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칸트는 2인칭 관점이 필요한가(서요련 번역) (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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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회원의 글:

 

미국 철학자 스티븐 다월에 관해서는 이미 시민교육센터에 두 논문 자율성의 가치와 의지의 자율성두 종류의 존중이 번역되어 있어 포르스트나 라폰트 같은 이들보다는 익숙한 이들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시민교육센터의 입장과는 별개로 국내에서 다월의 논의는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련 논문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다월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은 기껏해야 석사논문 하나 정도에 그칩니다. 선행 연구가 일천하기 때문에 저 역시 다월의 이 논문을 번역하면서 역어 선정, 요지 이해 등에서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해한 선에서 본 논문 왜 칸트는 2인칭 관점이 필요한가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1) 칸트 도덕철학을 실천적 전제조건 논증(practical presupposition arguments)으로 풀이하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 (2) 이 논증은 그 자신의 용어, 가령 1인칭 용어로는 적정하게 해명될 수 없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1인칭 관점으로는 칸트 윤리학의 핵심인 의지의 자율성, 도덕법칙, 존엄성을 왜 가정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 (3) 이 논증이 성공하려면 2인칭 관점(second-person standpoint)을 도입해야 한다. 2인칭 관점을 취해야만 자율성, 도덕법칙, 존엄성이 실천적 전제조건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논문은 위 요점을 입증하기 위해 칸트의 실천철학 3부작 윤리형이상학 정초, 윤리형이상학, 실천이성비판을 폭넓게 인용하면서도, 여타 현대 칸트주의자들(코스가드, 우드, 무어 등)의 해석을 논박하는 흐름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측면은 결국 2인칭 관점을 해명하는 대목이겠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평등한 도덕적 인격으로서 도덕을 준수하고 인격으로서 지닌 평등한 존엄성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는 측면 말이다. 곧 밝힐 것처럼 이 측면은 환원 불가능하게 2인칭적이다. 다시 말해 이 측면은 우리가 주장·요구를 서로 제기하고 수신할 권한에 관한 것이다. 1인칭 실천적 전제조건 논증은 숙고하는 행위자가 도덕법칙과 인격 존엄성을 규범 준수의 이유로 간주해야만 한다는 사실까지만 보여줄 수 있다.(142)

 

1인칭이 ’, 3인칭이 ’, ‘그녀’, ‘그들’, ‘그것들이라면, 2인칭은 입니다. 내가 규범 주장·요구를 발화할 때, 이 발화를 말 그대로 수신하는(받는, 듣는) 이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수신자를 상정할 때 어떤 해명 책임(accountability)이나 답변 책임(answerability)이 발생합니다. 나의 주장·요구의 이유를 해명하고, 상대의 이유 물음에 답변할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저는 다월의 주장을, 이러한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원천으로 인격 존엄성을 가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다월이 주장하는 바대로 2인칭 측면은 칸트에서 유래한 윤리적-정치적 사고에서도 핵심적이라는 점을 보이려면 시종일관 분석적으로 이 문제를 해명하고 있는 다월과 함께, 여타 철학자들의 보완 내지 결합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하버마스는 다월과는 좀 다른 경로로, 의사소통행위이론저술에서 사회학자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의 의사소통이론을 수용한 바 있습니다. 미드의 주격 와 목적격 를 분석한 하버마스는 자아와 타자가 서로 의사소통적으로 행위할 때 취하는 수행적 태도에는 타자가 자아의 화행제안에 혹은 아니오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전제가 결부되어 있다”(의사소통행위이론 2, 장춘익 역, 105)고 말합니다.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타자 혹은 청자의 역할을 강조한 점은 미드-하버마스 버전의 2인칭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버마스와 다월은 동시대에 저술을 했는데, 일견 유사성이 있음에도 서로 인용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두 판본의 2인칭 관점을 비교·대조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편 일전에 번역한 라이너 포르스트의 정당화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justification) 개념도 2인칭 관점과 상당히 근친적인 개념으로 보입니다. “자신이 수신자가 되는 행위, 규칙, 구조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제공될 자격 있는 자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무조건적 요구”, “이것은 다른 인간이나 국가가 거부할 수 없는, 모든 인간의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요구이다. 정당화에 대한 권리는 적어도 적정한 이유[근거]가 제공될 수 없는 방식으로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자율적인 도덕적 인격으로 존중받을 권리이다.”(Rainer Forst, “The Basic Right to Justification: Toward a Constructivist Conception of Human Rights”, 40) 다월의 논의가 2인칭 관점에 상당히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반면, 포르스트는 더 나아가 정당화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발전시켜 인권이론에 접목했다는 차이가 있겠습니다.

 

이른바 2인칭 이론가들이라고 불러도 좋을 일군의 철학자들은,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강조점은 다를 수 있어도, 서로 다른 수준에서 상호보완적인 2인칭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2인칭 관점이 자신의 분야, 가령 법학이나 윤리교육에서 문제해결의 자원이 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유의미한 공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견입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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