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 하급심 판결이 제기하는 명예훼손죄 법리의 문제

 

가. 판결의 설시 내용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16. 11. 24. 선고 2016가단112022 판결은 다음과 같은 사건에 대해 선고된 것이다.  

 

원고는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려던 P의 아들 A의 병역처분과 관련하여 MRI 사진을 바꿔치기 하는 방식으로 병역을 기피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였고, 이에 P가 원고를 고발함에 따라 원고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로 기소되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항소하여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원고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원고의 의혹 제기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님이 증명되었을 뿐만 아니라 원고는 정치적 목적이나 기타 다른 의도가 아닌 의사로서 양심에 비추어 발언을 한 것인데, 피고는 별지 기재와 같은 글을 게재함으로써 이를 악의적으로 폄훼하고 공중이 보는 트위터 상에서 명예훼손 또는 모욕에 해당하는 발언으로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하였다고 하여, 피고의 공연한 명예훼손 혹은 모욕적 발언으로 원고는 큰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므로, 피고는 이를 위자하기 위하여 원고에게 30,000,000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동 판결은, "인터넷상 게시물의 게재로 인한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실의 적시란 반드시 사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경우에 한정할 것은 아니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에 의하더라도 그 표현의 전취지에 비추어 그와 같은 사실의 존재를 암시하고, 또 이로써 특정인의 사회적 가치 내지 평가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을 정도의 구체성이 있으면 족하다(대법원 2004. 2. 27. 선고 200153387 판결 참조). 그리고 인터넷상 게시물의 게재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여 불법행위가 되는지 여부는 일반 국민들이 게시물을 접하는 통상의 방법을 전제로 그 게시물의 전체적인 취지와의 연관 하에서 게시물의 객관적인 내용,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 문구의 연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게시물이 일반 국민들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하고, 여기에다가 당해 게시물의 배경이 된 사회적 흐름 속에서 당해 표현이 가지는 의미를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24138 판결 참조)."라는 일반적인 기준을 제시한 뒤,

 

"각 글의 내용은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하고 있지는 아니하나 그 표현의 전취지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아이큐가 낮아서 AMRI 사진이 바꿔치기 됐다는 주장을 계속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위와 같이 위 표현이 암시하는 사실 중 AMRI 사진이 바꿔치기 됐다는 주장을 계속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다만 원고의 아이큐가 낮다는 부분은 원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표현이나, 이는 의사인 원고가 비합리적인 가정을 해야만 설명이 되는 주장을 계속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원고에 대한 피고의 의견 내지 감정을 비유적으로 표시한 것으로서, 위 전제되는 사실의 내용 및 위 표현의 방법 등에 비추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서서 원고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따라서 (...) 각 글의 내용은 구체적 사실의 적시로 원고의 명예를 훼손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원고의 이 부분 주장은 이유 없다."고 하였다.

 

판결의 이 부분은 의견 표명이나 사실 적시냐를 가르는 기준에 관한 것으로, 상당히 정확한 판단을 보여주고 있다. 즉, 문자 그대로 취하자면 '아이큐가 낮다'는 사실을 적시한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실제로 풍자적인 반어적 표현법으로, 불합리한 가정을 하지 않으면 주장할 수 없는 바를 주장한다는 취지를 드러내는 표현인 것이다.

 

나. 반론과 재반론, 재재반론에서 보이는 비결정성

 

이러한 설시에 대해서 원고는 다음과 같이 반박할 수 있겠다. "아이큐가 낮지 않은데 아이큐가 낮다고 말한 것은 허위사실 적시가 아니냐, 이것을 비유적 표현으로 보는 것은 법관이 억지로 그렇게 보고자 한 것이고 무리하게 잘 봐주려고 한 것이다.

 

허위사실을 적시하면 처벌될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이 성립한다. (대전제)

 

아이큐가 낮다는 진술을 했다. (사실 명제의 진술)

 

실제로는 아이큐가 낮지 않다. (그 사실 명제가 거짓임)

 

이 두 가지가 증명되었으므로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성립해야 한다.(결론)"

 

이러한 원고의 예상되는 반박에 대하여, 무엇이 비유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종래의 이론으로 가름하기에는 명확하지 않다."

 

즉, 명예훼손죄가 '인격'에 관한 죄라고 보았을 때에는 그 인격을 구성하는 사실의 총합체 중 일부 요소에 대해 허위를 이야기하였음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원고 의사의 인격은 여러가지 사실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다. 의사가 의사자격증을 가졌다는 것, 무슨무슨 대학을 나왔다는 것, 그리고 아이큐가 높다는 것은 그 의사의 인격적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이며, 이러한 요소 중 일부가 노골적으로 부인당하였을 때 이 의사는 자신의 인격이 비하되었다는 '명예감정의 훼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재반론을 할 수 있겠다.

 

"하나의 진술이 사실 명제이냐 아니냐는 그 진술만 떼어놓고 보아서는 안 되고 그 진술이 발화된 맥락 전체를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풍자시에서 어떤 진술은 사실 명제의 형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하여 그 풍자시가 명명백백히 사실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풍자시를 보라.

 

검찰은 개다.

개는 멍멍 하고 짖는다.

누구를 향해 짖을 것인가는 개의 주인이 가리킨다.

개는 주인이 주인의 자리에 있을 동안에는 주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짖는다.

그러나 주인이 힘을 잃었다고 판단되면, 개는 주인을 물을 수도 있다.

검찰은 개다.

 

수미쌍관의 구조를 가진 이 풍자시는 "검찰 = 개"라는 등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등식은 그 자체로는 사실 명제이다. 검찰이 개라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개가 아니다. 따라서 하나의 진술만 떼어놓고 보기에 이 진술은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개가 아닌 주체를 개라고 등치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그 진술을 둘러싼 전체 발화의 맥락을 보자면, 시를 쓴 화자가 곧이곧대로 검찰이 개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검찰이 마치 개같은 속성을 보인다는 것, 즉 검찰은 권력에 아부하고 복종하는 행태를 많이 보인다는 것을, 조건부의 충직함을 보이는 어떤 개에 빗대어 풍자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SNS상에서 의사의 아이큐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은, 의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불합리한 것은 아이큐가 매우 낮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야기하기 힘든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는, 그러한 풍자적 표현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재반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재재반론을 생각할 수 있다.

 

"재반론에서 예로 든 것은 분명한 비유임이 드러난 사례이다. 검찰이 범주상 개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검찰은 하나의 조직이고, 조직 구성원을 칭한다 할지라도 그 구성원은 분류상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개념상 자연종(natural species) 분류에서 개와 다른 종에 속한다. 따라서 이것이 풍자임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연적 거짓을 진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명제로 바라보게 되면 필연적 거짓을 진술하는 명제의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정치인 A는 우리 국민의 태양이다.

정치인 A는 우리 국민의 시궁창이다.

정치인 A는 개다.

정치인 A는 술이다.

정치인 A는 안드로메다 은하다.

 

이러한 것들이 '사실 적시'에 관한 명제가 아니라 '의견 표명'에 관한 명제임은 분명해진다. 반면에 다음과 같은 명제들은 다르다.

 

정치인 A는 아이큐가 하위 평균 30%에 속한다.

정치인 A는 발기부전이다.

정치인 A는 전과 14범이다.

정치인 A의 아들은 병역비리로 군대를 면제받았다.

정치인 A는 정신분열증(조현병)이다.

 

이 명제들은 모두 필연적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 즉 그것은 우연적 명제이다. 우연적 명제라는 것은 실제 세계의 사태(state of affairs)에 따라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명제이다. 즉, 그것이 거짓임이 필연적으로 명백하지 않은 명제다. 참이 될 수도 있는 명제를 진술하는 것은 따라서 사실 적시라고 봐야 한다. 참일 가능성이 있는 명제지만, 거짓인 명제는 따라서 허위 사실 적시이다. 그러므로 아이큐가 저능이라고 하는 것은, 허위사실 적시라고 봐야 한다. 맥락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맥락이 필연적 거짓인 명제를 말하고 있다는 점을 지시하고 있지 않는 한, 그것은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 성립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다. 자의성의 원천

 

이러한 반론과 재반론, 재재반론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의견 표명'과 '사실 적시'를 가르는 기준이다. 이 기준을 다시 '사회통념상' 의견 표명으로 볼 것이냐 사실 적시로 볼 것이냐에 기대게 된다. 그런데 사회통념에 의한 판단 기준을 법원은 법리를 통해서 마련해야 한다. 사회통념상 기준을 사회통념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법원이 여론조사를 외주 맡겨서 사실 적시와 의견 표명을 가를 수도 없다. 그렇게 해서는 법리적 기준을 문외한들의 직관적 판단의 총합으로 갈음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다루는 법원의 판단이 상당히 타당한 것이라고 직관하면서도, 그 직관을 정식화된 논증으로 정당화하기에는 기존 법리의 '사회통념상'이라는 얼버무린 도구가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차린다.

 

이러한 자의성의 원천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종래의 이론은 명예훼손죄를 인격에 대한 죄라고 본다. 즉, 그것의 보호법익을 어떤 사실명제가 진술된 사람의 '명예감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명예감정을 사회통념상 해하였다고 보았을 때에는 죄가 되고, 사회통념상 해한 정도는 아니라고 보면 죄가 안 된다고 본다. 결국 이현령비현령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감정이라는 것은 대단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그것은 의견에 의해서도 훼손되고 사실적시에 의해서도 훼손되고 허위적시에 의해서도 훼손되기 때문이다.

 

결국 보호법익의 설정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명예훼손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서 그 보호법익이 그 죄명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일차원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 비결정성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명예훼손죄에 있어서는 항상 표현의 자유의 제한이 문제된다.

 

그리고 자유를 제한하는 사유로 '자유 이외의 사유'를 들게 되면, 동일한 논의 평면에서 정교한 논의를 펼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우리는 얼마만큼의 자유를 얼마만큼의 명예감정과 교환할 용의가 있는가?

 

한 쪽의 저울에는 자유를 올려놓고 다른 쪽의 저울에는 명예감정을 올려 놓는다.

 

이런 식의 사고는 이미 학문의 영역을 떠난 것이다.

 

왜냐하면 언제 저울이 균형을 이루는가는 이제 다시 '사회통념'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법익 형량을 학문적으로 정교하게 논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형량은 심리적, 내적 과정으로 이루어진 후에, 그 결단만이 그럴듯한 법문으로 쓰인다.

 

특히 이러한 식의 사고는 사회의 주류나 다수에게 인기 없는 사람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표현이 인기 없는 것이라면 그 표현에 비중이 적게 주어진다.

다른 한편 명예감정이 훼손당한 사람 자체가 인기 없는 사람이라면 그 명예감정에 그 비중이 적게 주어진다.

 

이런 식으로 법원은 언제나 주류나 다수에게 편안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안에서 원고는 매우 인기 없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 자는 헛된 시도로 끝난, 부당한 의혹제기의 책임을 질 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판결의 결론이 잘된 것이라고 느끼는 직관은, 결국 우리가 인기 있는 편에 서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반대로 우리가 매우 인기 없는 견해를 표명하면서 대단히 품위 없는, 그리하여 타인의 지능과 인격에 대하여 비난하는 말을 한 발화자를 본다면, 그 발화자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감정을 강하게 느끼게 되어, 그 발화자의 말을 의견표명이 아니라 사실적시로 보게끔 기준점을 바꾸는 강한 압력을 느끼게 되는 것을 아닐까?

 

명예훼손죄에서는 결국 헌법적 문제가 제기된다. 그것은 두 보호법익을 어떻게 형량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헌법적 문제가, 표현된 발화나 발화에 의해 공격받은 인격에 대한 '비'중립적인(non-neutral) 가치판단에 의해 좌우된다면, 우리는 사실상 우리가 그때그때 지향하는 가치지향에 의해 규범적 한계를 결정하는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진지한 검토 후에는 이러한 회의에 시달리게 되는 법리의 도구는, 충분하게 명석한 도구라고 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확인에 도달하게 된다:

 

이 사건의 법리적 자의성의 원인은 자유라는 법익과 자유 이외의 법익을 저울 위에 올려놓는 전통적인 형량의 관념에, 의견표명과 사실적시의 구분을 은근슬쩍 올려 놓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해결로 이끌리게 된다.

 

우리가 끝없는 반론과 재반론의 무한소급이 만들어내는 자의성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명예훼손죄에서 문제되는 양 보호법익을 같은 논의 차원으로 사영(project)해야 한다. 

 

그러한 논의 차원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equal and free relations of ciziten)이다.

 

이러한 논의차원에서 명예훼손죄는 다음과 같이 해명된다.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허위인 사실 적시에 의해 부당하게 자유의 여건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다. 만일 A가 어떤 기업에 취직하고자 한다고 하자. 그런데 A를 싫어하는 B가 그 기업에 "A는 다른 기업에서 마감 내에 일을 하지 못해서 완전히 프로젝트를 망치게 하였다."는 투서를 한다. 또는 아무 기업이나 구글링하면 다 보일 수 있도록 인터넷 상에다가 동일한 내용을 본다. 많은 지원자를 받는 기업으로서는, 그러한 투서나 비판이 제기된 인물에 대해서 자세히 검증할 비용을 투자할 유인이 없다. 따라서 그 지원자를 걸러낸다.

 

이 경우 A의 자유는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A의 취직할 자유는, B가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고용을 포기하게끔 할 자의에 의해 좌우된다.

 

이는 A의 취직할 자유가 오로지 A자신의 기업의 노동자로서 일할 적합한 속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에 비해 'B의 자의'만큼 축소된 사태다.

 

따라서 이러한 자유 축소는 정당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정당화하는 작업은 결국 B가 A의 일종의 노예주의 지위에 있다는 규범문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정당화는 헌법규범논증으로서 수행적 모순을 범하게 되며, 따라서 부당한 논증이다.

 

부당한 논증에 의해서만 정당화가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자유제한은 제거되어야 한다. 따라서 B는 허위사실을 적시할 수 없다.

 

진실된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두 가지의 자유를 제약한다. 그것이 전과를 비롯하여 과거의 잘못에 관한 사실일 경우에, 그것은 재사회화하여 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서 다시 살아갈 자유를 제약하게 된다. 왜냐하면 전과와 같은 정보가 무제한으로 공개되었을 때,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 전과를 고려하여 그 사람을 배척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사생활의 자유를 제약한다. 만일 우리가 인기없는 행위를 하거나 인기없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제약적으로 타인에게 알려질 경우, 우리는 항상 사회에서 자원을 가장 많이 통제하는 이들의 가치지향에 일치하는 방향으로 생활의 모든 측면을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은, 오늘날 상당수의 법학자들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 부분 자유의 체계로서 보존되어야 한다. 다만 그 적시되지 않아야 할 사실은 '명예감정을 해하는 사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배척적 반응을 통해 그 사람의 자유를 축소시키게 되는 사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보호법익을 자유로 보는 것은 법규범이 그 적용에서 평등한 내용을 갖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명예감정'이라는 것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 강하게 갖게 된다. 평사원보다는 대리가, 대리보다는 과장이, 과장보다는 팀장이, 팀장보다는 CEO가 자신이 받아야 할 사회적 존중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즉 명예감정은 차등화되기 쉽다.

 

최근 이 사회에서는 권력을 지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시하여 명예훼손죄 고발을 하는 일이 왕왕 벌어진다. 더 나아가 경찰과 검찰은 인사권을 가진 권력자들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셀프 수사를 하기도 한다. 단순한 의견 적시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압수수색을 하고 체포한다. 이것은 의견표명과 사실적시의 구분선이 흐트러진 데에서도 기인하는 비극이다.

 

반면에 자유를 보호법익을 보게 되면, 시민으로서 자유 축소는 보펴적인 규범 분석에 의해 행해지게 된다. 여기에는 지위에 따른 차등화가 수반되지 않는다.

 

보호법익을 자유로 보는 것은,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 중 일부가 자유롭고 평등한 헌법질서 내에서 도입될 수 없는 죄임을 해명해주는 또다른 장점을 갖는다. 종래의 설명은 명예훼손이 집단의 대규모성으로 인하여 '희석'된다는 마술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마술과 같은 설명이 갖는 헛점 때문에 때때로 권력기구들은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틀어막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검찰은 걸핏하면 검찰에 대한 비판을 그 구성원들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보고 처벌하려는 시도를 몇 번이나 하여왔다. 그러나 검찰이 집권세력에게 아첨한다는 것은 사실적시이기는 하여도, 검찰 구성원의 자유를 축소하지 아니한다. 왜냐하면 검찰의 수사라는 행위는 그러한 사실적시에 의해 전혀 축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 검찰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들의 명예감정이 훼손되었다는 것은 다른 이의 자유를 축소할 근거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부에 대한 비판을, 그 정부의 행정 책임자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없는 이유도 해명해준다. 농축산물 정책에 대한 비판에 일부 사실이 아닌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정책을 펼치는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 그러한 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인하여 장관 자신의 자유가 축소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관은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모든 권력을 그대로 보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비판을, 설사 그 정책 집행자가 특정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유에 대한 죄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이해를 이 사건에 대하여 적용하여 보자.

 

이 사건에서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지능이 낮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는 주장으로 인하여 의사의 자유는 축소되는가? 

 

이 질문은 의사의 명예감정이 사회통념상 훼손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는 다르다. 의사가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사회적 존중의 기준치를 사회통념상 확인할 필요도 없다. 전체 발화가 그 의사가 의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거나 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이 '의사란 모름지기 지능이 높아야 하는데 저 의사는 진짜로 지능이 낮아서 도저히 무슨 진료를 맡길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믿어 바로 그 지능에 대한 사실 착오 때문에 의사의 자유 행사가 축소되었는가만 물으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우리는 상당히 확실한 대답을 갖게 된다. 어느 누구도 그 의사가 의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거나 또는 그 외의 사회적 행위를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못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지능의 미달'이 실재한다는 기초 위에서 행위하지 않을 것이라느 점이 분명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의 지능은 그 사람이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땄다는 사실에서 이미 분명해지는 것이며, 그러한 발화를 진지하게 문자 그대로 지능의 미달에 대한 사실로 믿고서 바로 그 사실에만 기초하여 그 의사에게 진료를 맡기지 않거나 그 의사를 해고하거나 그 의사를 채용하지 않거나 하는 '행위 기초가 되는 정보의 부패'를 겪지 않기 때문이다.

 

행위 기초가 되는 정보의 부패는, 우리가 바로 그 행위의 이유로 P가 아니고 ~P라면 하지 않았을 행위를, 바로 P라는 정보를 신뢰하였기 때문에 하였을 경우에, 발생한다.

 

그러나 이 경우 사람들은 그러한 부패를 겪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의사에게 진료를 맡기지 않겠다거나 그 의사와 진지하게 담화를 교환하겠다는 결정은, 그 의사의 지능에 대한 착오된 사실에서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의사가 부당한 문제제기를 하였다는 스스로의 행위에서 초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위 기초가 되는 정보의 부패를 발생시키지 않는 발화는, 자유의 축소를 발생시키는 발화가 아니다.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보호법익을, 타인이 정보의 부패를 자의적으로 발생시킴으로써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자유라고 한다면, 이 경우 허위사실적시는 없다. 그것은 의견표명이다.

 

이로써 우리는 의견표명/사실적시의 구분의 기초를 자유의 축소라는 토대 위에서 건축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하급심 판결의 결론, 즉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을 보니 그 의사의 지능은 매우 저열하다는 발화를 의견표명을 본 결론은 옳았다.

 

그것이 옳은 이유는, 우리가 가치지향을 달리하는, 인기 없는 견해를 표명한 의사의 인격은 무시되어도 된다는 모종의 암묵적인 판단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것은 풍자와 사실의 적시가 사회통념에 의해 판단된다는, 사회통념을 사회통념으로 다시 근거지우는 무한소급에 의해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옳은 이유는, 우리가 명예훼손죄를 합헌적인 형법조항으로 보기 위해서는, 그 보호법익을 자유로 보아야 하며, 이 경우에 자유의 축소를 가져오는, 행위 기초가 되는 정보의 부패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

 

2. 새 판결이 제기하는 모욕죄 조항 자체의 문제.

 

가. 법원 판결의 내용

 

다음으로 법원은 "모욕에 의한 인격권 침해 여부"를 판단한다.

 

"특정인에 대한 순수한 의견의 표명은 표현의 자유에 의하여 보호되므로 그로 인하여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할 수 없으나, 순수한 의견의 표명이더라도 그 표현행위의 형식 및 내용 등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의견표명으로서의 한계를 일탈하여 상대방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다."고 하여 그 일반 이론을 설시한다.

 

그러면서 "각 글 중 돌팔이 박사님. 대학교수의 아이큐가 일베수준이니...’, ‘멍청하시긴. 그렇게 머리가 안 도세요?’, ‘뻔데기 아이큐 수준의 멍청한 생각을 했을까요?’, ‘편집증에 약간의 망상기까지...’, ‘이건 병입니다. . 정신병’, ‘웬 닭짓을 전문적으로 하는건지 원..’, ‘... 편집증. 거기에 약간의 망상기도 보이고...’ 등의 표현은 그 통장적 의미와 용법 등에 비추어 원고를 비하하거나 경멸적 감정을 표시한 것으로서 의견의 표명에 해당하는바, 이러한 의견의 표명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나 원고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살펴본다."고 하여 검토를 시작한다.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위 표현의 내용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나 사회상규에 위배될 정도로 원고에 대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표현의 자유 보장이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의 기본권 보장과 충돌할 수 있으나,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에 비추어 단순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의 표현행위에 대하여는 개인의 기본권 보장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보다는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통한 자기교정 기능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

 

SNS는 지식인들의 소통 공간이라기보다는 일반 대중이 참여하여 소통하는 공간으로서, 익명성, 의사소통의 쌍방향성, 접근의 용이성 등으로 인하여 일반 대중에 친숙한 언어와 표현이 사용되고, 그 언어와 표현이 다소 저급하다 하더라도 참여자들은 이러한 표현들을 암묵적으로 양해하면서 참여한다.

 

원고가 비록 영상판독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의사이기는 하나 SNS에 의견 교환을 위하여 참여한 이상 SNS의 이러한 특성 및 문화를 묵시적으로 용인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다른 사용자들과 달리 특별한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연세 세브란스병원의 A에 대한 공개검증 결과,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를 통하여 사적기관 및 공적기관이 AMRI 사진 바꿔치기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밝혔음에도 원고가 계속 위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피고로서는 원고에게 악의가 있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상황이었고, 피고는 이를 의사인 원고와 연관짓기 어려운 낮은 아이큐, 정신병 등에 빗대어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피고는 원고의 주장에 대하여 자신의 판단과 의견의 타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서, 위 표현의 동기나 내용, 표현 방법 및 정도 등에 비추어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 반론과 재반론

 

여기서도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사회상규를 예로 들었지만, 그 사회상규를 어떻게 파악하는가? SNS에서는 언어와 표현이 다소 저급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SNS에서 모욕죄가 자주 범해지고 있다는 것을 오히려 보여주지 않는가? 만일 어떤 범죄가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 범죄가 아니라는 증거로 삼는다면, 그 법리야 말로 범죄를 부추기는 법리다. 

 

그렇다면 어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상대방을 대단히 패륜적으로 깎아내리는 말이 오가는 것이 통상이라면, 그 커뮤니티에 참가한 사람은 그러한 표현을 감수해야 하게 되는데, 이것이야말로 모욕죄 성부를, 어떤 특정 집단 내에서 모욕죄가 자주 범해지고 있느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재반론을 제시할 수 있겠다.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이냐 아니냐는, 발화 그 자체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고 많은 경우 맥락에 의해 결정된다. 그 맥락은 그 발화가 이루어지는 언어적 상호작용의 환경 전체를 고려해서 결정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공무원이 상급자에게 '이 빠가 같은 아이큐가 낮은 돌대가리 같은 지시를 하다니, 초등학교도 안 나왔어요?'라고 말하는 상황과, SNS에서 누군가가 그 동일한 상급자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 빠가 같은 아이큐가 낮은 돌대가리 같은 정책을 지시하다니, 초등학교도 안 나왔어요?'라고 말하는 상황을 갖게 취급한다. 이러한 동일 취급이 부당함은 재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고려한 위 판결은 정당하다."

 

다. 모욕죄 자체의 문제점

 

이 반론과 재반론에서, 그리고 우리가 명예훼손죄에 대해서 살펴본 논의를 감안할 때, 모욕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모욕죄는 그 태생부터 명확성 원칙 위배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무엇이 모욕이 되는가, 즉 "사회상규에 위배될 정도로 경멸적이고 인신공격적인 표현"인가는 불명확성에 깊이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상규" "경멸적" "인신공격적"이라는 세 개념을 어떻게 조합하는가에 따라 주어진 사건에는 다른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과 같은 표현들을 고려해보라.

 

그는 인간 이하의,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기 전의 호미니드 종에 특유한, 그러한 야만적인 속성을 가진 존재다.

 

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을 고려해보라.

 

그는 입헌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는 도저히 어울리지 아니하는, 저열한 인격과 오물처리장치에 들어가야만 하는 정신을 보유한 존재다.

 

다음과 같은 표현은 어떤가?

 

그는 도저히 학자의 자격을 갖추지 아니한, 망상 속에서 제멋대로의 이야기를 떠드는, 삼류 인텔리로서, 대중을 혹세무민하는 것이며,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곧 정신에 쓰레기를 가득 채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표현이 사회상규에 위배될 정도로 경멸적이고 인신공격적인 표현인가 아닌가?

 

이것이 경멸적이고 인신공격적인 표현임은 분명하다. 모욕죄가 문제되는 발화는 언제나, 어떤 존재를 깔아보고자 하는 발화자의 의도가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관건이 되는 것은 '사회상규'만이 남는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사회상규'라는 하나의 개념 속에 집어넣게 되는 것이다.

 

사회상규라는 것은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일련의 기준선이다. 그러나 이 기준선은 상당히 유동적이며, 국지적이며, 때로 급격히 변화한다. 더군다나 이 기준선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데, 이 달리 적용되는 룰 자체도 급격히 변한다.

 

이것은 명확성 원칙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져온다.

 

더 나아가 그것은 불평등한 지배적인 사회적 관례를 순환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나이 많은 직장 상사가 나이 적은 직장 부하에게

 

"뭐 이 따구로 일을 하는거야? 이 따위로 하려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 자! 도저히 월급 받아 먹을 자격이 없어!"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사회상규에 어긋나서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받을 행위인가?

 

이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답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경우를 고려해보자.

 

나이 적은 직장 부하가 나이 많은 직장 상사에게

 

"뭐 이따구로 지시를 하는거야? 이따구로 지시하려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 도저히 월급 받을 자격이 없어!"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사회상규에 어긋나서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받을 행위인가?

 

전자의 경우에는 모욕적이긴 해도 모욕죄로 처벌받을 만하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모욕적이고 또 모욕죄로 처벌받을 만하다고 판단한다면, 결국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사람은 내재적으로 높은 인격적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전제를 도입하게 된다.

 

결국 모욕죄는 자유를 제한하는 토대로서 대단히 부적합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는 모욕적인 언사가 어떤 경우에 발화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자유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대통령을 가금류에 속하는 어떤 동물에 비유해서 비판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하며 그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어떠한 자유도 축소되지 않는다.

 

역사학자가 대중서를 써내지만, 그 스칼라쉽이 대단히 부족하고, 사람들을 혹세무민한다는 비평을 받는다고 해서, 고대사에 관한 민중의 망상에 아첨하며 척추라고는 없이 흐물거리며 입발린 소리를 써낸다고 비판받는다고 해서, 그가 다음 책을 출간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모욕이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경우는, 그것이 부당한 정신공격(offense)가 되는 경우다.

부당한 정신공격은, (1) 통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생활을 영위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2) 직접 들이미는 청각이나 시각으로 제시되는 것을 의미하며 (3) 반복성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반면에 그러한 요건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모욕은, 그 모욕을 한 사람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지, 즉 품위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초래하는 것이지, 직접적으로 모욕의 대상이 된 사람의 자유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형법의 근거를 우리가 자유라는 보호법익에 찾는다면, 우리는 모욕죄를 부당한 정신공격죄로 바꾸어야 할 것이며, 이것은 시끄러운 소음을 의도적으로 낸다든지, 남의 집 앞에 오물통을 가져다놓아서 냄새를 풍긴다든지 하는 행위와 함께 포괄하여 다루어야 할 것이다.

 

3. 인격에 대한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그러나 형사상 자유에 대한 제한이 오직 궁극적으로 자유를 근거로 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욕을 받은 사람의 어떠한 민사상 권리도 부인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동료 시민으로서 부당하게 그 존엄성이 노골적으로 부인되는 발화에 의해서 피해를 볼 수 있음이 인정되어야 하며, 그 피해는 배상의 근거가 된다.

 

다만 그러한 발화는 명시적으로 법률이나 법령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한 목록을 열거해야 하며, 그 목록을 벗어난 발화에 대한 규제는 오로지 그 목록을 갱신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해야 한다.

 

그 목록은 물론 욕설과 같은 키워드 자체를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키워드를 제시하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경우에도 분명한 형식과 내용을 지정할 수 있다.

 

물론 사람들은 법을 읽고 나서 그것을 피해서 경멸적으로 인신공격하는 방안을 생각해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가능성 자체가 바로 표현의 자유의 이념에 속하는 것이다. 만일 자주 사용되는 방법 중에 배상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목록을 갱신함으로써만 포함될 수 있다.

 

 

 

명예에 관한 죄는, 명예감정 내지는 인격권을 표현의 자유와 형량한다는 어렴풋한 이미지 속에서 혼돈 속에 내버려져 왔던 분야다. 판사들은 이로 인해 생기는 불합리들은, 여러가지 임기응변식의 법리를 고안해냄으로써 피하여 보려 하고, 그 결론들은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타당하다는 결론이 특정 집단의 가치지향에 친화적이라는 이유에서 확인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가치지향이 아니라 규범정립에 기반을 둔 이론적 토대를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제시된 것은 하나의 잠정적 제안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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