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베너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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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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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등대
    2019.03.20 21:4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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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달을 기다렸네요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읽어보겠습니다.
  2. 2019.03.20 22: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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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리다가 원서샀는데 조금만 더 기다릴껄...ㅠㅠ
  3. 등대
    2019.03.30 09: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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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책을 사서 읽고있습니다

    한가지 궁금한것이 있는데 이한변호사님도 반출생주의자 이신가요?



    • 2019.03.30 12:1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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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너타의 논증에서 특별한 결함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또한 환경윤리, 출산 윤리, 인구 윤리의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비동일성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명을 해주는 우위점을 다른 이론에 비해 갖는다고 봅니다. 반대로 베너타의 논증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논증이나, 아니면 베너타의 논증을 취하지 않고 비동일성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문들을 다수 읽어보았지만, 하나같이 결함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더 납득이 가는 반대 논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베너타의 논증을 잠정적으로 참으로 받아들입니다. 제가 베너타의 책을 읽은 이유는, 존 롤즈의 원초적 입장상의 계약에서 세대간 문제의 처리와 환경윤리와 관련된 주제를 고민하다가, 데렉 파핏의 non-identity problem에 닿게 되었고, non-identity problem에 대한 여러 해법들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베너타의 책을 논평하는 논문을 통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어 접한 것입니다. 롤즈가 세대간 정의 문제를 처리한 방식은 다른 쟁점과 달리 상당히 독특한 것인데, 세대간 정의라는 쟁점과 다른 쟁점을 구분하는 이유에도 결국 비동일성 문제라는 쟁점이 개입하게 됩니다.
  4. 2019.04.04 21: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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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북 출간 계획은 없나요? 예전 어느 글에서 나름의 원칙으로 항상 이북도 함께 출간하겠다고 쓰신 것 같은데
    • 2019.04.04 22: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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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하신 글에서 직접 쓴 책에 한해서 이북을 함께 출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번역서의 경우에는 제가 고집할 수 있는 문제는 못됩니다. 왜냐하면 원저작자 에이전시로부터 전송권을 따로 또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판권비용이 더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득이 번역서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전자책을 같이 내고 있지 못합니다.
  5. 2019.04.19 18: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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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궁금한 게, '신경과학의 철학'에서 줄기차게 비판논리로 삼았던 '무의미한 논증'에 해당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 책 자체도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나뭇가지는 잠을 자지도 않고,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는다.'
    즉 '행위자의 서술어는 오로지 의식적 행위자에게 적용할 수 있다'라고 하는 말이 걸리더라고요. 1. 삶을 사는 것과, 2. 삶을 시작하는 것이 서로 다른 논제이기에 1. 삶을 사는 것에서의 이로움(즉 삶의 의미)문제로 접근하는 것과는 구별지어 , 2번의 경우는 '의식적 행위자'가 아닌 존재(즉 존재하지 않은 존재)에게 의식적 행위자의 서술어(고통스러워 한다, 쾌감을 느낀다)를 적용시키는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빨간색이면서 빨간색이 아닌 색과 파란색을 비교할 수 없듯이요.
    이한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 2019.04.20 22: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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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20-26면까지 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베너타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비존재자에게 어떤 속성을 귀속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태어난다는 사건이 일어난 사태가, 태어난 그 존재자에게, 그런 사건이 없는 사태보다 더 나쁘리라는 것만을 의미할 뿐입니다.
      어떤 두 사태를 비교하고 한 사태가 어떤 주체에게 더 낫다고 할 때, 비교대상이 되는 사태 모두에 그 주체가 존재할 것은, 비교의 필요조건이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판단에는 아무런 논리적 난점도 없습니다.

      사태A: 레지스탕스인 데미앙은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3년 10월 2일 18:00에 총을 맞아 사망하였다.
      사태B: 레지스탕스인 데미앙은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3년 10월 2일 17:54에 총을 허벅지에 맞아 부상을 입었고, 포로로 붙잡혔다. 그리고 1945년 10월 3일 09:00부터 적으로부터 지독한 고문을 일주일간 받다가 1945년 10월 9일 18:00에 사망하였다.

      위와 같은 사례에서 사태B가 실제로 전개된 역사라고 하여봅시다. 1945년 10월 3일 이후의 시점에서 비교대상이 되는 사태A에서 데미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데미앙을 위해서 사태B보다 차라리 사태A가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어긋나는 점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사태A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데미앙을 제외한 동료 레지스탕스들은 모두 일주일간 지독한 고문을 받다가 사망하였습니다. 동료 레지스탕스들이 고문을 받으며 생각하길, '데미앙은 참으로 운이 좋다. 이런 고통을 현재 겪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고통을 현재 겪지 않는 데미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즉 동료 레지스탕스는 존재하지 않는 데미앙에게 운이 좋다는 술어, 그리고 더 나은 처지라는 술어를 귀속시키는데, 여기에는 아무런 난점도 없습니다.

      물론 위 사안에 사용된 술어 '죽은 것이 더 나았다/운이 좋았다', 또는 '그때 죽었더라면 더 나았을 것이다'는 일단 존재하게 된 뒤의 비존재(Post-Mortem Non-Existence)에 관한 진술입니다. 반면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진술은 존재하기 전의 비존재(Pre-Vital Non-Existnece)에 관한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 차이는 제기하신 의문과는 무관합니다.
      왜냐하면 제기하신 이의는, 겉보기에 비존재자에게 술어를 귀속시키는 문장을 사용하여 두 사태에 대한 비교판단을 나타내는 것은 언제나 논리적으로 넌센스라는 이의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이의는 위와 같이 죽음 이후의 비존재가 더 낫다는 문장들이 전적으로 이치에 닿음에 의해 이미 반박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이의가 타당하다는 전제에서, 베너타가 단지 축약적(shorthand)이고 편의적인 진술이라고 명시적으로 짚고 있는 진술의 표현을 문제 삼아 그 배후에 있는 비교 판단의 가능성 전체를 부인하는 것 역시 타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비존재에게 속성을 실제로 귀속시키는 논리적 함의를 갖지 않고서도, 어떤 주체가 존재하는 사태와 존재하지 않는 사태를, 그 주체를 위해 어떤 것이 더 좋은가를 비교할 수 있다. 그리고 겉보기에 비존재자를 주어로 언급하는 문장들은 단지 그런 비교판단을 축약적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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