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중적인 도덕 상대주의자의 언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말을 발견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도덕은 변해 왔으며, 국가에 따라 도덕이 다르다. 도덕은 항상 변하고 문화에 따라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진술에서 쓰는 ‘도덕’이라는 용어가 매우 비효율적이며 모순에 차 있는 것이라는 점을 물론 증명할 수 있다.

첫째로, 위에서 쓰인 ‘도덕’이라는 말대신 ‘문화규범’이라는 말로 대체를 하여도 뜻은 똑같아진다. 문화규범이라는 말은, 여러가지 측면의 인간생활의 행동을 통제하고 규제하기 위한 범칙들을 묘사한다. 확실히 문화규범은 변해왔으며, 문화집단마다 그 내용이 다르다. 그렇다면 왜 ‘굳이’ 도덕이라는 말을 쓰는가?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왜 굳이 도덕이라는 말을 문화규범이라는 말을 대신하여 쓰면 안되는가? 써서는 안되는 몇가지 좋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도덕’이라는 말은 그 내용상 ‘공동체 내에서 보편적으로 지켜야만 하고 지키지 않으면 그르다’라는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한 평가적 의미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양심에 뿌리박기를 원하는 어떤 당위적인 의미도 지닌다. 우리사회에서 ‘동성애는 대다수의 문화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이지’라는 말과, ‘동성애는 비도덕적이야’라는 말은 전혀 같지가 않다. 왜냐하면 ‘문화규범에 어긋난다’라는 진술에는 단순히 묘사적인 의미만이 들어있을 뿐이다. 그 문화규범이 실제로 옳고 그른 것인지를 전제로 하여 진술의 대상이 되는 동성애자들을 비난하거나 찬성하거나 또는 그들을 낙인찍어 인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도덕적이야’라는 말에는 평가와 당위의 힘이 들어가 있다. 이렇게 되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생긴다.

합당한 원칙 아래에 도덕을 성찰하여라는 말에 대해서는 ‘도덕은 상대적이고 변하기 때문에 그런 원칙에 의해 불변하는 옳은 것을 찾을 수가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다가, 즉, 비성찰적인 상대주의적인 도덕관을 옹호할 때에는 ‘묘사적 의미’로서 도덕이라는 말을 쓰다가, 현시대의 여러문제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상대적’인 문화규범관으로 어떤 행동을 판단할 때에는, ‘평가적 의미, 당위적 의미, 보편강제필요화의 의미’로서 ‘도덕’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는, 두 가지의 다른 뜻을 교묘하게 한 단어에 담음으로써, 성찰하지 않고 단지 전통적 교육과 문화적 세뇌, 그리고 자기 이익에 따라 선택한 어떤 문화규범관을 ‘적어도 그것이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시점 이 곳에서만은 보편화되어야 한다’라는 당위가 들어있는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덕’이라는 용어를 묘사적인 용법으로 사용하다가, 실제로는 평가와 당위의 힘을 가진 용법으로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다수가 믿고 있는 문화규범의 무비판적인 수용과 강제’이다.
둘째, 도덕이라는 말을 어떤 독립적 판단 기준없이 ‘다수가 받아들이는 행동규범’이라는 뜻으로 쓰게 되면, 적어도 ‘다수’라는 말을 정확히 정의해야지만 의미있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다수’라는 것은 몇%를 말하는것일까? 50%이상? 그렇다면 우리가 도덕이 변한다는 말을 전제로 삼았다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참이어야 한다:

처음에는 절대다수가 구도덕을 신봉한다. 그러다가 잠재적으로 신도덕이 될(그 용법에 따르면 아직 절대다수가 신봉하지 않으므로 ‘도덕’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어떤 행동규범에 관한 신념이 발흥하여, 점점 수를 늘려가다가 어느 순간 50%, 50%가 된다. 그렇다면 이 두가지 중에 어느것이 ‘도덕’이라는 타이틀을 채택할 수 있는가? 우리가 ‘문화규범’이라는 말을 쓰면 두가지 문화가 충돌한다고 쉽게 기술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이 충돌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느 한가지는 ‘도덕’이 아니라 소수의 ‘다른 생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수와 반수가 각각 다른 규범적 신념을 갖고 있으면 어느 쪽을 도덕이라고 불러야 할지 언어의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그 이유는 ‘도덕’이라는 것을 독립적인 판단기준을 갖고 있지 않는, 단지 다수의 문화규범이라는 말과 동의어에 불과하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종종 말려들게 되는 대중적인 ‘도덕 상대주의자’와의 논쟁은 언어의 오용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도덕 상대주의자는 문화규범과 도덕이 다른 의미가 아니라고 한다면, 문화규범이라는 말을 씀으로써, 위에서 지적한 첫째, 둘째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결국, 진지한 논쟁은,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독립적 기준을 무엇을 채택할까와 관련된 논쟁이다. ‘도덕은 보편적인가?’ ‘도덕은 상대적인가?’ ‘도덕적 당위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가?’와 같은 물음은 잘못된 언어의 사용에 관련된 것이므로 해소되어야만 한다.

예를 들어서 ‘도덕주의자’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도덕주의자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생각하면 도덕을 자신의 행동신념으로 삼고 있다는 것인데, 모두가 자기 나름의 도덕이 있으니 이것은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사용하는 맥락에서 ‘도덕주의자’는 ‘인습적인 문화규범을 다른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일까지 일일이 관철시키려는 사람’이다. 어쨌든, 대다수가 채택하고 있는 문화규범을 ‘도덕’이라고 부르는 관행은 쉬 없어질 것 같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한대로, 우리의 언어를 하나의 도시에 비유한다면, 논리학의 언어와 기호는 잘 닦인 대로와 같은 것이고, 보통 쓰는 일상 용어들은 허름하지만 옹기종기 지어져서 그 역할들을 하는 집들의 거리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이라는 이 용어가 처한 상황은 난개발 지구와도 같다고 할 것이다. 길을 찾아서 들어가보면 막혀있고, 그렇지만 그 길을 길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꾸불꾸불 엉망인 것이다. 이렇게 엉망으로 된 까닭은 내가 생각하기에 다음과 같다: ‘도덕’이라는 용어는 인습적인 문화규범을 지칭하는데에 사용되어 온 것이 원래의 용법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 용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인습적 문화규범을 만들어내는 그 경로 이외에는 도덕적 평가를 하는 어떠한 경로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정법질서나 지배적인 문화규범을 평가할 수 있는 인습과 종교로부터 독립된 잣대는 벤담과 칸트의 시대부터 겨우 시작했다.
종교에 완전히 눌려서 성경해석의 권위에 그 행동의 준칙을 전일적으로 맡겼던 중세시대의 서양 사람들이나, 유교경전의 해석이 도덕의 모든 권원이 되었던 우리나라 전근대 시대 사람들이나, 어떤 다른 도덕의 준칙을 내세워서, ‘이것이 진짜 도덕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계몽주의 시대가 시작되고, 계몽주의의 서자들인 공리주의자들이 ‘도덕’을 일반법칙에 따라 정리된 어떤 체계라고 선전하면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 두가지는 완전히 다른 것인데, 한 가지의 용어에 담았기 때문이다. 난개발이 진행되어 온 것이다. 윤리학자들은 대중의 의식상태에 대해서 별 고민을 안했기 때문에 이렇게 이중적인 의미를 계속 한 단어에 담는 것에 별 걱정을 안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연구만 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윤리학을 대중에게 보급시키려면 이 문제를 집고 넘어가야만 한다.

각설하고, ‘도덕’이라는 용법은 워낙 그 관행적 사용이 ‘인습적 문화규범’이라는 뜻으로 고정되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두가지 다른 의미에다 계속 ‘도덕’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한다면 쓸데없는 논쟁에 말려들기 때문에 이 또한 아니될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할까? 적어도 어떤 논의를 전개하기 이전에, ‘도덕’이라는 말이 독립적 판단기준에 의해 도출된 당위적 규칙인지, 아니면 문화규범인지를 정의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두 개의 다른 의미가 하나의 용어에 담겨서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 중 하나를 다르게 명명해야 할 것이다. 내가 채택하고자 하는 방법은 이것이다.

인습적 도덕(또는 윤리) : 대다수가 교육받고 세뇌받아서 무비판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그 사회의 문화규범.

성찰적 도덕(또는 윤리) : 독립적인 판단기준을 가지고, 그 사회의 다수 도덕적 견해와 무관한 ‘도덕적 결론’을 낼 수 있는 체계를 가진 도덕.

물론 도덕이라는 용어가 계속 나오는 글에서, 계속 이런 ‘-적’ 하는 형용사를 붙이면 번거로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쓰는 글이 어느 도덕을 주제로 삼고 있는가를 정한 뒤에, 그 주제로 삼게 된 의미의 도덕은 많이 등장할 것이므로 형용사를 쓰지 않고, 주제가 아닌 의미에 대해서는 ‘-적’하는 형용사를 붙이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윤리학책을 쓴다면 당연히 ‘인습적 도덕’/'도덕’이렇게 써야 할 것이다. 다만, 성찰적 도덕에 대해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인습적 도덕’은 ‘인습적 도덕’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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