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스캔론, <왜 불평등이 문제인가?>

T. M. Scanlon, Why Does Inequality Matter?, Oxford University Press: Calrendon, 2018

역자: 이한

 

서문과 제1장 들어가는 글 발췌번역.

 

 

 

ix

서문

이 책은 201312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한 유히로 강연(Uehiro Lectures)을 수정하고 확장한 것이다. (...)

(...)

 

1

1. 들어가는 글

극히 심한 수준의 불평등이 현재 미국과 세계 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점은 심각한 도덕적 반대를 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명확하지 않다-불평등에 반대하는 도덕적 이유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만일 가능하다면 불평등을 줄이거나 제거할 도덕적 이유들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 이유들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얻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부자에게서 빈자에게로 자원을 재분배하기를 원할 하나의 이유는, 그저 그것이 부자의 후생에 비교적 작은 비용만 초래하면서 빈자의 처지를 더 낫게 만드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재분배 정책을 뒷받침하는 강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은 그 기반에서는 불평등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 어떤 이의 복지와 다른 이의 복지 간의 차이에 대한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빈자의 복지를 증가시킬, 아마도 매우 강력한 하나의 이유다. 어떤 사람이 빈자보다 훨씬 더 처지가 낫다는 사실은 이 재분배의 이론적 근거(rationale)와는 무관하다. 이는 그런 재분배는 단지 유명한 미국 은행강도 윌리 서튼(Willie Sutton)이 왜 은행을 털었는지 질문 받았을 때 말했다고 이야기되는 것 때문에 이루어지는 재분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거기가 돈이 있는 곳이니까!”(that’s where the money is.)

이와는 대조적으로, 평등주의적 이유들은, 일부 사람들이 가진 것과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의 차이에 반대하고 이 차이를 줄이려는 이유들이다. 이어지는 내용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이유들에 특히 관심을 둘 것이다. 평등주의적 이유들이 처지가 나쁜 이들의 처지를 개선한다는 이유보다는 더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 아니라-보통은 더 중요한 이유가 아니다-, 그것들이 더 수수께끼 같기 때문에 그렇게 할 것이다.

평등에 대한 관심(concern with equality)은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보일 수도 있다. (...) [로버트 노직의 반론 소개] (...)

 

2 (...) 이유들은, 일부 사람들이 가진 것과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의 차이에 반대할 이유들인 한에서, 더 넓은 의미에서 평등주의적이다.(Reasons are egalitarian in the broader sense) 이것은 이 차이의 결과에 기초한 이유들도 포함한다. 이 결과들에 반대하하는 그 이유들이 평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 때조차도 말이다. 예를 들어, 불평등이 덜 가진 이들의 건강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상당한 경험적 증거가 있다. 이것은 그 넓은 의미에서, 그렇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아닌, 평등주의적인, 불평등을 감소시킬 도구적 이유들을 제공한다. 왜냐하면 나쁜 건강에 대한 염려는 그 자체로는 평등주의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유들은 만일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왜 평등 그 자체가 추구되어야 하는가 또는 왜 불평등 그 자체가 반대할 만한가에 관한 어떤 이념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 더 좁은 의미에서 평등주의적이다.(Reasons are egalitarian in the narrower sense) 경제적 불평등에 반대하는 하나의 가능한 이유는, 경제적 불평등이 더 가진 이들에게 덜 가진 이들의 삶에 대한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통제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통제력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가 지배되는 이와 지배하는 이들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라면, 그렇다면 이 반대는 넓은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좁은 의미에서도 평등주의적이다. 만일, 이와는 달리, 통제되는 것에 대한 반대가 그저 그것이 포함하는 기회의 상실이라면, 그 경우 그 반론은 오직 넓은 의미에서만 평등주의적이다.

(...)

3

불평등을 줄이는 하나의 이유가 평등주의적인 것(심지어 넓게 평등주의적인 것)인 한에 있어서-일부 사람들이 가진 것과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의 차이에 반대하는 하나의 이유인 한에 있어서-, 설사 이것이 어느 누구의 처지도 더 낫게 만들지 못하고 적어도 일부 사람들(부자)의 처지는 더 나쁘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그 차이를 줄이는 것에 찬성하는 고려사항으로 보일지 모른다.(Insofar as a reason for reducing inequality is even broadly egalitarian-insofar as it is a reason for objecting to the difference between what some have and what others have- it might seem to count in favor of reducing that difference even if this made no one better off, and left at least some people (the rich) worse off.) 그런 움직임이 명백히 부조리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하향 평준화 반론이라고 불려왔다. 이 반론은 우선주의(prioritarianism)를 찬성하여 평등주의를 거부하는 이유로 제시되어 왔다. 우선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아니라 그저 처지가 못한 이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주석 3)

이 도전들을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평등과 불평등에 관하여 갖는 이유들에 대한 명료한 해명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또한 불평등을 증가시키는 법과 제도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더 큰 평등을 낳도록 이 제도들을 바꾸는 것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런 해명을 필요로 한다. 설사 빈자가 더 나아진다면 또는 만일 빈자와 부자의 격차가 줄어든다면 좋은 일일지라도, 재분배에 의해 이 목표들을 달성하는 것은 여전히 그를 수도 있다. 윌리 서튼은 어쨌거나 강도였으며, 로빈 후드에 대해서도, 비록 그의 동기가 더 나았지만, 강도라고 이야기될 수 있었다.

나는 이 도전들에 대응하는, 불평등에 반대하는 이유들이 있다고 믿는다.-실제로, 다수의 다기(多岐)한 이유들이 있다. 이 책의 과제는 이 이유들의 성격을 조사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제를 평등의 근거를 조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불평등에 대한 반대를 조사하는 것으로 기술하였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잠재적으로, 그 모두가 좁은 의미에서 평등주의적이지는 않은, 더 넓은 범위의 고려사항들을 포함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펴볼 바와 같이, 불평등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중 일부는 그 결과와 관련되며, 이 반대들 모두가 평등이라는 가치에 기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4

불평등에 반대하는 이유들이 다기함의 인식은 또한, 그렇게 하면 우리가 직면하는 불평등의 종류들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데 유용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1퍼센트와 나머지 99퍼센트 사이의 불평등은 하나의 문제다. 안락하게 잘 사는 이와 매우 가난한 이 사이의 불평등은 그와는 다른 문제다. 인종 불평등, 그리고 남성과 여성 사이의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도 또 다른 문제다. 이는 상이한 나라의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별도의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상이한 형태의 불평등은 내가 기술할 종류의 도덕적 반대의 상이한 조합의 적용을 받는다.

내가 전제할 것이지만 논증하지는 않을 하나의 중요한 평등 이념은, 기본적 도덕적 평등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기본적 도덕적 평등은, 모든 각 사람이, 그들의 인종, , 그리고 그들이 사는 곳에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이념이다. 기본적 도덕적 평등이라는 이념을 점점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된 것 그리고 그 이념이 포괄하는 사람들의 범위로 인정되는 것이 확대된 것은, 아마도 지난 몇 세기 동안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형태의 도덕적 진보였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 도덕적 평등은 오늘날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 실질적인 평등주의적 주장은 거부하는 사람들조차도 그것은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노직은 기본적 도덕적 평등을 받아들인다. 그가 개인은 권리를 가진다고 쓸 때, 그것은 모든 개인들을 의미하는 것이다.(주석 4) 그러나 그는 우리가 도덕적으로 말해, , 소득, 또는 여하한 특정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그들의 처지를 평등하게 만들 의무를 진다는 점은 부인한다. 이것은 내가 이 책에서 관심을 기울일 후자의 종류의 실질적 평등이다. 나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어떤 면에서 처지가 더 못한 것이 도덕적으로 반대할 만한 경우는 언제이며 왜 그렇게 반대할 만한 것인가? 이 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는 불평등에 반대하는 여러 종류의 이유들을 식별할 것이다. 그 중 많은 것들이 그 이후의 장에서 더 자세히 검토될 것이다.

지위: (...)

5 (...)

통제력: 지위에서 낙인 찍는 차이를 포함하는 카스트 체계를 비롯한 사회질서는 반대할 만한 불평등의 주된 역사적 사례다. 이 체계에서, 일부 집단의 구성원은 열등한 존재로 간주된다. (5) 그들은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역할과 직업에서 배제되며, 심지어 비하적이며 다른 집단의 구성원의 존엄 아래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직업으로 내쫓긴다. 그런 질서에 포함된 악은 비교를 통하는 성격(a comparative character)을 갖는다: 반대할 만한 것은, 비하적인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열등한 존재(as inferior to others)로 대우 받는 것이다. 이러한 대우에 대한 반대의 근본이념은 따라서 평등주의적인 이념이다.

내가 언급한 종류의 역사적 사안들에서, 카스트, 인종, 성별에 기반한 불평등은 법의 문제 또는 단단히 자리 잡은 사회적 관습과 태도의 문제였다. (...)

경제적 불평등은 내가 지금 논의하고 있는 이유에서도 반대할 만한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소득과 부의 극단적 불평등은 빈자가 굴욕적인 것으로 합당하게 여겨질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했듯이, 만일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지나치게 가난해서,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서는 공공장소로 외출하지 못하게 된다면, 이는 그 사회에 대한 심각한 반대의 근거가 된다.(주석 5) 여기서 악은, 다시금 비교를 통한 것이다. 단지 다 헤진 옷이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가졌다는 악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표준보다 훨씬 아래에 처한 방식으로만 살고 스스로를 드러냄으로써 자신을 열등한 존재로 표시할 수밖에 없다는 악이다. (...)

(...)

통제력(Control): 불평등은 그것이 일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통제력을 주기 때문에 반대할 만할 수 있다. 만일, 예를 들어 소수의 사람들이 한 사회의 거의 모든 부를 통제하한다면, 이는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일할 것이며 구매할 상품으로는 무엇이 있을 것이며, 일반적으로 그들의 삶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통제력을 줄 수 있다. 더 좁게는, 한 나라의 중요한 대중매체에 대한 소유권은 일부에게 그 사회의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와 자기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리고 그들의 사회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하여 받아들일 수 없는 정도의 통제력을 부여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두 형태의 통제력에 대한 반대를 6, 7, 그리고 9장에서 논의하겠다.(주석 6) (6)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 가족 소득과 부에 커다란 불평등이 있을 때, 경쟁 시장에서 개인의 성공 전망은 그들이 나고 자란 가족에 크게 영향 받는다. 이것은 경제적 기회 평등을 달성하는 것을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로 널리 인정되고 있다. 비록 기회 평등의 논거가 그리 많이 논의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나는 4장과 5장에서 그 논거를 살펴볼 것이며, 그것이 불평등에 대한 함의가 무엇인지도 살펴보겠다.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Fairness): 부와 소득의 커다란 불평등은 또한 정치 제도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 부유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정치적 토론의 과정에 훨씬 더 많이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정치적 공직도 더 잘 얻을 수 있으며, 공직자에게 영향도 더 많이 미칠 수 있다. 이것은 통제력의 문제의 특수한 사안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정치체게의 조작은 경제적 우위점을 통제력으로 변환하는 한 방법이다. 그러나 정치 체계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은 다른 면에서 도덕적으로 중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이 법과 정책의 정당성에 영향을 미치게 때문에 중대할 수 있다. 6장에서는 불평등에 대한 이 반대를 논의할 것이며, 그것이 불평등한 영향력의 문제 또는 영향력에 대한 불평등한 기회의 문제가 되는 정도를 논의할 것이다.

내가 열거한 네 종류의 반대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몇몇 반대가 한낱 시기의 표현이 아님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것들은 또한 이 반대들이 요청하는 것이 무의미한 하향평준화가 아님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낙인 찍는 지위 차이, 반대할 만한 형태의 통제력, 그리고 불공정한 사회 제도에, 설사 이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그들의 후생을 증가시키지 않는다 할지라도, 반대할 좋은 이유를 갖는다. (...)

7

평등한 배려(Equal Concern): 불평등에 대한 몇몇 다른 반대들은, 내가 방금 열거했던 것과 같이 그 효과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 불평등이 발생하는 방식에 근거한 것이다. 평등한 배려라는 이념에 기초한 반대들이 이런 종류의 반대들이다. 이 반대들은 어떤 기관[역자: institution은 제도 또는 기관을 가리키며, 맥락상 행위자성 보유가 두드러질 때는 기관으로 번역하였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일관되게 적용된다는 점을 살리기 위해 대부분의 경우 제도로 번역하였다]나 행위자가 특정 집단의 모든 각각의 구성원들에게 어떤 혜택을 줘야 할 책무가 있지만 일부에게만 혜택을 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보다 일부 사람들에게 더 풍부하게 혜택을 주는 경우에 적용된다.

(...)

소득의 공정한 분배(Fair Distribution of Income): 1965년 미국에서 350대 대기업의 임원의 평균 급여는 그 기업들의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의 20배였다. 1990년대 이 비율은 급격히 커졌고, 2000년에는 3761의 최고점을 찍었다. 2014년에 그 비율은 여전히 3031이었다. 이것은 “1960년대, 1980년대, 또는 1990년대의 어느 시점보다 더 높은것이었다.(주석 8) (...) (8) (...)

이 불평등은 명확히 반대할 만한 것 같다. 그것에 관하여 반대할 만한 점은 그것이 평등한 배려의 실패를 드러낸다는 점이 아니다. 문제의 혜택은 어떤 행위자가 제공할 책무를 지는데 불평등하게 제공하고 있는 혜택이 아니라 개인들이 이런 저런 방식으로 경제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혜택이다. 그 반대는 이 숫자들이, 이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경제 제도가 불공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함으로써 표현될 수 있겠다. 그런 제도가 불공정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은 기회 평등의 결여이며, 그것을 나는 이미 언급했고 4장과 5장에서 더 풍부하게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반대는 그와는 다른 것이다. 불공정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불평등한 보상이 일정한 경제적 역할이나 직위에 할당되는 방식이지, 개인들이 그런 직위들을 두고 경쟁하는 기회의 결여가 아니다. 이것은 이런 종류의 공정성이 무엇을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나는 이 질문을 9장에서 논의하겠다.

이때까지의 논의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다양한 형태의 불평등에 반대하고 그 불평등을 제거하거나 줄이려고 할 여섯 가지 종류의 이유들을 식별하였다.

 

(1) 불평등은 그것이 지위에서 굴욕적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반대할 만할 수 있다.

(2) 불평등은 그것이 부유한 이들에게 덜 가진 이들에 대한 받아들일 수 없는 형태의 권력을 주기 때문에 반대할 만할 수 있다.

(3) 불평등은 그것이 경제적 기회의 평등을 훼손하기 때문에 반대할 만할 수 있다.

(4) 불평등은 그것이 정치 제도의 공정성을 훼손하기 때문에 반대할 만할 수 있다.

(5) 불평등은 그것이, 정부가 어떤 혜택을 제공할 책무가 있는 이들에 대한 평등 배려 요구를 위반한 결과로 생겼기 때문에 반대할 만할 수 있다.

(6) 소득과 부의 불평등은 그것이 불공정한 경제 제도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반대할 만할 수 있다.

 

9 (비자발적인) 불평등이 발생할 때마다 나쁜 것으로 여기는 운 평등주의 견해(주석 10)와는 달리, 내가 열거한 불평등에 대한 반대들은 모두, 불평등한 당사자들 사이의 일정한 형태의 관계나 상호작용을 전제한다. 지위에서 반대할 만한 불평등은 굴욕이나 감소된 자부심의 느낌을 합당하게 만드는 어떤 관계를 전제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반대들은 서로 아무런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통제력에 기반한 반대들은, 불평등이 어떤 형태의 통제력을 포함하거나 그런 통제력에 이르는 경우에만 적용된다. 평등한 배려의 실패에 기초한 반대는 문제되는 종류의 혜택을 제공할 책무가 있는 어떤 행위자 또는 기관을 전제한다. 그리고 경제적 기회에 대한 간섭, 정치적 평등에 대한 간섭에 기초한 반대, 또는 불평등한 소득 분배에 기초한 반대는 모두, 공정성의 요구(requirements of fairness)가 적용되는 어떤 제도에 참여하거나 그 제도에 구속되는 당사자들을 전제한다. 일단 불평등이 그런 모든 관계적이고 제도적인 요인들로부터 떼어내져 별개로 검토되면, 그것이 반대할 만한 것인지가 명백하지 않다.(주석 11)

불평등에 반대하는 이 이유들 중 많은 것들이 일정한 책무를 지는 제도 또는 일정한 정의의 요구가 적용되는 제도가 있는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사실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의 입장을 토머스 네이글(Thomas Angel)정치적 정의관(the political conception of justice)”라고 칭한 것과 동일시하도록 할지도 모르겠다. 이 정의관은 정의가 국민국가의 경계 내에서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주석 12) 그러나 나의 주장은 이 정의관과는 중요한 면들에서 다르다. 내가 기술한 불평등에 반대하는 이유들 모두가, 공유된 제도를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제도가 관련되는 경우에 이 제도는 국가와 외연이 같거나 국가에 의해 집행되는 것일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8장에서 내가 논의하는 종류의 경제 제도는 국경으로 한계가 그어지지 않는다.

내가 열거하지 않은, 평등을 찬성하거나 불평등에 반대하는 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도 있다. (10) 나는 내가 열거한 반대들에만 초점을 맞추겠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나에게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특히 그것들의 저변에 깔린 가치들에 관한 흥미로운 규범적 질문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평등에 대한 모든 반대가 그런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했듯이, 불평등은 그것이 나쁜 건강(ill-health)을 야기하기 때문에 반대할 만할 수도 있다.(주석 13) 또한 불평등이 사회 안정에 이르기 때문에 또는 평등이 더 큰 연대감과 공동선을 위해 열심히 일하려는 마음을 촉진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에 기여하기 때문에 더 큰 평등이 바람직하다고 논해질 수도 있다. 만일 그런 주장들에 깔린 경험적 가정들이 타당하다면, 이것들은 불평등을 나쁜 것으로 여길 좋은 이유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 이유들을 논의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호소하는 가치들에는 아무런 수수께끼 같은 점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쁜 건강이 나쁜지에 관하여는 아무런 의문도 없다. 이 반대들이 적용되는지의 질문은 순수하게 경험적이다.

물론 현재 사회들에 있는 큰 불평등은, 그것이 개인의 자유의 정당성 있는 행사에서 발생하며 이 불평등을 줄이려는 조치들은 이 자유에 대한 반대할 만한 간섭이 될 것이므로, 전혀 반대할 만하지 않다고 주장될 수도 있다. 7장에서 나는 이 반론을 논의하고는 그것이 기초할 수도 있는 자유의 이념(the ideas of liberty)을 검토하겠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또 하나의 가능한 정당화는, 더 많은 것을 가진 개인들이 그들의 더 큰 보상에 대한 응분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8장에서 응분의 이념을 검토하겠다. 그리고 그 이념이 경제적 불평등의 정당화로서 아니면 아마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반대로서 호소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9장에서 나는 내가 언급한 반대들 나머지가 기초하고 있다고 언급한 불공정이라는 이념을 검토하겠다. 그리고 이 반대 및 내가 논의한 다른 반대들이, 미국 및 다른 선진국에서 발생한 최근의 불평등 증가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겠다. 10장에서는 이 책의 주요 논제를 요약하겠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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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랭크퍼트
    2019.05.30 14:1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 글을 보니 스캔론의 책을 직접 읽고 싶어지네요. 최근 서점에서 『평등은 없다』(On inequality)라는 책이 있길래 읽어보았는데, 저자인 해리 프랭크퍼트(Harry Frankfurt)는 불평등이 다른 문제—예컨대 소외와 빈곤—를 초래하는 한에서만 나쁜 것일 뿐,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는 주장을 꽤 설득력 있게 논하더라구요. 이한 님께서도 이 책을 읽어보셨는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2019.06.02 20:0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해리 프랭크퍼트의 그 책은 제한된 논지를 설득력 있게 확립하고 있는 책으로 생각됩니다. 프랭크퍼트와 스캔론은 우리가 준수해야 하는 근본적인 규범(fundmental norm)의 의미에서의 평등이 아니라, 1인칭 관점에서 추가로 향유할 수 있는 선(good)이나 가치(value)로서, 평등은 본유적 내지는 내재적(intrinsic)인 선이나 가치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견해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프랭크퍼트는 근본적인 규범으로서의 평등 배려를 '존중'과 '불편부당성'이라는 언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개념 사용을 달리한 것일뿐 취지는 같습니다.

      또한 프랭크퍼트의 책은, 일반적으로 널리 견지되는 신념, 즉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때문에 평등이 항상 도구적 가치를 갖는다는 신념을 효과적으로 집중 논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합니다.

      다만 프랭크퍼트의 책은 스캔론의 책과 달리, 아주 소극적인 제한된 논지만을 정립하려고 하는 목적으로 쓰인 소고입니다. 스캔론이 다루는 주제의 아주 일부만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스캔론은 평등이라는 복합 이상의 지도를 포괄적으로 구조화하여 그려내고 있습니다. 프랭크퍼트의 책은 이 지도 중의 일부를 다른 시각에서 조명해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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