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학술번역의 중요성

 

(1) 효율성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이는, 무엇인가 새로 배울 때 한국어로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다. 특히 이런 사정은 매우 복잡하고 깊은 사고를 요하는 학술적인 분야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것은 학문의 초심자에게는 당연히 그렇다. 예를 들어 다른 문헌들을 전혀 한국어로 읽어보지 아니한 법철학 초심자가 로널드 드워킨의 <법의 제국>을 영어로 읽는다면, 또는 정치철학 초심자가 존 롤즈의 <정의론>을 영어로 읽는다면, 내용의 어려움에 외국어의 어려움까지 가중되어 그 습득이 매우 느려질 것이다. 특히 자연의 질서에 관한 논의와 달리, 인간이 만들고 변화시킬 수 있는 질서에 관한 논의들은 복잡한 언어로 이루어진 여러 노선들의 논증들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에는 상당한 많은 시간과 노고가 투여된다.

실제로 영어로만 하는 대학수업에서는 학생들이 이중의 어려움을 겪는다. 필요성이 있어 영어로 수업을 하더라도 한글 자료들이 함께 제시된다면 그 어려움은 훨씬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의 초심자가 아니라도 자신이 이미 숙달되어 있는 개념과 기술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한글로 된 문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상당히 효율적이다. 특히 고전에서 많은 사유를 길어내어야 하는 학문분야에서는 새로 나오는 문헌들뿐만 아니라 예전에 나온 문헌들을 모두 풍부하게 읽는 것이 많이 요청된다. 이를테면 자연법 사상에 관하여 이해하려면, 최신의 자연법 논문들만 읽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연법 사상의 고전인 풀러(Fuller)의 <법의 도덕성>을 원서로 읽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한국어로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거니와 이해도도 더 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논증이 널리 퍼지는 데는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이 상당히 효과적인 촉매제 역할을 한다. 다른 한편, 학자는 자신이 숙달된 자기 분야의 논의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논의까지 읽어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러나 언어는 방대하기 때문에 보통은 자기 분야의 논의를 잘 읽어내는 데에만 특별히 숙달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는 법학 분야의 문헌을 원어로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자신의 전공 분야 이외의 지식은 이미 제1언어로 그 바탕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은 잘 하는 주된 외국어가 있기 마련이며, 그 이외의 외국어는 그것을 주된 외국어로 하는 학자의 번역서를 읽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특히 존중할 만한 스칼라쉽이 있는 학자가 쓴 저서는 최대한 많이 번역되어 있을 수록 좋다. 논문으로는 전체 그림을 파악하기 힘든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저서들을 효율적으로 읽을 수 있는 환경에 있어야 파악이 가능하다. 또한 이미 배웠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서 참조하기에도 책의 능력이 논문의 능력보다 뛰어나다.

예를 들어 통계학의 최신 이론과 기법에 대해서 정리한 교과서가 있다면 재빨리 번역되어 소개되는 것은, 초심자에게만이 아니라 숙달된 연구자에게도 좋다. 통계학이 전공이 아닌 통계를 활용하는 전공 분야의 학자들은 이러한 이론적, 기술적 성과에 대한 업데이트가 아무래도 늦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미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드러난 방법론을 활용하여 연구를 하게 되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다.

또한 다른 인접분야의 학문적 성과를 활용하여 자기 분야의 학문에 기여하는 데도, 잘 짜여진 저서들이 많이 번역되는 것은 도움이 많이 된다.

이런 이치에서, 번역이 광범위하게 빨리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유학비용이 절감된다. 언어적 장벽 때문에 학문적 성과의 업데이트가 늦어지는 시차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단 초심자는 자기 나라 말로 배운다는 이점을 통해 재빨리 상당한 숙련에 이르게 되며, 이와 동시에 외국어로 학문하는 법을 익힌 결과, 한 명의 학자로 독립했을 때 곧바로 훈고학이나 뒤따라가는 주변응용이 아니라 최첨단의 핵심 문제에 뛰어들 수 있게 된다.

특히 문헌들이 커다란 연결망을 이루고 있는 분야에서는 이런 효율성이 더욱 크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존 롤즈의 저서만 달랑 번역이 되어 있을 뿐, 롤즈의 작업을 출발점을 해서 여러 갈래로 분기하고, 수정하고, 정교화한 그 후속 롤지언들의 학문적 성과들은 아예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롤즈에 대한 낡고 통속적인 비판들이 어이없게 횡행하는데 이를 교정하기에는 이 연결망에 속한 외국 문헌을 두루 섭렵한 한 두 사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배경지식으로 공유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애초에 생산적인 논의가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를 풀면서 그 배경지식으로 되어야 할 것을 효과적으로 요약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요약에는 관련된 쟁점들을 다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엄밀하고 생산적인 논쟁이 이루어지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는 하기와 내버려두기, 이중결과의 원칙 등에 관한 책이 전혀 번역되어 있지 않다. 그 결과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학자들의 논문도 한 두 편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런데 이 원칙들은 의무론과 목적론의 경계를 설정하는 중차대한 원칙이다. 그래서 이 원칙에 대한 이해의 결여는 돌고 돌아 결국 헌법 규범을 목적론적으로 읽는 크나큰 해악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로, 학술번역은 지식 생산에서 많은 효율성을 증진시키며, 이 효율성은 단지 9가 10이 되는 정도의 효율성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논의에서 아예 빠진 거대한 구멍들을 채워주고 이에 따라 커다란 지식 생산 네트워크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2) 공공성

 

학자들은 외국어로 글을 읽는 것에 익숙하지만 공중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학자들이 읽어야 하는 문헌을 공중도 읽어야 하는 분야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공민학(civics)이다. 공민학은 도덕철학, 정치철학, 정치학, 경제학, 법철학, 헌법학, 사회학, 심리학 등등 입헌 민주주의 정치질서 내에서 권리와 의무를 할당하고 이득과 부담을 조정하는 데 알아야 하는 모든 학문의 집합체를 가리킨다.

 

여기서 공중도 '읽어야' 한다는 것은 공중 개개인이 그것을 다 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이 그걸 다 읽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 특히 대중이 흔히 읽는 글을 쓰고 흔히 듣는 말을 하는 이들이 그것을 읽어 소화했다는 통로로라도 그것이 이 사회의 공적 토론의 중요한 배경지식으로 기능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평범한 공중이 흔히 읽는 글을 쓰는 언론인이나 문필가, 그리고 흔히 듣는 말을 하는 정치가, 관료, 법률가, 교사들은 그 삶이 바쁘기 때문에 보통 원리적이거나 정책적인 문제에 관하여 한국어로 된 문헌들만을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지적 세계의 한계는 다시금 대중의 지적 한계를 규정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에서 평범한 공중은 '민주주의', '자유', '권리'와 같은 개념을 둘러싼 의미망과 신념체계를 흔히 통용되는 민담에서 얻는다. 예를 들어 오늘날 민주주의는 다수의 선호 집계를 의미하며, 자유란 지배적인 목적 추구를 위해 제한되고 남은 허락된 행위영역을 의미하며, 권리란 한낱 잠정적인 이익 주장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이해가 구축된 까닭은 공중이 흔히 접할 수 있는 말과 글이 바로 이런 개념 이해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민담적 이해에 의문이 생기는 경우 지적 호기심이 강한 어떤 공중 개인들은 이론적 상승(theoretical ascent)을 자연스럽게 밟기 마련이다. 즉 '왜 그런가?'를 계속 물어 나가면서 심층 원리와 그 정교한 근거들을 알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재에는 이론적 상승의 길이 많은 부분 막혀 있다. 즉 더 심층적인 내용에 접근하고 싶을 때가 생겨도, 단지 언어능력의 부족 때문에 그 길이 막히고 있다. 그 결과 잘못된 이해에서 빙글빙글 돈다면, 공중들 사이의 필요한 지식분업은 명백한 결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제에 의해 번역된 문헌의 경계가 대다수 공중의 지적 세계의 한계를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그 어떠한 문헌이라도 직접 그 문헌을 사고 빌려 읽은 그 사람의 지적 한계를 확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런저런 여러가지 통로로 공중의 협소화된 지적 한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대다수 공중의 지적 수준은 그 사회의 정치질서의 수준을 결정한다.

 

따라서 공민성의 고양이 필수적 전제조건인 민주주의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학술번역은 공공적으로 중요하다.

 

2. 오늘날 시장의 추세와 학술번역이 처한 상황

 

오늘날 한국 출판시장은 전에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수축을 겪고 있다. 이 수축은 대단히 구조적이어서 어찌할 수가 없는 수준이다.

 

적어도 형식상 양으로 따지자면, 사람들은 소셜 네트워크가 발명되기 이전에 못지 않게, 아마도 더 많이 글을 보고 있다. 여기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소셜 네트워크의 글들,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들, 그리고 인터넷 기사들이다. 즉 활자를 접하는 시간은 예전보다 훨씬 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글들을 보는 행위를 과연 독서와 같은 격위의 '읽기'라고 보아야 할지가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런 글들을 볼 때 사람의 눈은 많은 것을 생략하면서 빠르게 움직이며, 그래서 읽는 것이 아니라 훑고 있기 때문이다. 

 

훑기의 시대에도 수필이나 자기계발서는 쉽게 읽힐 수 있다. 이런 책들은 읽는 데는 별다른 특유한 형태의 정신적 작업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증적인 책들을 읽는 데는 고유한 방법을 체득할 필요가 있다.

 

이 방법을 체득하지 못하면 논증적인 책들의 독서는 단지 고역이 될 뿐이다. 오늘날 논증적 책을 읽는 방법을 체득하지 못한 세대가 점점 불어나고 있다.

 

이 시기는 스마트폰의 보급 시기와 일치하며, 그 이후로 출판시장의 규모는 추세적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것은 책 읽는 방법을 알던 사람들도 이전보다 상당히 적게 읽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큰 요인은 읽지 않는 세대가 성인 세대가 되어 나이가 들면서 전체 인구 가운데 해가 갈수록 더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시장 주체들이 읽는 것의 전자화에 대응하지 못한 실책이 크다. 전자책 시장에 거의 모든 출판사가 일찍 뛰어들었던 영국이나 미국, 독일에서는 종이책 판매의 감소분을 전자책 판매의 증가분이 매우고 있어서, 약간의 감소는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규모를 상수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표준화를 이끌 시장지배적인 플랫폼의 부재, 그리고 각 출판사가 전자책에 일찍 뛰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들도 전자책 리더기로 그다지 볼 것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그바람에 전자책 시장규모가 여전히 한자리수 미만으로 머물러 있어 이것이 다시 각 출판사가 전자책을 만들지 않는 이유가 되버린 상황이 벌어졌다. 이 사회의 지적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국가정책 입안자가 있었다면, 변환기에 인센티브를 과감히 투여해서 전자책 자료들이 대거 성장하도록 했어야만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KPIPAA 출판산업 동향(2018년 상반기)>에 따르면(보고서 85면, 표 4-43) 단체여행비, 문화서비스, 운동 및 오락서비스, 서적, 장난감 및 취미용품 다섯 개 오락, 문화비 상위지출분야의 전체의 월평균 가구당 지출비가 2007년에 69,109원에서 2017년 132,486원으로 연 평균 6.7% 증가했는데 반해, 서적만 유독 2007년 20,868원에서 2017년 12,157원으로 거의 반토막 가까이로 떨어졌으며, 매년 전년도보다 마이너스 5.3%라는 경악할만한 수치를 기록하였다.

사실 그 자체로도 충격적인 도서구입비 규모의 축소의 추세는 학술적인 책들에 가해지고 있는 타격을 과소평가해서 보여준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출판시장에서 가장 큰 비율은 교과서, 자습서, 참고서, 수험서와 자기계발서가 차지하고 있고, 이런 서적에 대한 지출비용은 어느 정도 항상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 속에서, 논증적인 저서를 쓰는 저자는, 자신과 독자가 함께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알게 된다. 예전에는 30대 이상의 수도권 거주민이 주된 독자였던 저자는, 이제는 40대 이상의 수도권 거주민이 주된 독자임을 보게 된다. 아마 10년 후에는 50대 이상의 수도권 거주민이 주된 독자가 될 것이다. 이로써 주의깊게 책을 읽어주던 1만 명의 독자를 가지던 저자라 할지라도 점차 아주 소수의 독자만이 읽어주는 쭈그리 저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자신의 처지를 목도하게 되며, TV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늘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견해를 내어놓는 경박한 사람들이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장악하는 사태는 강화되는 것을 시대정신으로 인정하게 된다.  

 

학술적 저서에 비해 학술번역서는 사정이 더 좋지 않다. 왜냐하면 번역서에는 고유한 비용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원저자를 대리하는 에이전시에는 보통 5년의 기간의 판매분에 대한 선인세를 지급해야 하는데, 이 선인세는 판매가 그만큼 되지 않더라도 되돌려 받지 못하는 금액이다. 그리고 실제로 번역은 에이전시와의 판권 계약이 마무리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하게 되므로, 실제 출판사가 5년치의 선인세를 내고 책을 팔 수 있는 기간은 3년 반 정도 남짓한 것이 실정이다. 게다가 몇몇 유명 해외 학술출판사들은 높은 선인세 비용을 요구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출판사들에서 나온 책들이 명저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외에서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어차피 팔리지 않는 학술서적, 원저작료 선인세 추가 비용까지 감수하면서 출간하려고 하는 출판사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진지한 스칼라쉽을 갖춘 학자들의 학술서 대신, 언어적 조작을 일삼는 유사학문을 하면서 대학이나 각종 기관에서 똬리를 틀고 형식적 자격을 갖춘 저자들의 책을 주로 접하게 된다. 번역과 관련하여 체계적인 협소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이것은 도서가 보통의 재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서는 선호 형성적 성격(property of preference shaping)이 강한 재화일 뿐만 아니라, 그 심층성에서 단연 따라올 다른 재화가 없다. 즉 그것은 단지 기존 선호를 만족시켜주는 역할만 하지 않고 새롭게 선호를 형성한다. 좋은 철학 명저는 그 전에 철학책들을 읽은 사람들만이 선호할 수 있다. 게다가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삶 전체의 방향을 바꿔 놓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경쟁시장조차도 도서에 관해서는 내재적인 결함을 갖는다. 즉, 매스미디어 등에서 유행을 타는 저자가 쓴 것이거나 기존의 신념에 아첨하거나 즉발적인 즐거움만을 주거나, 시험준비 등에 필요한 도서만이 살아남고, 독해에 꾸준한 훈련과 축적이 필요한 서적들을 도태시키는 경향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 경향성은 오늘날 글 읽는 환경의 변화로 크게 격하되었다.

 

3. 번역청?

 

일각에서는 시장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므로 국가의 할 일로 번역청을 설립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국책지식기관은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로, 무엇보다도 그 규모는 작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아마도 20-30명 정도의 임기직 공무원을 채용하여 운영될 것이며, 한 해에 출간되는 번역서의 수는 기껏해야 20권에서 많아야 60권 정도일 것이다. 이것으로는 상황을 바꾸기에는 거의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둘째로, 효율성이 낮다. 번역청에서 번역 근무만 하는 공무원을 채용하고, 서포트하고, 번역서 선정을 관료적 절차를 따라 결정하고, 외부전문가의 감수를 받고 하는 모든 과정에서 소요되는 행정비용은 어마어마하다. 실제로 아주 탁월하게 번역 일을 하는 사람에다가, 행정처리사무를 담당하는 사람, 여러 명의 팀장, 부장, 그리고 청장까지 겹겹이 관료적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이런 것을 모두 감안하면 1년에 2권 정도를 번역하는 번역자의 인건비 및 이 행정비용을 모두 합치면 8천만원에서 일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어림짐작된다. 셋째로, 국책지식기관은 학적 관심과 관료적 관심이 융해되기 마련이며, 따라서 다양성이나 자율성이 제약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런 기관이 설립되면 국가는 학술번역과 관련하여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즉 우연히 그러한 국책지식기관에 고용된 이들이 이 사회에의 모든 학술 번역을 담당한다는 식으로 상징적으로 퉁치고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그간 학술번역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다가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번역을 하여 소개한 것이 절대 다수다. 이 모든 자원들을 그저 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된다.

 

4. 몇 가지 제안

 

따라서 번역청 설립 제안은 거부되어야 한다.

대신에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제안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1) 학술번역의 원저자에 지급되는 선인세를 국가는 보조해야 한다.

 

무엇이 보조되어야 할 학술서인지는 그 원저자가 진지한 스칼라쉽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고, 그 내용과 형식이 진지한 학술적 주제를 드러내고 있는가라는 형식적 판단에 의한다. 이러한 형식적 판단은 해당 학계의 학자들의 의견제시자 풀을 만들어서, 그 풀에서 랜덤으로 몇 명씩 뽑아서 자료를 제공하여 이메일로 간단히 물어보면 된다. 형식적 판단이므로 머리를 맞대고 하는 회의는 필요없고, 심사에 또 재정이 투입될 필요도 없다.

 

보조금의 액수는 액수가 적어지더라도 정액으로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일단 처음에는 백만원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적절한 방식으로 예산을 추가로 마련할 수 있다면 이백만원이나 이백오십만원 정도로 올릴 수 있겠다. 형식적 선별을 하게 되면 보조금 액수는 작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출판사가 어느 정도 시장의 예측도 고려할 유인은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청 수가 너무 많아져서 형식적 선별이 불가능하게 되고, 자의적인 내용적 선별로 가게 될 위험이 있다. 그리고 에이전시가 선인세를 많이 요구한다고 해서 요구하는 대로 무조건 전액 지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그와 같은 정책을 취한다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 된다면 아마도 불합리한 교섭이 진행될 토대를 일부러 만들어주는 셈이 될 것이다. 따라서 정액으로 하되, 선인세를 지급하고 지원액이 남는다면 출판사와 저자가 반씩 나누는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다.

 

이에 더하여 다음과 같은 시장실패의 교정 조치가 필요하다.

 

(2) 공공 도서관은 학술번역서의 구입이 의무화된다.

 

보조를 받아 학술번역임이 인정된 책을 모든 곳의 공공도서관은 의무구입해야 한다. 왜냐하면 번역된 학술서라도 아주 많은 수가 결국 판권 연장을 하지 않고 절판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판된 번역서를 국회 도서관에 가야지 확실하게 구할 수 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크게 상관이 없겠지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이 경우에 상당히 애로사항이 생기게 된다. 만일 모든 공공도서관이 학술번역서를 구입하는 것이 원칙이라면, 절판된 책들은 언제나 공공도서관에 구비되어 있게 되므로, 공공지식의 배경을 항시적으로 이룰 수 있게 된다.

 

이 중 (2)에 소요되는 예산은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 구매우선순위에서 학술서가 우위를 차지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공도서관은 공공성을 우선시해야 하므로 사리(self-interest)나 유흥(entertainment) 목적의 도서보다 공공지식에 관한 도서를 우선 구입하는 것은 그 본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만일 구매도서량을 줄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저자 초청 강의 행사를 줄이는 것이 옳다. 초청 강의 인사의 풀은 인맥과 도서관의 담당 직원의 지적 한계에 의해 특정되게 된다. 그 경계가 지식 생산과 전파의 공공성과 일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도서관의 도서는 누구라도 자신이 편한 시간, 특히 주말에 사용할 수 있는 반면에, 초청 강의는 그 강의 시간에 여유가 있고 그런 강의를 곧잘 듣곤 하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제한되는 것이어서, 책을 구매하는 것에 비해 공공성이 많이 떨어진다.

지역의 도서관으로서는 이런 사업을 많이 벌이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하고 성과로 적기도 좋고, 직접 대면하는 지역민들의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공익은 공공기관 직원의 실적이 두드러짐이나 우연히 여가가 많은 지역민들의 심리적 만족도가 높아짐과 정확히 같은 것이 아니다. 제한된 예산 하에 도서관 행정이 우리 사회의 지식 환경의 공공성을 증진시킨다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옳다. 단지 눈에 보이기에 다채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을 좋은 실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 것이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우선순위에서 후순위의 일을 한 것으로 평가하는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에 관한 예산은 우선, 현재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우수도서 선정 및 각종 도서관련 행사, 독서활동 관련 프로젝트를 모두 폐지하여 조성하고, 이에 더하여 추가로 예산을 할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날 극소수의 책만 뽑아 무슨 우수교양도서니 우수문학이니 하는 수상이 국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이 책을 쓴 저자와 출판사에게 보상을 주는 제도가 있다. 그런데 사실 그 선정된 교양도서가 선정되지 못한 도서보다 질적으로 우수한지는 의문이 있다. 실제로 선정된 도서 하나를 임의로 택하여, 그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선정되지 못한 도서를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기관과 위원회에서 이런 선정을 하므로, 수많은 출판사들이 여기에 응모하느라 소요되는 노동과 이를 처리하는 행정비용이 만만치 않다.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도 혹시나 싶어서 이를 준비하고 서류를 내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수없이 출판되는 도서 가운데서 그 극소수가 다른 도서보다 정말로 뛰어나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므로, 그런 선정은 크게 의미가 없다. 따라서 심사위원들이 모여 회의하는 행정비용도 낭비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세금으로 문화물의 내용적 심사를 하여 수상을 하는 것은 결국 우연히 그 심사위원으로 포함된 사람들의 판단에 의하여 누군가에게 혜택을 더 주는 소득 이전의 한 형태이다. 게다가 수상은 정말로 극히 소수의 책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출간을 촉진하는 효과가 아예 없다시피 하다. 왜냐하면 저자와 출판사로서는 그러한 절차에서 선정되지 않는 것을 합리적으로 예상하며(그 선정에 출간을 의존하는 경우에는 지나치게 낮은 확률의 사건에 출간 결정을 의지하였으므로 비합리적이다) 결국 이와 무관하게 이미 출간을 결심한 책들이 원고로 제출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앞서 1의 항목에서 지적한 효율성과 공공성 면에서 학술번역의 중요성이 인정된다면 (1)의 통로로 지원되는 예산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지원은, 다양성과 자율성을 그대로 두면서 전국의 학자들이 누구나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공평성을 증진시키고 자의성을 줄인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의 실행은 합리적이고 합당한 것이라 하겠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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