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이 한

<책소개>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디니, 21세기 북스 )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에 나오는 여러 원칙들을 응용하여 통상적인 커뮤니케이션 흐름의 구조 속에서 개개인이 많은 사안에 대해서 어떻게 자신의 입장을 정하는지를 서술하는 형식으로 책을 소개했습니다.

한 때, 정보기술의 발전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 엘빈 토플러와 같은 삼류 학자들을 비롯한 사이비 학자들은, 정보기술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이비 주장을 하였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논리의 연결고리를 별로 검증하지도 않은 채 막연한 이미지만을 주된 줄기로 삼아서, 비서들 시켜서 잡다한 뉴스들을 잔뜩 다발로 모아가지고 그럴듯하게 책으로 낸다. 시류에 편승해서 말이다. 그러면 매우 잘 팔린다.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 이동과 같은 책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쨌든 이러한 책 덕택에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던 시절(그 때는 천리안 나우누리 PC 통신도 나오지 않았던 시대다), 사람들은 정보통신기술이 발달되면 정보가 많이 제공이 되고, 그 정보에 쉽게 사람들이, 직접전자투표와 같은 방식으로 정책결정에 접근할 수 있게 되어 민주주의가 만개할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터넷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에도 1990년대 초반과 대의민주주의의 커뮤니케이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즉, 대의민주주의의 고질적인 장애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매스미디어의 권력이 포털 싸이트로 상당부분 넘어갔다는 점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것은 정보만 많아지면 사람들이 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정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아지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흐름을 개선하는데 본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정보를 해석하고 자기 생각을 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일은 모두 비용을 발생시킨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비용은, 그 시간에 딴 걸 할 수 있다는 비용일 것이다. 두 번째 비용은 머리가 아프다는 비용이다. 사실 이 두번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딴 것이 굳이 할 것이 없는 빈둥빈둥 백수도 머리 아프게 사회현안을 다루기 보다는 TV의 컬러바를 보면서 멍~하니 시간 보내는 것을 선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두가지 비용 때문에 생기는 행동패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범주화’와 ‘단순화’이다. 복잡한 문제들을 범주화하고 단순화하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 근거는 어떻게 찾으며 이 범주화와 단순화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여기에는 6가지의 법칙이 작동한다.

첫째는 상호성이다.

미국에는 HRS라는 이상한 종교단체가 있는데, 그 내용은 알 수 없고, 이 HRS는 전혀 대중적으로 인기도 없으면서도 매우 부자 종교 단체다. 우째서 그런가? 기부금을 참 많이 모았기 때문이다. 인기도 없는데 어떻게 많이 모으나? 그 방식은 너무나 간단해서 놀라울 정도다.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이 HRS회원들이 꽃을 선물한다. 상대방이 안받으려고 해도 “이것은 저희의 마음의 표시입니다”하면서 준다. 그리고 꽃을 받고 난 뒤 몇발짝 더 걸어가면 기부를 좀만 해달라고 한다. 그러면 1달러라도 안줄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꽃을 주는 행위가 기부신청의 당연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상당한 수가 부담을 느껴서 기부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류가 문화적으로 전승한 어떤 심류적 모듈 가운데에 ‘상호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협동할 일이 많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처럼 농촌국가에서는 품앗이가 있었다. 그 외에도 인류학에서는 상호적 호혜가 눈에 많이 띈다. 이때 호의를 받고도 그것을 갚지 않는 놈은 왕따당한다. 우리도 밥 얻어먹기만 하고 안사주는 놈 왕따 시키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모듈이 강력하게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해주는 사람에게는 갚으려는 성향을 갖는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공짜 샘플 사례가 있다. 방문 판매원이 와서 공짜 샘플을 사용해 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공짜 샘플을 받으면 그 다음에는 바로 새 제품을 꺼내들어서 한번 사용해 보는게 어떠냐고 한다. 그러면 공짜 샘플을 주지 않았을 때보다 엄청난 수가 부담을 느끼면서, 별로 필요하지도 않은 새제품을 사게 된다. 이로써 공짜 샘플을 삼으로써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갚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받은 것이 매우 적은 량이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받았다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심리 모듈은 ‘갚아야 한다’는 쪽으로 작동한다.

그 다음 사례로는 교섭의 기술이 있다. 보통 노조와 회사는 서로 강력한 것을 먼저 제시했다가 그다음 한 걸음 물러서서 완화된 것을 제시한다. 우리가 중고 컴퓨터 같은 것을 개인들이 사고 팔 때도 그렇다. 그러면 완화된 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심리적 압력이 강해진다. 이것은 상대방이 양보했으니 나도 양보해야 한다는 상호성에 기반한 심리적 모듈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봉사를 요청할 때에도, 매우 어려운 일-환자 똥받는 거-을 먼저 부탁했다가, 안되겠는걸요 그러면 좀 더 쉬운거-고아원 애 봐주는 거-를 일주일 뒤쯤으로 미뤄서 부탁하면 성공률이 높다. 이것도 결국 상호성에 기반한 것이다.

두번째는 일관성이다.

사람들은 남이 보는 이미지와 자기가 보는 이미지를 계속해서 일관되게 유지하여야 한다는 심리적 압력을 받는다. 이것은 사회심리학 실험으로 여러번 증명된 것이다. 거기에서는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이 반대하거나 지지하지 않던 주장을 글로 써서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설득력 있게 발표하라는 과제를 수행하고 난 뒤에는, 그 주장을 지지하게 전환하는 비율이 앞도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 사회심리학 설계에서는 실험군을 세가지로 나누었는데, 첫째는 어떤 생각만 하게 만든 것이고, 둘쨰는 그 생각을 글로 쓰게 한 것이고, 셋째는 그 생각을 글로 쓰고 남들 앞에서 발표하게 한 것이다. 이 때 세번째로 갈수록 자기가 과제를 할당받은 것과 이후 자신의 생각을 일치시키려는 압력이 강하게 나타났다.
중공군이 한국전쟁 때에 사용한 미군 세뇌기법은 이러한 ‘일관성 압력’에 기초한 것이다. 중공군이 어떻게 했냐면, 미군들의 포로 수용소에서, 작문을 시켰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장단점을 적어서, 잘 적은 글은 상을 줬다. 상은 대부분 담배 세 가치 이 정도였고, 또 상을 받은 글은 방송으로 큰 소리로 읽혔다. 마크 일병이 쓴 글입니다. 이렇게 말이다. 이 효과는 엄청나서 압도적인 수의 미군들이 공산주의가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미군들은 그곳에서 작문을 하지 않으면 찍히니까 쓰긴 써야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상을 주는 잘 쓴 글은, 일방적으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글보다는 적당히 그 단점도 쓰고 자본주의 장점도 쓴 외양상 합리적이면서 좀 더 공산주의쪽에 경도된 그런 글이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면 완전히 남의 생각을 쓴다는 의식을 갖지 않고 쓴 글을 자기가 쓴 글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이 담배 세 가치 정도로 적은 이유도, 만약 상이 엄청나게 큰 것이라면, 상 때문에 썼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쓴 글이라 생각 안하게 되는데, 상이 매우 미세한 것이라면, 그 상 때문에 도저히 그렇게 자기 생각과 배반되는 글을 썼다는 생각은 못하게 되어, 써서 발표한 글이 자기 의견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으로 발표하는 효과도 아주 훌륭한데, 그렇게 발표해버리면 동료 포로들 사이에서 일종의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고, 그 이미지를 좀 더 좋은 것으로 만들고 일관되게 지키려는 압력이 상승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베트남 파병 당시에 박정희는 국내에서 아무런 반대가 없자 미국과 교섭하는데 불리할까봐 일부러 김형욱에게 ‘임자가 파병반대 좀 하지’라고 말해서 김형욱이 파병반대하다가 진짜 파병반대론자가 되어 박정희가 진정시키는데 애를 먹었다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일화도 있다.

세번째는 사회적 증거의 원칙이다.

우리는 종종 대도시에서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에서 동상으로 얼어죽는 사람들의 뉴스를 듣는다. 심지어 아파트 촌에서 강도에게 11번을 찔리면서 도망다니면서 도움을 요청하다가 죽은 아가씨도 뉴욕에서 있었다. 교통사고 나서 사람이 중상을 입어도 그것이 도로변에 박아서 차가 막히지 않으면 그 옆을 차들이 실실 보고 달린다. 저널리스트들은 이것을 ‘대도시의 인간성 타락’이라면서 를 질타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확실성’과 ‘책임의 분산’ 문에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눈치를 보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우리의 심리적 모듈로 확고히 자리잡은 것이다. 당신은 어떤 대학의 식당에 갔는데 배식을 받고 그것을 앉아서 먹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숟가락을 어디다 잡아 넣는 행위가 조금 시스템이 다르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옆에 사람 보고 할 것이다. 한마디로 쪽팔리기 싫은 것이고 엉뚱하게 행동해서 바보가 되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대로에서 어떤 노숙자가 쓰러져 있다면, 그것이 한겨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다. 책임은 그 거리를 밟고 지나간 수만명의 사람들이 분산하는 것이다. 아파트 촌에서 칼에 찔리는 20대 여자를 본 사람들은 ‘누군가 신고했겠지.’ 또는 ‘영화찍나?’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교통사고 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럴 경우에 도움을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이 장난이 아니고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알리고, 사람을 지정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얼어죽을 것 같으면, 마지막 의식이 남아 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거기 파란 점퍼 입은 아저씨, 도와주세요, 몸이 안움직여요, 죽을 것 같아요. 119 불러 주세요” 이렇게 되면 책임도 지정되고 불확실성도 제거된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따라서 하는 사회적 증거의 행동패턴은 큰 비극을 낳기도 하는데, 일본이 패망했을 때 마을주민들이 전부 침착하게 자살한 것도 그 한 예이다. 마을 주민들이 서로를 진짜 칼로 찔러 죽일려는 강인한 제국주의적 애국심을 지닌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이 일어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 이렇게 찬찬히 살펴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관찰할 때 인간은 매우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자신이 관찰하는 중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한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포즈를 취하는데,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서로 ‘침착하게 자살 지시를 따르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만약에 이 때 한 사람만이라도 ‘죽기 싫다!’했으면 활발한 토론이 일어나고 결국 흐지부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충 그 사회분위기가 그렇게 먼저 말할 것이 못되니까 그냥 아버지 찌르고 여동생한테 찔려서 죽었던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예말고도, 사람들은 자신이 진심으로 소중하게 이미 생각하고 있던 것이 아닌 의제에 대해서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고자 한다. 일단 그것이 비용을 적게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소수의 의견을 따르게 되면 식당에서 밥먹으면서도 직장동료들과 싸워야 될지도 모르고, 가만히 입다물고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기분이 나빠서 밥이 체할 확률이 높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전사회적으로 쌍욕을 먹고, 감옥에 가기도 한다. 이렇게 크고 작은 불이익이 소수자의 의견에는 주어지게 된다. 그래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는 일단 다수의 의견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다수의 의견을 따르고 여러가지 발언이나 대화를 이미 해왔으면, 일관성의 원칙에 의하여 그것이 지속된다. 소수자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손대지 않으며 우물에 독뿌리기 전략을 통해 철저히 무시한다. 다수자의 의견이 일종의 사고틀을 형성해서 새로운 문제의식이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네번째는 관련없는 호감의 원칙이다.

이것은 워낙 유명하니까 다들 알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 모의재판을 해서, 외모가 훌륭한 여성과 미운 여성이 각각 동일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형량을 때려봤는데, 외모가 출중한 여성이 훨씬 더 적은 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예쁜 여성이 더 많이 받을 때가 있었는데, 예쁜 걸 이용해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이다. (예를 들어 원초적 본능의 샤론스톤-이쁜 걸 이용해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형량을 오히려 더 받는 이유는 섹시에 말려든 뒤 오히려 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 것이 심각한 거세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데다가, 또한 아름다운 것은 선하다라는 암묵적인 신념에 따른 호의적 행동이 배반당했다는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맨큐 경제학 원론에 인용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동일한 집안배경과 학력을 가진 사람들의 소득을 조사해보면 매력적인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1.6배 정도 소득이 높다고 한다.
다른 실험도 있다. 원래는 미녀 조수인데, 한번은 매우 못나 보이게, 다른 한번은 매우 예쁘게(원래대로) 피실험자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피실험자가 우연히 듣게 하는 식으로, 그 여조수의 논평을 듣게 하였다. 그러자, 매력적으로 분장한 조수의 경우 때, 그 조수의 논평에 더 신경을 썼으며, 그 조수가 피실험자(즉 인터뷰를 한 사람)에게 나쁜 평가를 내렸을 때 그 조수와 인터뷰를 한 번 더 하고 싶어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못나 보이게 분장하고 인터뷰 했을 때는 피실험자를 낮게 평가하여도 다시 인터뷰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즉,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사람에 저평가되는 것을 사람들은 못견뎌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취조실에서는 이를 이용해서 교묘한 자백수단을 쓴다. 그것은 ‘나쁜 경찰’ ‘좋은 경찰’ 수법이다. 먼저 취조실에 들어오면, 우락부락하게 생긴 놈이 의자를 쾅쾅 뚜드리고 난폭한 언어를 쓰면서 말안하면 떡을 만들어버리고 감옥에 오래 처넣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 때 다른 인상좋은 경찰이 나타나서,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참게 그러고, 자넨 너무 흥분했네, 내가 해보겠네 이렇게 말하고 나쁜 경찰을 밖으로 보낸다. 그리곤 말한다. “저 친구는 내가 동료지만, 정말 질이 안좋아. 자넨 전속담당 형사를 좀 잘 못만났어. 자네는 잘못하면 형량을 크게 받을 수도 있네. 나도 아들이 있고, 자네 나이 또랜데, 정말 가슴이 아프네. 자 담배 한대 피겠나? 나한테 잘 털어놓으면 내가 진짜 정상참작 시켜주겠네.” 이 청년 범죄자는, 경찰은 다 똑같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이 뒤에 들어온 경찰은 인상이 좋으니까 나에게 잘해줄 것이라는 근거없는 호감을 가지고 정보를 다 털어놓는다. 이 두 패가 한팀이라는 것은 부연할 필요도 없다.

이외에도 호감에 의한 효과는 매우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유도하는데 많이 쓰인다. 가장 빈번하게 쓰이는 것은 광고에서의 연상작용이다. 포카리 스웨트라는 선전이 있다. 그리스의 대리석 같은 집에서 손예진이 따라라라라라라라 노래에 맞춰서 허벅지가 보일락 말락 드러내면서 흰 빨래를 마구 밟아대다가 포카리 스웨트를 마신다. 마시고 싶지 않은가! 포카리 스웨트 맛이 진짜로 어떻든 간에. 스포츠 팬들은 스포츠 스타가 선전한 광고에 신뢰성을 부여하고, 인기드라마에서 의사로 분한 탤런트가 약품 선전에 나와서 광고를 한다. 스포츠 스타가 컴퓨터에 대해 뭘 알겠으며, 탤런트가 약품이 좋은지 알게 뭔가. 그러나, 사회심리학 결과는 이것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험설계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두대의 차가 제시된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대부분의 점에서 성능이 좋다. 그리고 이 두대의 차를 선전하는 각각의 선전책자가 제시된다. 실험집단의 피실험자들에게는, 그 중 한차의 선전책자에 미녀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차 옆에 있는 사진이 많이 실려 있고, 다른 차의 선전 책자에는 미녀가 빠져 있다. 그리고 대조집단의 피실험자들에게는 동일하게 미녀가 업는 선전책자가 제공되었다. 그러자, 실제로는 미녀가 없는 차가 더 성능이 뛰어나고, 대조집단의 피실험자들도 그렇게 선택했는데도, 실험집단의 피실험자들은 70%가 미니스커트 미녀가 연상되는 차를 더 성능이 좋다고 골랐다. 그리고 나중에 실험조교들이 그건 미니스커트 때문이 아니냐고 했을때, 이 70%중 90%가 자신은 그 미녀에게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나는 오로지 성능 때문에 골랐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사람들은 지금 의사결정을 내리려는 사안의 본질과, 그것과 연상되어서 제시되는 어떤 이미지가 아무 상관이 없음을 의식적으로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연상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는 비단 미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조지 부시의 본질은 석유회사의 대주주이자, 말도 조리있게 제대로 못하는 얼간이에다가, 인민의 죽음에 대해 전혀 동정심을 갖지 않는 냉혈한이지만, 조지 부시는 대중적으로 친근한 엘리트의 모습, 국가의 안위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위대한 지도자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재선에 성공하였다.

다섯번째는 희귀성의 원칙이다.
갑자기 희귀해진 상품은 가치가 높아진다. 이것은 쿠키 고르기 실험설계에 의해 증명되었다. 피실험자들에게 쿠키를 제공한다. 제일 맛있는 쿠키 A, 중간 맛있는 쿠키 B, 맛없는 쿠키 C가 있다. 피실험자는 제약된 돈으로 제약된 양의 쿠키를 골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실험 중간에 쿠키 B를 실험조교가 많이 가져가 버렸다. 그래서 쿠키 B를 먹고 싶어도 못먹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그러자 피실험자들은 앞다투어 쿠키B를 먼저 사서 그것을 확보해두고 싶어했다. 자신이 원래 쿠키B를 가질려고 예상했던 양보다 훨씬 많게 말이다. 피실험자들의 인터뷰 결과, 그들도 또한 쿠키 A가 제일 맛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쿠키B가 제일 가치있다고도 말하였다.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사회심리학자들은, 이것이 자유의 영역 억제 이론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어떤 동일한 자원으로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누리던 자유가 갑자기 축소되면 그것을 복구하려는 강력한 심리적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를 키울 때에도, 자유를 줬다 뺐었다 이렇게 변덕스럽게 하면 그 애가 fucked up된다. 자아 속에 엄청나게 응축된 불만의 에너지를 키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자유가 없고 어쩔 수 없다 이런 집보다는, 누릴 수 있고 누려왔는데 갑자기 못누리게 키우는 집에서 fucked up된 애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다. 혁명도 마찬가지이다. 혁명은 가장 힘든 상황이 계속 죽도록 지속되는 상황에서 나오지 않는다. 혁명은 뭔가 좀 잘되어 가는듯 하다가 그 성장이 지지부진하게 멈추거나 자유가 좀 풀리는 듯 하다가 (원래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옥죌때, 그때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희귀성의 원칙에 의해 일어나는 정치적 동학이다.

미국의 한 주에서 인산염 세제가 환경오염을 심각하게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생산을 금지시켜 버렸다. 그래서 사람들이 환경오염을 일으키니 쓰지 말자 하고 동참했는가? 어떻게 되었냐 하면, 사람들이 슈퍼에 나와 있던 인산염을 사재기 해서, 금방 인산염 세제가 최고 인기상품으로 등극하였다. 사람들은 다른 주에 가는 이웃이 있으면 인산염 세제를 사달라고 부탁해서 마구마구 샀다. 인산염 세제가 다른 세제보다 좋은 것도 아니고, 대체적인 세제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주의 주민들은 ‘인산염 세제가 다른 세제보다 강력하고 때가 잘빠진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희귀성의 원칙은 근거없이 어떠한 정책에 비합리적으로 반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여섯번째로, 마지막, 권위의 원칙이다.

밀그럼이라는 사회심리학자가 실험을 했다. 기억력 학습 효과에 대해서 실험한다고 피실험자들을 응모해놓고(사회심리학 실험들이 죄다 이런 식이다. 진짜 실험목적은 절대 안갈켜 주고 피실험자들을 기만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실험목적이 알려지면 그 실험목적에 부응하려는 피실험자들의 경향이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들이 얼마나 권위에 복종하는가를 알아봤다. 피실험자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문제를 내고 전기충격을 주는 팀과 문제를 풀고 전기충격을 받는 팀이다. 문제는 되풀이 되어서 제시되고 암기문제였다. 그래서 뽑기로 팀을 나눴는데, 사실 전기충격을 받는 팀은 피실험자들이 아니라 조수들이었다. 그리고 전기충격도 가짜였고 연기였다. 어쨌든 실험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점점 전기충격을 늘리자, 고통을 호소하는 문제풀이쪽 사람들이 늘어났다. (물론 연기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심장 통증을 호소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다. 계속할까요? 밀그럼 교수는 계쏙 할 것을 지시한다. 조수들은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연기했다. 그래도 피실험자들은 2/3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가 계속 복종을 했다. 450볼트까지 올렸다(물론 가짜지만). 이 잔혹한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까? 복종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의사이며 교수라는 직함, 하얀 가운이라는 의상, 대학이라는 곳의 환경등은 그 교수에게 터무니없는 권위를 안겨주는 것이다. 나치군대의 많은 장교들은 유태인을 학살하면서 일말의 가책을 못느끼고 그것은 전쟁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정권 시절 일선에서 고문을 직접 담당한 정부직원과 형사들 중에서 양심고백을 한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는가?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느낀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사람들은 권위에 의존을 많이 한다. 직접 그 경쟁하는 논지를 알아보려고 하기보다는 학력이나 직업, 직함을 보고 어떤 쪽에 신뢰성을 많이 부여한다. 권위는 무지하거나 알아보기 귀찮은 문제에서 해답의 원천이 되고, 어떠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작업을 진척시키는 권원이 된다. 만약 피실험자들이 잘 아는 상황이었다면 권위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민간 요법을 많이 연구하고 의학잡지도 많이 보는 사람들은 의사의 말에 고분고분하지가 않다. 그리고 자동차 기술자가 일상적인 자동차 수리 문제에서 자신의 10년 경험과 배치되는 자동차 공학박사의 의견을 따라서 자동차를 고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권위는 불확실성과 무지의 상황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이상의 상호성, 일관성, 사회적 증거, 호감, 희귀성, 권위의 원칙은 모두, 상황이 불확실하고, 정보는 많아지고, 선택의 부담은 늘어났을 때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왜냐하면 진지한 성찰적 판단을 내릴 여유는 없고, 자신이 평소에 문제를 무리없이 해결해왔던 패턴화된 행동양식에 기대는 것이 안심이 되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적인 최적화는 집합적으로는 엉터리 결정에 이르게 될 확률이 높다.

만약 정보화사회가 되어서, 정보를 국가기관들이 마구 제공하고 사람들이 직접 민주주의로 컴퓨터로 투표한다고 해보자. 사람들은 모두 이상의 법칙들에 따라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정책경쟁도 이런 법칙들을 이용해서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일까에 비중이 실릴 것이다.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나 의사결정절차에 완전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단지 대중들에게 권력만을 더 많이 안겨주면 개인적인 최적화에 의한 편리한 판단에 의해서 엉터리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론은 신뢰할 수 없다는 반론이 가능해지며, 인민의 의견이 현재 통계적으로 표출되는 유일한 방식, 즉 여론의 지위는 매우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커뮤니케이션 흐름을 연결하는 입자는 개인들이다. 이 개인들이 이러한 패턴을 가지고 각 커뮤니케이션 망을 구성하게 된다면, 민주적 의사결정의 체계적인 실패는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는 것은 이러한 패턴을 깨는 길항력countervailing power, 즉 사람들을 숙고하고 심의하게 하며 통계적인 의사표출 이외의 의사표출방식과 의사형성과정-시민단체 활동, 청문회와 공청회, 집단적 항의, 집회, 토론회, 세미나, 소규모 대안언론,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정당정치가들의 존재-이 어느 정도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길항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여론조작이 매우 수월하며 형식적으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더라도 그 체제는 타락한 독재체제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길항력을 제도화하고, 패턴화된 의견과 숙고된 의견을 구별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체제다.

by roemer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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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르엔
    2009.08.25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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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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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민주주의와 사회윤리학 담론 형성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교육센터-배움의 연대망’ 홈페이지 입니다. 이곳에서는 열린 강의 형태의 시민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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