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민의 소양

 

A: 저는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꼭 필요한 중대한 철학적 소양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버마스가 자꾸 눈에 밟히더군요. 하버마스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데 꼭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B: 적확한 포착이십니다. 입헌 민주사회의 시민들은 '의사소통이론'의 기본 개념에 대하여 알아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즉 앞으로 우리가 나눌 이야기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란 무엇인가.

 

A: 먼저 첫 번째 질문은 왜 그냥 '합리성'이 아니라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이야기하는가입니다.

 

B: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합리성 개념은 근대의 '주체 철학'의 문제의식과 밀접히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근대의 주체 철학은 '나라는 주체가 도대체 어떻게 하여 외부세계나 규범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천착한 것입니다. 즉, 고립되어 홀로 탐구하고 고민하는 주체가 어떻게 하여 외부에 대한 진리를 알아낼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대하여 감각 경험으로 알아나간다는 경험론과, 우리의 내성 능력으로 알아나간다는 합리론이 대립하였습니다. 칸트는 이 둘 모두가 필요하다는 인식론적 종합을 시도했습니다.

 

A: 칸트에서 끝난 것 아닙니까?

 

B: 그러나 경험론과 합리론의 종합은 회의주의적 물음에 대하여 끝을 내지 못했습니다. 첫번째로는 도대체 내가 아는 느끼는 감각경험 능력과 그 감각경험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나의 내성능력이 포착하는 것이 실재와 여하한 접촉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이 두 가지 능력이 만들어낸 모종의 망상에 불과한지를 떨쳐내지 못한 것이죠. 두번째로는 감각경험 능력과 내성능력을 갖추고 있는 둘 이상의 주체의 의견이 갈릴 때 누구 의견이 맞는지를 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회의 때문에 칸트 이후의 독일 철학은 독일 관념론으로 전개됩니다. 피히테는 자신의 유명한 철학 강의를 도대체가 나 이외의 존재가 있는지, 아니면 이 강의를 듣고 있는 청중이란 나의 정신이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한지를 묻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러한 유아론적 질문이 철학의 제1문제라는 사고가 지속된 것이죠.

 

A: 결국 한 주체가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물음이 회의 없이 답해진 것이 아니군요. .

 

B: 네. 그런데 이 관념론의 헛소리를 듣다 보면 정신이 돌아버릴 지경이 되죠. 관념론자들은 더 나아가 세계가 전체로서 하나의 존재자를 이루고 있다는 존재양상에 관한 거대한 진리주장까지도 제시합니다. 이로써 칸트가 '비판'으로서 한계짓고자 했던 이성의 활용은 다시 그 한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다종다양한 존재양상에 대한 다종다양한 망상들이 철학의 이름을 달고 활짝 꽃을 피운 것입니다.

 

이런 것에 아주 진저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논리실증주의자들입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아주 야심찬 기획을 시도했습니다.

 

'헛소리는 전부 치워버려라!' 이것이 그들의 모토였습니다.

 

그들이 제시한 기준은 간단하였죠.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진술들은 유의미한 것이고, 그 진술들 중 경험적 조사와 일치하는 것은 참이라는 것이죠. 그 외에는 다 헛소리라는 것입니다.

 

A: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즉시 생각나는 것은, 바로 그 '유의미성'을 가르는 기준에 관한 철학적 진술이야말로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B: 네, 그 반론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의 메타 이론의 메타 이론의 메타 이론까지 세분하게 구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론의 층위를 구분하는 이론에 관한 진술조차도 경험적으로는 검증 불가능하니까요.

 

그 외에도 논리실증주의 기획은 암초에 부딪혔습니다.

논리실증주의 기획은, 결국 모든 유의미한 진술을 경험적으로 검증가능한 원자명제들로 환원한 후, 그 원자명제들의 진리함수로 복합명제들을 구성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대체 원자명제들이 무엇인지 지적을 하지 못했죠. 빈 학파가 금과옥조로 삼았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는 원자명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논의를 끌어 나가지만, 원자명제의 예를 단 하나도 제시하지 못합니다.

다른 한편, "너는 지금 무슨 타는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니?"와 같은 문장은 어떤 기초명제의 진리함수로 분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장을 매우 유의미하게 활용하며, 이런 문장들을 활용해서 묻고 답합니다.

 

논리실증주의는 투명하고 곧은 정신을 가진 철학자들의 야심차고 아름다운 기획이었지만, 여러가지 부산물이 되는 성과들을 낳고는, 그 실제 목적에서는 좌초하고 말았습니다.

 

A: 논리실증주의가 파산하게 된 것은, 결국 그것이 근대 주체 철학의 기획 노선 아래서 작업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B: 적확한 지적입니다. 논리실증주의가 파산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진술이 외부 세계와 대면하는 홀로 선 주체의 독백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A: 진과 위를 알아낼 수 있는 유아론적 관점의 독백적인 간명한 기준은 없다는 것이군요.

 

B: 네. 오히려 정확한 사실의 확인이나 타당한 규범의 정립을 목적으로 논의를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된 것이, 잠정적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이라는 점이 점점 부각이 되었지요. 즉, 홀로 된 주체가 외부 세계와 대면해서 독백적으로 얻어낸 진술의 참 거짓을 고민하는 주체 합리성 개념에서, 논의를 주고 받는 주체들이 최선의 논증대화를 통해 합리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으로 전회가 된 것이죠.

 

A: 결국 의사소통 합리성이란 무엇입니까?

 

B: 의사소통 합리성은 유아론적 주체의 합리성과 대별됩니다. 유아론적 주체의 합리성이, 하나의 주체가 자기 외부의 모든 것을 객관세계로 보고 그 객관세계에 관한 어떤 것을 성공적으로 인식하고 조작할 때 성립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란, 담화를 주고 받을 언어적 실천의 능력이 있는 주체'들'이 어떤 것에 관하여 상호 이해를 도모할 때 성립하는 합리성입니다.

 

A: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주장하시는, '규범을 의사소통적 합리성 위에 놓는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B: 규범적 발화는, 행위를 인도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규율하는 규범의 타당성을 표현하는데 사용하는 발언입니다.

 규범을 의사소통적 합리성 위에 놓는다는 것은, 이러한 규범적 발화를 주고 받은 결과, 주장된 규범이 행위의 문제들을 “공동의 관심에 맞게 규제함으로써 관련되는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자격이 있다.”(Jürgen Habermas, 의사소통행위이론 1권 158-159면)는 것을 의미합니다.

 

A: 도대체 어떤 규범주장이 그러한 동의를 얻을 자격이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B: 오직 잠정적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규범주장이 그러한 동의를 얻을 자격이 다'는 점입니다.

 

A: '자격이 있다'는 알 수 없지만, '자격이 없다'는 알 수 있다는 것입니까?

 

B: 네. 이 점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규제적 이상(regulative ideal)으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규범 주장이 무한히 계속되는 규범적 논증 대화에서 온전히 합의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거야 당연하겠지요. 왜냐하면 우리는 현실적 제약을 받고 있는, 제한된 합리성만을 가지고, 제한된 시간 동안, 몇몇 의심스러운 동기들에 의해 움직이는 토론만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는 어떤 규범명제는 그것이 어떤 주체의 의사소통적 지위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주장될 수 없다는 것은 지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예제는 존치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봅시다. 이 주장은 노예 상태에 처하게 되는 사람들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주체로서의 지위를 부인해야만, 규범적 논증대화에서 합의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노예의 처지에 있게 될 사람들은 당연히 노예제와 관련된 규범적 논증대화에 참여하면 '아니요'라고 발언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노예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의 의사소통주체로서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지위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즉 노예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노예주에 있는 사람들이 인신의 통제권의 두 몫 이상을 가진다는 점을 주장해야 하나, 노예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인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다는 점만 주장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노예제는 폐지되어야 한다'거나 '재도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규제적 이상에 어긋나지 않는 반면에, '노예제는 존치되어야 한다', '재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규제적 이상에 명시적으로(explicitly) 어긋나는 규범문을 도입하지 않고는 결론으로 이끌어낼 수가 없게 됩니다.

 

A: 그렇다면 현실의 규범적 논증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규범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논증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주체의 지위를 부인하는 규범문이 도입되었는가를 살펴보는 일이군요.

 

B: 그렇습니다!

 

 

3. 체계와 생활세계

 

A: 그 다음 궁금한 것은 체계생활세계라는 개념입니다. 이런 개념을 들을 때마다 안개 속을 헤메는 것 같아서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B: 생활세계는 우리가 서로의 실천을 조정하는 지침을 마련하기 위하여 의사소통을 하는 세계입니다. 예를 들어 양자에 관한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면 과학적 토론을 해야겠지요. 안락사가 옳은지 그른지 알려면 규범적 토론을 해야겠지요. 연인 중 한 명이 지금 스트레스 받고 슬프다고 말하면 그 진정성을 인정하고 위로를 해야겠지요. 이렇게 과학적 토론과 규범적 토론을 늘 함께 끼고 이루어지는 사회화나 문화적 재생산이 생활세계에 속하는 일들입니다.

 

이런 일들은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서 권위를 위탁받은 사람이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이요, 돈으로 그 결론을 살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것을 물리적으로 구획되는 영역이라 보면 안됩니다. 오히려 생활세계는, 의사소통적 합의를 직접 거쳐서 행위를 조정하고자 하는 우리의 삶의 측면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A: 그렇다면 이와 대비되는 체계는 무엇입니까.

 

B: 의사소통에 의한 실천의 조정이 갖는 부담을 생각해보죠. 우리는 연인 사이에는 매번 의사소통에 의해 실천을 조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 관계가 특별한 것이죠. 

 

반면에 체계는 그 체계 자체의 고유한 논리에 의해 결론이 결정됩니다.

 

시장 체계가 바로 그 예입니다.

 

 우리가 점심 시간에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는 일을 의사소통을 통해서 해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식당에 가서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면 의사소통을 통해 해결하면 다음과 같이 되겠죠.

 

"음식이 너무 맛이 없습니다. 사장님"

"그것은 이유가 다 있습니다요, 손님. 요즘 재료값이 너무 올라서 원래 가격에 맞추려면 음식 맛을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다가 원래 있던 주방장이 나가버렸어요. 그래서 제 아들이 직접 요리를 하는데, 실력이 형편없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번에 제 딸이 대학을 가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새로 주방장을 모셔 오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점을 잘 감안하셔서 이 맛 없는 음식을 먹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사장님, 이 음식 맛은 그래도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심하지 않다고 보는데요. 그래도 인간이 먹을 만한 정도는 아닙니까."

"아니, 그래도 저도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는데 점심이라도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이거 먹고 나면 힘이 쑥쑥 빠집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요즘 직장생활 다 어렵습니다."

 

이렇게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부담이 만만치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 맛이 없으면, 다른 식당에 돈을 내고 갑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맛있는 식당은 돈을 벌게 되고, 맛있는 식당들이 살아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화폐라는 매체를 통한 조정입니다.

 

그 다음 들 수 있는 체계는 행정 체계입니다.

 

국세청에서 탈세 감시 프로그램을 쉴새 없이 돌립니다. 그래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그 증거들을 내부에서 일별해 본 뒤에, 세무조사를 할지 하지 않을지를 결정합니다. 그 궁극적 결정은 공적 권위를 가진 공직자가 하게 됩니다. 물론 세무조사를 받게 되면 상당한 불이익을 입게 됩니다. 아무런 탈세가 확인되지 않아서 추가로 납부할 세금이나 가산금이 없다 하더라도 사업자로서는 상당한 정력과 시간이 소요되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행정행위의 권한을 가진 공직자가 그 권한 범위 내에서 결정을 하면 공무원들은 그에 따라 움직이고 그 처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그로 인한 강제력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무조사를 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광범위한 배경조건들을 다시 다루는 의사소통이 직접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매번 세무조사를 시작할 때마다 사업자와 행정청 사이에 무한히 지속되는 토론이 벌어질 터인데, 그러한 토론을 거치고 나서야 세무조사를 하게 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예들에서 체계의 특성을 알 수 있겠습니까?

 

A: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서만 행위를 조정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는 거군요. 그리고 언어적 의사소통의 과도한 부담을 덜기 위해 권력과 화폐와 같은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 행위조정이 이루어지는 영역들이 독립하게 된다는 것이구요. 

 

B: 맞습니다. 이렇게 '합의'를 목적으로 하는 언어적 상호작용 이외의 매체에 의해 행위조정이 이루어지는 영역을 ‘체계’(System)라고 하는 것입니다.

 

4. 생활세계의 체계에 의한 식민화

 

A: 그렇다면 생활세계가 체계에 의해 식민화(colonization)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B: 생활세계가 공간적, 시간적으로 체계에게 먹힌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물론 현상적으로는 비슷하게 보이는 사건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명확하게 '생활세계'와 '체계'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이해했으므로 그 정의를 투입하면 그 문장의 뜻이 나오지 않습니까?

 

A:  "'언어적 의사소통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도입된 체계'가 종래에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한 조정이 이루어지던 영역'을 침범하게 되는 것입니까?

 

B: 네. 그에 더해서, 체계의 논리는 그 궁극 심급에서는 결국 '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한 조정'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즉 체계의 매체들이 활동하는 범위는 오로지 '의사소통적 권력형성의 수문'을 거쳐야만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즉, 체계에 의한 식민화는 '체계가 그 궁극의 토대에서 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한 정당화의 가능성을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A: 예를 들어주십시오.

 

B: 좋은 자세입니다. 예를 들지 못한다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니까, 예를 구하는 태도는 중요한 삶의 기예(art of life)입니다.

 

체계가 종전의 생활세계를 침범하는 경우는, 대학에서 구내식당을 모두 외주화하면서 그 기준을 보다 높은 임대료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로 잡는 경우입니다.

 

구내식당이라는 것은 원래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복리를 위하여, 집단적인 식재료 구입과 집단적 조리라는 이점을 활용하여 최대한 싼 값으로 양질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그래서 구내식당 가격을 얼마나 할 것인지, 마진을 얼마나 남길 것인지는 언제나 학내 구성원들 사이의 의사소통에 의한 조정에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높은 임대료 입찰가를 써낸 업체에 구내식당 자리를 통째로 넘겨주게 되면, 이러한 조정은 아예 막히게 됩니다. 이 업체는 높은 임대료를 매달 대학에 내야 하기 때문에 당연한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그건 바로 아주 저질의 식사를 비싼 가격에 팔아먹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가격 통제를 일정정도 실시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에도 저질의 식사를 통해서 마진을 남기려는 동기를 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외주화를 주게 되면 하나같이 맛대가리라고는 없는 구내식당들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확히 시장경쟁의 논리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이것은 대학당국의 권력이라는 매체와 업체가 제시하는 화폐라는 매체가 결합한 독특한 키메라 종입니다. 왜냐하면 구내식당들은 거리 면에서 학교 외부에 있는 식당들과 달리 지역적 독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은 새로 휘황찬란한 건물을 짓는다든지 하는 데 쓸 돈을 많이 마련할 수는 있겠지만, 구내식당이 원래 가졌던 목적은 잃게 되겠지요.

 

체계의 논리가 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통한 조정과 멀어지는 것의 예로는, 세무조사를 선택적으로 세무당국이 수행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정당이 장기집권을 하게 되고, 그 당에 반대하는 표현과 연루된 모든 기업체들만이 집중적으로 세무조사를 당한다면, 당연히 그 사회에서는 그 정당에 대한 비판적 표현들이 대단히 불리한 처지에 있게 될 것입니다.

 

어떤 기업체에 대하여 세무조사를 실시할 권한은 물론 세무당국의 공직자에게 있지마는, 그러한 권한의 행사가 궁극적으로 의사소통적 권력형성의 수문을 거치지 않을 때, 그것은 권력이라는 매체의 전횡이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경우 모두에 체계의 식민화에 대응한다는 것은, 필요한 심급의 수준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개입할 수 있는 민주적 통로를 제도화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구내식당을 직영으로 운영하고, 그 운영에 관하여 학생, 교직원, 그리고 식당 노동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합의제로 의결을 하는 위원회를 만드는 것은 생활세계의 복원을 의미할 것이빈다.

 

또한 세무조사의 실시에는 어떤 증거나 기간상의 계기가 있어야 하고, 이러한 증거나 기간상 계기가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세무조사는 위법한 세무조사로 판명하는 법의 입법이 또한 생활세계의 복원을 의미할 것입니다.

 

A: 말씀을 듣고 보니 많은 사례들이 추가로 생각나는 군요.

 

만일 미국처럼 선거비용 상한제를 위헌으로 보아서, 선거운동 비용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게 한다면, 결국 선거라는 의사소통 절차가 화폐라는 매체에 의해 매수당하는 수가 있겠군요.

 

또한, 소송절차에서 감정을 하는데 전문감정인이 회사나 업체로부터 거액의 감정료를 받고 감정을 해주고, 그러한 감정료에 아무런 합리적인 제한이 없다면, 그것 또한 과학적 탐구라는, 의사소통에 의한 진리 발견이 식민화된 것이겠군요.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에서 신념들과 주장들의 경쟁이 그 신념과 주장들의 타당성을 논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떤 신념을 주장하는 자의 신원을 확인하여 그 자에게 모든 경제적 기회와 자원을 박탈하는 화폐라는 매체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면 그것 또한 식민화라 할 수 있겠군요.

 

B: 그렇습니다.

 

A: 이러한 2단계 이론 구성, 즉 생활세계와 체계라는 개념을 가지고 작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성과가 무엇입니까?

 

B: 우리는 분화된 체계들을 다 없애서 모조리 철저한 의사소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건전한 비판의 토대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 있으므로 모든 것이 오염되어 있으므로 어떠한 주장도 거짓에 불과하고 어떠한 의식도 허위에 불과하다는 체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라는 분명한 규제적 이상을 갖게 되며, '식민화'에 대응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입의 제도적 계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명확한 과제를 갖게 됩니다.

 

A: 그러한 제도적 계기들이란, 화폐와 권력이라는 매체가 우리의 삶을, 우리가 '아니요'라고 합당하게 거부할 수 있는 지위를 침해하면서 일그러뜨리지 않도록, 의사소통을 통해 개입하고 대항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B: 정확합니다. 그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도입하려면, 우리들은 동료시민들을 궁극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의사소통주체들로 바라보면서, 영원히 분열되는 속성에 의해 가를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우리의 평등한 자유를 복구시키기 위해 필요한 의제를 중심으로 연대해가는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민주 시민의 자세인 것입니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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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움
    2016.12.21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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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적인 세무조사가 비판적 표현을 차단한다는 사실상의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쉽게 이해되는데, 그러나 그것이 세무조사 실시가 위법이라는 논거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너무 속편하고 단순한 생각일 수는 있겠지만, 사실과 규범의 문제를 분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선택적인 세무조사가 불법인 이유는 '오직', 통계적으로 판단하면, 옹호적 표현을 하는 기업이라고 하여 탈법사항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무조사를 실시하지 않은 부작위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 아닌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 2016.12.22 01:4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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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법으로 위법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현행법상으로는 말씀하신대로일 것입니다.

      저는 이 현행법이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며,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말한 것입니다.

      실제로 부작위 책임을 묻는 것은 세무조사를 당한 기업일 텐데, 부작위 책임을 물을 소의 이익이 없어 절차는 각하될 것입니다. 또한 부작위 했다는 점에 대해서 입증책임도 그 기업이 질 터인데, 세무당국이 아닌 이상 입증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리 만무합니다. 위에서 제안한 방식은 처음부터 세무당국에서 입증책임을 완료하여 공정성을 보여야지만 세무조사를 할 수 있도록 규치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2. 불연
    2019.07.04 18: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공부에 있어서 방향성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근대 경험론, 합리론이나 칸트 사상 등에서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채 미로를 헤매듯 왔다 갔다 하다가 내가 지금 무엇을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번이 아닌데, 근대의 사상부터 논리실증주의까지 일목요연하고 방향성 있게 정리를 해주시니, 그 말들이 이런 의미였구나하고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결국 공부란 혼자 해서는 안되고 앞서간 자(선생)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낍니다. 변호사 생활로 바쁘시겠지만, 한가지 부탁드릴 일은 위와 같은 지식에 대한 일목요연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참조할만한 문헌을 가르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2019.07.04 21: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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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와 같은 지식'이나 '일목요연'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아니하여 답변 드리기 조심스러우나, 지식 내지는 앎(knowledge)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것을 획득할 수 있는가에 관한 적정한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 책들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철학적 분석 입문 (호스퍼스)
      철학의기술 (로젠버그)
      심리학의 오해, (슈타노비치)
      과학이란 무엇인가, (차머스)
      과학철학의 이해 (제임스 래디먼)
      입증,
      지식론 입문,
      철학과 학문의 노하우,
      논리적 추론과 증명,
      분석철학의 역사

      역사적 설명에 대해서는 철학사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앤서니 케니의 <근대 철학>과 <현대 철학>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등을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설명한 것은 의사소통이론적 접근이므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을 직접 참조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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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민주주의와 사회윤리학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교육센터-배움의 연대망’ 홈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는 열린 강의 형태의 시민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트위터 아이디: civiledulee, 이메일: civiledulee@gmail.com (이한)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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