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권의 재판규범성

헌법에서 재판규범이란 국가가 그 규범을 어겼기 때문에 헌법 위반이라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규범이다. 이는 행위를 지도할 뿐 통제할 수는 없는 행위규범과 대조된다.

 

II.
사회권이란 어떤 특성을 가진 권리이길래 재판규범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인가?
보통 헌법 조문상으로 헌법 10조의 인간 존엄성 규정과 함께 본 31조에서 36조까지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권, 근로권, 환경권, 주거권 등을 사회권으로 본다.

이런 사회권은 (1) 인간존엄에 적합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2)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을 제공할 것을 (3) 국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이런 개념 요소 모두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은 분명 사회권의 특성이다. 국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하는 자유권은 이런 것들을 주된 요소로 하지는 않는다.

 

III. 사회권의 특성과 재판규범성에 대한 의문

이런 특성 때문에 사회권의 재판규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이 주제는 종래에는 프로그램규정설, 추상적 권리설, 구체적 권리설과 같은 사회권의 법적 성격에 관한 학설로 다루어졌으나 오늘날 논의는 사회권의 특성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째, 사회권의 내용이 애매하고 불확실하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는 정도 차이일 뿐,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어휘를 사용하는 법규정에 모두 내재한 문제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도 하르츠(Hartz) 결정에서 사회국가원리의 불명확성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최저생존보장에 대한 권리를 해석으로 도출할 수 있고 반드시 이행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둘째로, 재정민주주의에 위반된다는 비판이다. 사회권 실현에 사법부가 관여하면 국가예산을 의회에서 입안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정권과 정치적 자유 보장을 위한 선거의 실시, 공정선거 감시, 개표와 검표에도 꼭 지출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이 있다. 기본권이 확정된 범위에서 다수의 결정에 우선한다는 것은 기본권의 당연한 효과이므로 이 점을 들어 재판규범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셋째,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권력분립 원칙 위반이 된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잘 정립된 심사기준을 사용하면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의무 위반과 준수할 절차만 판정하고, 그 의무를 이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입법부에게 맡길 수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노동3권을 누리는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범위를 조례로 제정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하면서 그 입법은 지방자치단체에 맡긴 바 있다.

넷째, 사법부에는 사회권 집행을 위한 권한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사법부가 결정내린 것의 이행을 위해 행정부와 입법부의 협력이 필요한 경우라고 해서, 그 결정 자체가 헌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추론은 타당하지 않다. 또 제도 활용과 개선의 여지도 있습니다. 지금도 공권력 불행사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있을 경우 헌법재판소법 40조 1항에 따라 가처분 결정을 할 수 있다. 독일연방헌법재판소법의 집행명령제도는 위헌선언 후 법적 공백 상태에서 적용할 경과규정을 헌법재판소가 발령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아르헨티나 대법원이 비스콘테viceconte 사건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백신생산이 진척되는 정도를 주기적으로 보고하도록 명령한 것처럼, 사법부가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후속 이행을 보고하게 하는 명령을 발하는 제도를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권의 특성은 재판규범성을 부인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다만 여기서 제기된 의문은 남용에 대한 경고로는 유효할 것이다. 어떤 정책을 사회권의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헌법재판소를 통해 쉽게 관철시킬 수 있다면, 국민들이 의회를 통해 정책과 우선순위를 토론할 민주적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원칙적으로 사회권의 재판규범성을 인정하지만 이 남용 위험 때문에 그 구체적 내용과 범위 인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생계보호기준이 최저생계비에 못미치는 것이 문제되는 사안에서, 국가가 실현해야 할 ‘객관적 내용의 최소한도의 보장’에도 이르지 못하였다거나 ‘헌법상 용인될 수 있는 재량의 범위를 명백히 일탈한 경우’가 아니라면서 기각 결정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학계와 여러 나라 사법부에서 발전된 법리를 활용하여, 남용을 경계하면서도 사회권의 취지를 온전히 실현하는 심사기준 수립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기준의 핵심 원칙으로, 최소핵심의무, 과소보호금지원칙, 절차적 보장원칙을 들 수 있겠다.

최소핵심의무는 통상적인 물질적 조건의 결여 때문에 생명, 신체 훼손이나 퇴락을 일으키는 중대한 위협이 있다면 이 위협을 즉시 제거할 의무다. 당장 잘 곳이 없고 구할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임시 거주지를 제공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점진적으로 실현되는 의무는 비례원칙으로 심사할 수 있다. 여기서는 사회권 실현에 적합하고 효과적인 수단을 취하였는가, 다른 사람의 자의적인 선의에 종속적으로 기대야 하는가를 살핀다. 이 때 기존의 사회권 실현 조치를 자의적으로 퇴보시켰는가, 차별적으로 수혜자를 배제했는가도 함께 검토한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이미 장해사유가 발생한 장해보상연금 수급권자에게 불리한 새 규정을 적용하는 것이 신뢰를 위반하여 위헌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절차보장원칙은, 사회권 관련 결정을 할 때 관련된 당사자들의 의견과 법익을 빠뜨리지 않고 공정하게 고려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들을 취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요하네스버그 Occupiers of 51 Olivia Road v. City of Hohannesburg 사건에서 시가 퇴거절차를 시행하기 전에 거주민들과 의미 있는 대화‧교섭을 했어야 한다고 판시하였고, 그 결과를 서면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결론적으로 남용을 경계하면서도 재판규범으로 사회권을 실현할 수 있는 심사기준 정립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겠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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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튜브
    2020.03.10 23: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좀 뜬금없는 질문이긴한데 제목에 써있는 조립물이 무슨 뜻인가요?
    • 이한
      2020.03.13 11:49
      댓글 주소 수정/삭제
      좀 더 복합적이고 큰 주제의 논증의 구성부분이 되는 빌딩블록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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