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봉주는 무죄다>는 정봉주 사건을 계기로, 명예훼손 및 허위사실유포(이하 ‘명예훼손관련죄’라고 한다)의 성립 요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이다. 한국에서 명예훼손관련죄의 기본적인 성립요건은 1) 사실의 적시라 할지라도 그것이 공연히 대상자의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리는 경우에는 처벌받고 2) 허위의 사실 적시의 경우에 그것이 진실임을 믿었다고 피고인이 입증하지 아니하면 처벌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실상 공표된 사실이 피고인이 진실이라는 점을 입증할 것을 거의 요구하는 셈이다.

 

사실 이러한 명예훼손관련죄의 도그마틱은 그 자체가 합당한 법철학적 검토를 거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아니한 한국 역사의 굴곡 속에 성립되어 온 판례들이 쌓여 하나의 우연한 도그마틱을 이룬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도그마틱에 대해 진지한 법철학적 논증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회학적으로 보면 판사들이 거의 어떠한 공개적인 견해나 사실의 표명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수도승 같은 존재라는 점과 큰 관련이 있다고 추측된다. 판사들은 오직 판결을 내리는 일만 하며,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것은 그 행위 자체가 큰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로 생각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견해를 밝히거나, 어떤 의혹을 파헤치거나 하는 일은 자신들의 삶에 거의 관련 없는 일이며, 민주주의가 타인이 부담하는 권력자에 대한 의혹 제기와 비판으로 그럭저럭 운영되어 나가는 사태에 대한 무임승차자로서 살아온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정봉주 사건의 2심인 박홍우 재판부의 판결 내용에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2심 판결은 “일반적으로 인적, 물적 규모나 전문성에 있어 수사나 재판을 담당하는 공적 기관이나 개인이 수사기관보다 우월하다고 볼 수 없고, 구체적인 사건에 있어서 주관적인 의혹에 기초하여 공적기관의 판단을 부정한다면 수사나 재판을 담당한 공적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증폭되어 범죄 수사 및 재판과 관련된 제도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에는 의혹을 제기하는 기관이나 개인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실체적 진실이 왜곡되는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판결문 32쪽)라고 쓰며, “어떠한 단체나 개인이 수사기관이나 이에 준하는 국가기관 등의조사 결과 이미 완결된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공적기관의 판단과 다른 견해를 표명하기 위하여는 그러한 공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제기하는 의혹에 비하여 보다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32-33쪽)고 하고 있다.

 

이것은 공적 기관이 어떤 사태에 관한 사실을 특정한 형태로 얼려 버리거나(freeze facts) 고정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는 태도의 발로다. 그러나 권력기관의 발표이기 때문에 한번 왜곡이 발생하면 이 의혹을 더 숨기기가 쉽다는 점은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그런 점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자기의 일로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예훼손관련죄의법리가 계속해서 왜곡되지 않도록 하려면 법관들 자신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제가 제대로 정비될 필요가 있다.

 

2. 이 책은 미국의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관련죄의 성립요건인 “현실적 악의” 요소를 자세히 논의하면서, 현실적 악의를 한국에서도 받아들여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서 현실적 악의 요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의 정치적 세력 분포에 의하면 가능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아무런 부작용이 없을 것이며 설사 부작용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는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이 질문 양자에 대해 나는 모두 부정적인 답을 한다.

 

1) 가장 간단한 문제인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살펴보면, 이러한 구성요건으로 보호해야 할 법익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성적 취향(동성애자냐 아니냐), 전과, 그리고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종교나 단체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등등이다. 따라서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이 책의 주장대로 그대로 제거해버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문제는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포괄하는 범위가 너무나 넓다는 데 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형사처벌의 비난가능성이 없는 행위를 처벌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따라서, 법으로 공표가 금지되는 범위의 피의사실, 전과, 성적 취향, 종교 등 프라이버시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열거 형식으로 사실적시를 금지하고 그 대상 인물이 그 사실적시되는 대상과 필연적으로 연루되는 어떤 행위나 발언을 하고 있어 공적 쟁점이 되었을 때에는 공표할 수 있도록 하는 형식의 법규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공적 쟁점은 사실 적시를 당하는 사람이 먼저 스스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대중을 오도한 경우가 아니라면, 권력 범죄나 비위 행위의 집합이 패러다임적인 사례로 되어야 한다.

 

 권력 범죄와 비위행위라는 것은 통상적인 대등한 당사자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나온 사건이 아니라 권력 간의 차등에 의해 고질적으로 나온 것이며, 일반적인 법적 해결절차 과정에서 권력이 큰 사람이 권력을 활용하여 그 절차를 구부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범죄이다. 절차를 구부린다 함은 절차 자체의 공정성에 영향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절차의 전제가 되는 당사자의 고소나 고발, 민사소송의 유지에 위협 등을 통한 협상으로 손상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경우, 증거의 수집이나 증거의 지배에 있어 지배력의 차이가 있는 경우가 해당한다. 이러한 집합을 사실적시의 대표적인 경우로 두는 것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의 헌장으로서 헌법 아래에 있는 형법을 바라보는 계약론에 의해 논증가능하다.

 

2) 다음으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살펴보면, ‘현실적 악의’를 그대로 받아들였을 경우 생기는 문제점들은 한국에서 감당하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박원순 시장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제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언론과 문제제기자들은 실제로 근거가 없는 의혹 자료들을 바탕으로 아주 단정적으로 박원순 시장 아들이 병역비리를 저질렀다고 하였다. 이 사건의 경우는 과거의 사실이 현재의 사실과 직접적으로 이어져 있어서 이를 직접 반증하는 형태로 반박이 가능했고 피해자의 명예는 복구가 되었지만, 이처럼 직접 반증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며, 또한 명예가 복구되는 범위는 명예가 훼손되는 범위보다 훨씬 적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 공표 사실이 과거의 일일 때에는 그렇다. 그러므로 현실적 악의를 요건으로 했을 경우에 한국에서는 선거시에 흑색 선전이 지금보다 훨씬 늘어나게 되고, 근거 있는 의혹 제기와 그렇지 않은 의혹 제기를 선거기간의 짧은 시기 동안 판별하기는 매우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공적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의 문제가 심각하며, 형사처벌이 이루어지지지 않는 틈을 메우기 위하여 민사상 거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즉, 사회는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명예훼손에 대하여는 다른 제도적 기제를 작동시켜 이를 수복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징벌적 손해배상과 같이 커다란 언론 하나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제도의 작동이 법적 불안정성을 많이 제거한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피고인에게 그것이 진실임을, 또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었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하라는 요구를 하는 지금의 법리는 더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것은 사실상 명예훼손관련죄를 과실범화하는 것이며, 그 주의의무의 기준은 사건마다 매우 달라 법적 안정성과 예측성을 제거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심각하게 위축하는 효과를 가져와(chilling effect), 결국에는 표현의 자유와 권력 비판 기능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한국에서는 현실적 악의라는 외국의 법리의 추상적 요건을 그대로 들여오기보다는 권력 비판 기능을 제대로 하면서 법적 불안정성을 없애는 방향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세심한 해결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이에 하나의 안으로 다음과 같은 법리를 구체화한 입법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사실에 관하여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 때 이를 공표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사실조회 의무가 발생한다.

 

i) 이 사실조회 의무를 따로 하지 아니할 경우에도 사실을 공표할 수 있는 방안을 열어둔다. 정보원의 종류와 그 양을 밝히면서 “~와 같이 정보원은 말했다”, “~와 같이 기재된 자료가 있다”, “이러한 정보원의 진술과 자료가 사실이라면 이는 000가~했다는 결론이 나온다.(또는 그와 같이 타당하게 추론할 수 있다)”와 같은 확보된 근거, 근거에 기재 또는 담긴 내용을 전달하는 내용과 추론의 내용을 구분하여 이와 같이 공표하였을 경우 정보원과 자료가 그와 같은 내용대로 있음을 입증하면 이는 무죄가 된다.

 

ii) 사실조회 의무를 이행한 경우: 요구되는, ‘사실조회 의무를 이행하는 방식’은 명확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의혹이 되는 사실의 경우에는 당사자가 밝혀낼 수 없는 자료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아닌 일반 사인이 그러한 자료에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이라도 더 접촉하여 이를 알아낼 것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불명확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조회할 사항은 더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만하면 충분히 조회했다”는 기준을 자의적으로 높게 잡으면 표현의 자유는 얼마든지 위축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조회 의무는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택하면 된다고 생각된다. 공표 대상 상대방과 접촉할 수 있는 경우에는 해명의 기회를 주고, 이 해명의 기회에 그 상대방이 제시하거나 제출한 반박 자료와, 이미 확보된 정보원 또는 자료의 내용의 신빙성을 평가하고, 이러한 평가 내용이 과학적 방법에 비추어 비합리적이지 않으면 단정적인 표현도 인정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하였다. ~임이 드러났다와 같은 진술어는 만에 하나 그와 반대되는 사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는 어제 이발소에 갔어”와 같이 다른 증거에 의해 뒤집힐 수도 있는 사실 진술이므로 만일 100% 입증을 요구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타인의 명예가 관련된 사안에서 ~로 보인다.. ~인 것 같다.. ~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라는 사족 문장만을 쓸 수 있는데 이러한 요구는 과도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신빙성 평가를 거쳐 어느 한 쪽의 견해를 표명하는 것이 비합리적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i)의 경우와 같은 표현을 쓰거나 아니면, 단순한 사실서술의 방식을 쓰면서 그 바로 아래에 상대방의 반론과 그 반론으로 제시된 근거도 함께 표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해명 상대방과 언론보도 전에 직접 접촉하는 것이 권력 의혹을 폭로하는 표현의 특성상 적절치 않은 경우가 있을 것이고(즉, 상대방이 언론보도를 미리 막거나 증인이 될 수 있는 진술자를 제거하거나 위협할 가능성) 해명의 주체인 상대방이 해명을 하지 아니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확인하는 형태의 추론 뿐만 아니라 반증하는 형태의 추론을 하나 이상 해보았고(해명이 있을 경우에는 해명에 제시된 사실을 하나 이상 조사), 그 추론을 함께 표시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전체 자료에 비추어 사실조회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아야 한다. 즉 범위와 양에 있어서 그 조회의무가 불충분하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형식을 갖추었다면 과실이 없다고 하여야 한다.

 

한편, “의혹이 제기되었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에는 취재원이나 물리적 자료 등 근거가 하나 이상 있으면 자유롭게 기사를 쓸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언제든지 상대방이 반대 자료를 통하여 반박할 수 있는 상태에 문제를 상정하는 것에 불과하고,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문제 상정은 언제든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다소 복잡하긴 하나, 결국 표현의 방식에 주의만 기울인다면 대부분의 의혹 제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만들면서, 그 정보의 수용자들에게는 세밀화된 표현방식으로 그 신빙성을 가려서 들을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는 한국 사회에 필요한 법적 안정성을 크게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된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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