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포르스트 - 정당화에 대한 권리. 제4장 정의의 정당화(서요련 번역) (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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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글:

라이너 포르스트의 『정당화에 대한 권리』 제4장 "정의의 정당화: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와 하버마스의 논증대화이론 논쟁"을 번역한 글입니다.

 

하버마스의 제자이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젊은 후계자인 포르스트는 처음부터 하버마스와 롤스라는 두 스승을 모시고 철학적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포르스트는 하버마스-롤스 논쟁을 분석하고 자신의 정당화에 대한 권리론에 비추어 논쟁의 성과를 평가하는 작업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이 논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하버마스와 롤스의 공통점을 찾는 것입니다. 두 대상의 유의미한 차이를 논하려면, 두 대상이 공유하는 바를 밝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1) 하버마스의 이론과 롤스의 이론의 공유 지대를 탐색한다. 하나는 둘 다 칸트주의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적(혹은 자립적) 정의론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어서 하버마스와 롤스의 세 가지 차이점을 명료화합니다.

(2) 하버마스의 이론과 롤스의 이론은 형이상학적인 포괄적 신념체계를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탈형이상학적(postmetaphysical) 이론이고, 후자는 비형이상학적(nonmetaphysical) 이론이다.

(3) 하버마스의 이론과 롤스의 이론은 정의관의 정당화에서 '도덕'의 역할을 설정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도덕과 윤리를 구별하여 정의관의 정당화에 도덕적 정당성이 필요하다고 보는 반면, 후자는 이러한 하버마스의 시도를 포괄적인 도덕적 신념체계와 얽혀 있는 것으로 보고 경계한다.

(4) 하버마스의 이론과 롤스의 이론은 인권과 국민주권의 동근원성(co-originality)을 이론화하는 방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논증대화원리와 법형식의 상호 침투를 통해 동근원성 테제를 이론화하면서 롤스가 이를 충분히 이론화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반면, 후자는 원초적 입장과 4단계 과정을 통해 동근원성 테제를 충분히 구현하고 있다고 방어한다.

 

마지막으로 두 논쟁을 종합하면서 자율적 정의론의 요점을 도출합니다.

(5) 하버마스-롤스 논쟁에서 도출할 수 있는 자율적 정의론의 핵심 요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자율적 이론은 미리 주어진 윤리적 가치, 사회 전통이나 인류학적 개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정당화된 원칙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의 재귀적 반성에 의존한다. 둘째, 정의관은 오직 자율적 인간들이 구체적인 정당화 맥락에서 상호적·일반적으로 정당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원칙과 규범만을 채택한다.

 

이 논문은 하버마스와 롤스라는 두 거장에 모두 정통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폭과 깊이를 모두 갖춘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포르스트의 하버마스-롤스 논쟁 재구성 작업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위 다섯 가지 논점 모두에서 포르스트는 롤스와 하버마스의 입장을 최선의 모습으로 재구성하면서, 그들이 '말한 바'뿐만 아니라 ‘말했어야 하는 바'를 짚어줍니다. 포르스트는 여기서 더 나아가 하버마스의 이론, 롤스의 이론과 동일한 선상에서 검토할 만한 제3의 이론을 제시합니다. 바로 정당화에 대한 권리론입니다.

 

물론 제3의 이론이 반드시 포르스트의 정당화에 대한 권리론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하버마스의 이론이 보여주는 강점과 롤스의 이론이 보여주는 강점을 적절한 추상 수준에서 결합하면 족합니다. 이를테면 하버마스의 이론은 단순히 가설적 논증대화를 넘어 실제적 논증대화를 강조하며, 그러한 논증대화가 이루어지는 제도적 배경을 더 생생하게 드러내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심의민주주의의 제도 디자인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하버마스의 이론이 꽤나 매력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버마스는 규범을 정당화하는 논증대화가 가정할 수밖에 없는 형식화용론적 전제조건을 밝혀주는데, 이는 롤스의 논증을 강화해주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롤스의 이론은 하버마스의 '절차주의' 이론보다 더 풍부한 실질적 개념을 제공해줍니다. 롤스의 근본 관념들(fundamental ideas)은 민주적 법치국가의 규범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해야 하는 핵심 논거로 작용할 것입니다. 하버마스는 논증대화원리와 법형식의 상호 침투로 다섯 가지 범주로 이루어진 권리의 체계를 도출하는데, 이러한 도출이 가능하려면 가령 도덕적 인간관에 포함된 선관 형성의 능력과 정의감의 능력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왜 하필이면 시민들이 첫 번째 권리 범주로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광범위한 체계에 대한 권리를 채택하는지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위와 같은 논증을 전개할 때 포르스트의 논문은 길잡이가 됩니다. 포르스트가 정리한 하버마스-롤스 논쟁의 쟁점은 다른 논자들의 주장을 분류하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가령 히스의 "정의: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선험론적인"은 (2)의 논의에 딱 들어맞습니다. 포르스트 역시 롤스가 하버마스에게 제기한 '형이상학적 포괄적 신념체계'라는 혐의를 해명합니다.

 

- 게다가 하버마스의 이론은 기껏해야 “포괄적일” 수는 있어도 형이상학은 아니므로, 단지 정치적인 것을 넘어서는 영역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포괄적인 형이상학적 신념체계”로 분류할 수 없다. 더불어 하버마스의 이론은 롤스의 의미에서 포괄적이지도 않은데, 포괄적 신념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좋은 삶의 문제에 답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버마스의 이론처럼 재구성적 방법을 취하는 절차적 이론은 방법론적으로 “광범위한 헤겔적 의미”의 형이상학이라 할 수 없다. … 그렇다면 하버마스의 논증대화이론을 “형이상학”으로 이해하는 규준은 오직 형이상학적 신념체계 사이에서 경쟁하는 문제에 관하여 “정치적” 정의관이라면 회피할 수 있고 또 회피해야만 하는 입장을 취한다는 사실에서만 찾을 수 있다.(91-92)

 

이렇게 해서 포르스트는 하버마스-롤스 논쟁을 최선으로 이해하는 한 가지 경로를 제공해줍니다. 하버마스와 롤스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한다면, 포르스트의 논문은 대단히 훌륭한 귀감이 될 것입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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