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질문: 교수님의 기본권 제한심사의 법익형량과 그 외 논문을 읽어가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국가완전주의 쟁점과 법해석'이라는 논문을 보다가 스캔론이 공리주의를 연성 목적론으로 분류한 것을 알았습니다. '공리주의와 같은 연성목적론에서는 사람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욕구 충족이나 선호 만족과 같은 긍정적인 주관적 마음 상태는 그것이 어떻게 초래되었건 모두 내재적 가치를 갖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나 롤즈의 이론을 보면 공리주의를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하여, '각 개인은 그 자체로 내재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이 문장의 후문은 저의 해석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리주의에서 유정적 존재의 마음상태는 내재적 가치를 가지되, 각 개체는 내재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an interview with professor peter singer'라는 글(구글에 있는 글입니다)을 보던 중 피터 싱어가 '제 생각에 유정적 존재는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for me sentient beings have intrinsic value)'라고 하는 글을 봤습니다.

그래서 제 이해가 틀린 건지, 아니면 피터 싱어 교수의 입장이 정합적이지 않은건지 생각해보다가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 

 

몇 가지 짚을 점이 우선 있습니다.

(1) 개별성을 존중하는 것은, 존재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개별성 존중은 규범론적 문제이고, 내재적 가치는 가치론적 문제입니다. 어떤 현상의 내재적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더라도, 그 현상을 행위로서 일으키고자 하는 이의 개별성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생활과 종교적 숭고의 체험이라는 현상의 내재적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의 자유를 보유하는 존재로서 각 기본권 주체의 지위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2) 따라서 목적론은 존재자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의무론은 존재자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범주를 잘못 설정하여 이해하신 것입니다. 
(3) 이제, 가치론적 문제로 보았을 때, 공리주의에서 유정적 존재 자체가 내재적 가치를 가지는지 아니면 유정적 존재의 마음상태가 내재적 가치를 가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공리주의가 어떤 가치론을 채택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가치론을 기준으로 하여 공리주의를 분류해보면 공리주의는 쾌락주의, 선호공리주의, 그리고 이상 공리주의로 나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무어의 이상 공리주의(우정, 쾌락, 진리, 미덕 등등의 선을 최대화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보편적 당위라는 공리주의)는 실제로는 공리주의라고 보기 어려우며 여러가지 선들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목적론 중 하나라서, 통상 공리주의라고 칭하지는 않습니다. 제 논문에서도 이상 공리주의를 공리주의 개념에 포함하여 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호 공리주의와 쾌락주의에 따르면, 선호 충족 상태과 쾌락적 의식상태가 가치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 상태의 담지자(carrier)로서 개별 유정적 존재는 그 자체로 내재적 가치가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려면 선호 공리주의와 쾌락주의에서 벗어나서 이상 공리주의 쪽으로 가까이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두 가지의 환원불가능한 선이(즉 긍정적 마음상태라는 선 한 가지와 그러한 마음상태를 겪을 수 있는 존재 자체) 가치의 목록에 올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현대의 공리주의를 추동한 주요한 동인 중 하나를 스스로 버리는 셈입니다. 모든 가치를 효용이라는 단일 궁극적 가치에 의하여 환원하여, 모든 행위 선택에 있어서 합리성으로 도덕의 모든 논의를 체계화/과학화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 공리주의의 운동을 이끈 주요 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긍정적 마음상태는 그 마음 상태의 심리적 강렬함에 의거하여 통약가능하게 된다고 하여도(이 점은 물론 논증된 바는 없습니다), 유정적 존재 자체가 그 존재함 자체만으로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면 이러한 체계화/과학화는 심각한 난점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두 선은 공통의 척도라는 것이 없어서 도대체 어떻게 순합을 계산할지 지성적으로 이해불가능하게 됩니다. 
따라서 피터 싱어가 G. E. Moore의 노선이 아니라 선호공리주의와 쾌락주의의 노선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 유정적 존재는 수단적 가치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지 내재적 가치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이 논거를 더 보강해보겠습니다. 고전적 쾌락주의에서는 새로이 태어날 존재로 인해 순 쾌락의 합(그 존재가 경험하게 될 순 쾌락과 그 존재로 인해 다른 사람이 누리게 될 순 쾌락)이 0보다 큰 한, 아이를 출산해야 합니다. 물론해석에 의하여, 고전적 쾌락주의에서는 새로이 태어날 존재로 인해 순 쾌락의 합이 0보다 작은 한, 아이를 출산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만일 유정적 존재 자체가 내재적 가치를 가진다면, 자신이 아이를 출산하면 아이로 인해 세상에는 순 고통이 추가될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이 당위인 그런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대부분의 공리주의자의 직관에 반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공리주의자는, 예를 들어 심각한 유전적 결함이 있어 아이를 수태하고 출산하면 그 아이는 2년 동안 극심한 고통을 주로 겪다가 사망할 것이라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할 의무가 발생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런 고통을 겪는 유정적 존재의 새로운 탄생' 그 자체가 갖는 내재적 가치를 모종의 방식으로 합산하여, 그 내재적 가치가 아이의 고통을 능가하는가를 살피는 추가적인 사고 과정은 없습니다. 

세 번째 논거는, 공리주의의 주된 행위 선택 추론 방식인 '순 공리 합산' 자체에 개별적 유정적 존재 자체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원칙이 구축되어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공리주의에 의하면 10명의 순효용 합산이 100인 경우와 `11명의 순효용 합산이 100인 경우에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11명의 순효용 합산이 101이 된다면 추가로 1명을 낳아야 하는 것이 당위가 됩니다. 설사 그 추가로 탄생한 1명이, 10의 순효용을 누리는 남들과는 다르게 1의 순효용만 누린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따라서 유정적 존재 자체가 내재적 가치를 갖는다는 언명은, 공리주의의 집계 추론의 어디에도 적합한 자리를 갖지 않습니다. 

네 번째 논거는, 공리주의에서는 순 효용이 실제로 발생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순 효용/순 비효용의 어느 쪽으로든의 발생 잠재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정적 존재 자체는 순 효용이 아니라, 순 효용/ 순 비효용 어느 쪽으로든 마음상태가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만일 사태가 나빠져서, 결국 그 유정적 존재가 순 비효용을 겪게 될 뿐이라면, 그 유정적 존재는 없는 것이 낫습니다. 

(4) 결론적으로 피터 싱어의 해당 언명은 인터뷰를 하다가 그냥 무심결에 실수한 것이지 진지하게 생각할 내용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피터 싱어 본인에게 해당 언명의 이론적 함축을 정말로 받아들이겠는가라고 물어도 같은 답이 나올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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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도간
    2021.04.23 09:0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천재의 글입니다. 교수님의 글을 접하고 아무런 중요성도 느껴지지 않았던 윤리학이라는 학문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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