 수임하고 법정에 가서 싸워야 비로소 돈을 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물리적인 활동이 아닌 것에 대하여 가치를 인정하기 어려운 인간의 심리적 본성과 결부되어 있다. 그러므로 개인에게 맡겨두면 당연히 강자들은 평소에 분쟁을 예방하는 법률조언을 많이 받게 되겠지만 약자들은 여전히 몇만원 비용이 아까워서 조금의 조언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회전반적인 법률분쟁비용의 상승과 정의로부터의 이탈이다. 그러므로 전국민을 포괄하는 의무적 법률보험이 필요한 것이다.
2011. 12. 1.
이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