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사태는 ‘실현가능성’이 100%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실현되어 유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우리가 경험이나 그 원리상으로 잘 알고 있는 사태들도 실현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내일 자전을 멈추지 않을 확률도 100%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실현가능성을 ‘가만히 놔 두어도 일어날 확률’의 의미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 관계하는 어떤 사태의 작동을 이야기할 때에는 맞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이 글을 쓰고 나서 “아이고”라는 말을 할 확률은 얼마일까요? 이런 질문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어떤 답을 하든지 상관없이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확률’을 이야기하는 담화 행위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은, 그 수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행동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수치 자체는 통계적인 의미만을 가질 뿐입니다. 주사위를 던질 때 3의 눈이 나올 확률은 방금 5가 나왔다 해도 여전히 6분의 1입니다. 반면에, 호주제가 폐지될 확률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변해왔습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일어나지 않은 인간사회의 사태들에 대해, 자연과학에나 적용되는 ‘확률’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어떤 변화를 이루기 위해 동원될 수 있는 자원을 평가하는 통계로서 숫자를 사용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므로 단지 어떤 제도대안을 지지하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 ‘실현이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확률적 의미를 제외시켰을 때, 제도 개혁의 실현 가능성이 거의 낮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 세 가지 입니다.

첫째, 그 제안된 제도가 유지되기 위한 조건으로, ‘영웅적인 인간상’이나 ‘이타적인 인가상’ 등 역사적으로 지속적으로 관찰되지 않는 인간상을 내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회는 사람들의 행동 양식 자체가 바뀝니다) 단순히 제도의 결과로서 ‘이러저러한 인간상이 나타날 수 있다’라는 주장은 문제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투표권을 동등하게 부여받으면 여성의 정치의식이 신장될 것이다’라는 주장은 보통 선거권 제도의 유지를 위해 여성의 정치의식 신장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반면에, 제도 자체가 ‘이러저러한 인간상을 가진 주체들 때문에 유지될 것이다’라는 주장은 실현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이 전부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거나,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거나, 아니면 모두 이기적으로만 행동할 것이라거나 하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제도 설계는 모두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제안된 제도 자체가 정합성이 없어서 안정된 균형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계획 사회주의 제도는 정합성이 없는 경제체제입니다.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시장기제를 활용해야 하는데, 시장기제의 활용은 계획기관의 통제력을 떨어뜨립니다. 뿐만 아니라 계획에서 사용되는 통계량과 신호는 시장에서 사용되는 정보와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계획체제는 정합적이지가 못합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자동차 산업이 기간산업으로 근간을 이루는 경제제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동차를 적게 타게 만들려는 교통 정책은 정합성이 없습니다. (이 짓은 우리나라 정부가 하고 있는 바입니다) 또는, 과외의 근절과 같은 금지 정책도 안정된 균형을 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외와 같이 사적으로 합의에 의해 재화와 용역을 교환하는 행위를 규제하는데에는 많은 경찰력이 동원되는데, 일시적으로야 동원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과외에만 경찰행정비용을 집중시킬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음성 과외 시장이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어떤 행위에 의해 ‘동의하지 않은 중대한 영향’을 누군가 받는 행위들을 금지하는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환경 폐기물을 내다버리는 짓’을 금지하는 정책은, 환경오염에 의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금지 정책이 실효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셋째, 지금 존재하는 사태에서, 제안된 제도가 모두에게 완벽하게 알려져서, 사람들이 그것을 신중하고 숙고해 보았다고 하더라도, 정착된 사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혜택보다 더 큰 ‘희생’을 지속적으로 부담해야만 함이 명백한 경우. 예를 들어, 지금의 근대산업기술-자원낭비가 심하고 복잡하고 환경오염을 낳는 기술-을 버리고, 지속가능한 기술로 당장 돌아가자는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실현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바로와 같은 독일의 근본생태주의자들이 이런 주장을 하지요. 그렇지만, 당장 자동차를 모두 더 이상 사지 않는다고만 해도, 자동차산업이라는 기간 산업이 무너지고 그렇게 되면 경제불황이 심화될 것입니다. 또한 근대물질문명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생태문명으로 적응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희생입니다. 다른 예를 들자면, ‘폭력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사회로 가자는 주장은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봉기에 의하여 일어나는 혁명은 자본의 해외 유출, 기존 행정기관과 정치기관의 마비, 경제 불황으로 인해 매우 장기간의 ‘전환의 비용’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로 합리적인 유권자들이 이런 행동을 지지하거나 선택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제안은 실현가능성이 낮습니다.
이와는 달리, 소수의 특권계급이나 소수의 이익집단이 지금 정치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리고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 대중이 새로운 대안을 접해볼 기회가 없어서, 신중하게 숙고하여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배적인 견해가 그 제도대안에 대하여 No라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가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일들은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통계적으로 힘들 것이다 또는 지금 동원될 수 있는 자원에 비추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라, 이러저러한 노력들이 더 필요하다, 단계적으로 이러저러한 과정을 밟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제안에 대해 알게 되고, 설득당하고, 지지하게 되는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대체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된다면 실현 가능성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개혁안은 강력한 정치적 반대파를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 개혁안에 의해서 손해를 보는 이익집단의 힘이 강력할 때, 변화를 꾀하는 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도 그만큼 더 커야 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힘은 이성에 기반한 의사소통에 의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제안에 대해서 늘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모든 새로운 제안을 ‘실현 가능성’이 없다, ‘이상주의적이다’라고 딱지 붙이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언어의 오용입니다. 왜냐하면 평범한 인간상을 바탕으로도 유지 가능하며, 체계 정합성이 훌륭하고, 전환의 비용도 없는 어떤 제도를 실현하느냐 마냐는, 현실을 바꾼다는 사태에 개입하는 한사람 한사람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익숙치 않다는 이유로, 언어를 오용하여,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딱지를 붙이는 것은 자기 충족적 예언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 버리면 실제로 실현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제안된 제도를 해석하고 개혁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 그 자신의 행동들이 모여서 실현이 안된 것이지, 제안된 제도 자체에 어떤 ‘실현 불가능성’이 본질로서 내재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시민교육센터에서 다루게 될 많은 제도대안들을, 언어를 오용하는 사람들은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해 버릴지 모릅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단기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굵직굵직한 대안들에 대해 고민할 때에는 분명히 회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럴 때에는 역사책을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너무나 견고해 보였던 체제들이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해질 때에는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그리고 불과 몇십년 전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하면서, 절대로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민주주의가 독재를 물리치고 결국 어느정도나마 자리잡았음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당장 도입되지 않는 대안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꾸준히 세련화하고, 널리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게 되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념상에 지나지 않는 대안도 단기적인 개혁 프로그램들을 고취하는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현재의 제도를 평가하는 규준과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당장 도입될 수 있는 개혁 프로그램들도 근본적인 사회의 이념상에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실제로 정치적인 힘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보면, 실현불가능한 대안과 정치적으로 관철하기 어려운 대안을 구분하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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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03 14:1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얼마전의 저를 포함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약간의 답이 될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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