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나온 윤리학 입문서 중 가장 쉬운 제임스 레이첼스의 도덕철학을 소개한 짧은 글입니다.
제임스 레이첼스 ‘도덕철학’
이 책은 여러 가지 윤리학 이론들을 다루어 나가면서 끝에 저자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제일 먼저 타겟의 대상으로 오르는 것은 ‘심리학적 이기주의’다. 개똥 철학을 가진 자들이 윤리학도 모르면서 하는 말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의해서 행동한다’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기아에 굶주리는 난민을 위해 기부금을 내는 것도 자신의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행위들간에 도덕적인 차이란 없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보신주의와 무사안일주의로 흐르게 된다. 이 이론은 레이첼스의 설명에 의해 처절하게 부셔진다. ‘자신의 이익에 의해’ 행동하지 않는 많은 사례들을 제시함으로써 인간 행위에 대한 일원론적 설명이 그른 것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만 알면 아주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기적’이라는 말 자체가 여러 가지 뜻을 포괄한 채로 분석되지 않고 쓰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식사를 하는 것, 똥을 누는 것, 난민에게 기부하는 것, 사기를 쳐먹는 것, 이 모두를 ‘이기적’이라고 설명한다면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마치 “인간의 모든 행위는 ‘아부까뜨뢉자’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환원해버리는 서술은 유용하고 유효한 구분의 기준을 전혀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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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윤리학적 이기주의’를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가? ‘윤리학적 이기주의’는 사실 윤리학이라기 보다는 실존적 문제에 대해서 어설픈 도피를 제시하고 있는 이론이다. 이는 ‘북한동포돕기에 ’는 도덕적 명령은 실존적으로 아무런 강제력을 가지지 않으므로 그것을 발화하는 사람의 ‘선호’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개인은 도덕을 따를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윤리학적 이기주의’가 일관된 행동준칙으로서 모순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자기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많은 일들을 애써 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아무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자기자신’과 ‘다른사람’을 특별히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있을 때에만 광범위한 사회적 태도로서 근거를 얻을 수가 있다. 그러나 윤리학적으로 ‘자기자신’과 ‘다른사람’은 다르게 취급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저자는 이어서 공리주의를 소개한다. 공리주의는 윤리학에서 부당한 종교적 개입, 관습의 개입, 편견의 개입을 일소해 버릴 수 있는 일대 혁명으로 받아들여 졌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이 원칙은 벤담에 의해 처음 확립된 이후 몇가지 사소한 수정을 그치긴 했지만 확고한 원칙으로 아직 자리잡고 있다. 저자가 공리주의에 대해서 제기하는 비판은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공리’를 증진함에도 옳지 못하게 보이는 일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무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전화내용을 도청해서 그만큼의 효용을 증진시키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이로 인해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그른 일이다. 또한 다수가 소수를 희생함으로써 쾌락을 얻었을 경우 소수의 피해와 다수의 이익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둘째, ‘공리주의’에 근거해서 판단할 경우 우리가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정의관념에 어긋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무죄인 사람을 유죄라고 증언해야지만, 끝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폭력사태가 중지될 경우에 증언자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 공리주의적 판단에 따른 행동은 ‘죄없는 자는 처벌받아서는 안된다.’라는 정의관념에 어긋난다. 저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경우들을 검토해 본 뒤에 공리주의가 완전한 준칙이 될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나서 저자는 자신의 윤리적 원칙을 제시하는데, 여기서 제공된 원칙은 지나치게 귀납적인 방식으로 제공된 원칙이 아닌가 한다. 윤리적 원칙은 순수히 연역적인 과정에 의해서만 정초될 수도 없지만, 또한 순수히 귀납적인 방식으로만으로도 제시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윤리학은 우리의 깊은 도덕적 직관에 들어맞기도 해야 하지만, 혼란스러워 보이는 도덕적 직관들을 해결하고 교정해 줄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롤즈는 이러한 두 가지 요구를 충족시키는 윤리적 숙고과정을 ‘반성적 평형’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적 평형을 체계화시키기 위해, 윤리학자는 구성적 방법에 의해 윤리학을 정립할 수 있는 아르키메데스적 점을 가져야 한다. 롤즈에게는 원초적 상황과 무지의 베일이, 드워킨에게는 추상적 평등주의원칙과 다리의 원칙, 그리고 경매시장의 장치가 이러한 아르키메데스적 점을 제공해준다. 이런 가상적 장치들은 그 장치들 자체가 윤리의 본질구조들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들 말고 혼란스러워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체계적이고 일관된 답을 제시해준다.
반면에 이 책에서 제시된 저자의 도덕원칙들은 지나치게 나이브하고 현실에서 큰 도움이 못되는 것 같다. 즉, 아르키메데스적 점이 없어, 그냥 현실에서 쉽게 도출될 수 있는 도덕적 직관들을 이리저리 범주화해서 그것을 다 포괄하는 원칙 몇 개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쉽고 재밌게 윤리학의 입문과정을 썼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훌륭하나, 주로 도덕적 직관에 반한다는 식으로만 윤리적 공방을 진행하고, 윤리적 공방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에 좀 더 체계적인 자신의 입론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