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성 심사에서 '목적의 정당성' 분석에서 체계적인 개념 고정과 통제를 게을리하면 이 심사 단계는 매우 형화되기 쉽다. 입법자가 언질을 준 추상성이나 유형 그대로의 목적이 그럴듯하게 생각되면 그냥 통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수명이 더 길다는 신뢰할 만한 연구결과가 반복해서 나왔다고 해보자. (실제로 약간 그러하다.) 그런데 국민의 건강이라는 것은 공익에 속하는 것 같다. 그래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깎아주거나, 보조금을 주거나, 대학 입학에서 가산점을 주는 정책을 실시한다고 해보자.

 

이제 자유연상에 의한 대충대충의 비례성 심사를 실시한다고 해보자.  

 

목적의 정당성. "국민들의 더 긴 수명, 즉 더 나은 건강을 추구한다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다."

 

수단의 적합성. 국민들의 더 긴 수명과 종교의 신실함은 연구결과 상관관계가 있으므로 수단은 합리적이다.

 

그럼, 이 정책은 피해의 최소성 단계나, 아니면 법익 균형성 단계에서나 기각되는가?

 

그러나 국가는 종교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직접 국가의 의무에 벗어나는 것인데 목적도 정당하고 수단도 합리적인데 피해가 좀 많다거나 법익 균형이 어긋났다고 쳐내는 것은 이런 명문의 헌법 명령을 위배하느 방식의 심사인 것 같다.

 

만일 목적의 정당성이, 입법자가 언급한 개념 그 자체가 바람직한 성향의 개념인가 여부만을 살펴본ㄴ 것이라면, 입법자는 언제나 자신의 좁은 의도가 어떤 바람직한 가치의 추구라고 포장함으로써 목적의 정당성 심사를 피해갈 수 있다는 소리가 된다 .

 

이 사안에서 국민건강이라는 공익은 물론 국민의 행복추구권 및 건강권과 관련한 기본권관련적 이익이 되긴 하지만, 그 건강에 도달하는 경로상에도 기본권관련적 효과가 발생한다. 바로 '종교에 따라 차별을 받는 기본권관련적 효과'를 그 필연적 경로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경로상의 '기본권 관련적 효과'는 입법자가 언질을 준 개념의 추상수준에서는 포착되지 않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심사 시에는 당연히 심사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공식은 다음과 같다.

모든 목적의 정당성은, 공익의 존재성에 대한 진술로 변환된다.

공익의 존재성이란, 어떤 이익 x가 존재하고, 그 이익 x는 공익의 요건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공익의 요건에 부합한다 함은 공익이  될 수 없는 소극적 요건에 의해 배척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 소극적 요건에는 그 경로상의 기본권 관련적 효과나 이익이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종류의 이익이나 효과가 아닐 것이 포함된다.

 

따라서 위 사안의 경우에는 목적의 정당성이 없는 사안으로 간명하게 판정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안은 무척 간단하다. 사안을 보는 순간, 이것은 어쨌거나 헌법위반이라는 직감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미묘한 경우에는 위험이 훨씬 더 커진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입법목적이 허용될 수 없는 목적과 허용될 수 있는 목적의 혼합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교사의 직무 외에서 하는 집단적 정치행동을 금지하는 법률의 목적의 정당성은,

i) 교사의 직무에의 행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과

ii) 직무에의 행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고, 일반적인 국민들의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의 결과로 영향을 미치는 부분

모두를 억제하고자 하는 것으로 서술되는데 이 중 i)의 경ㅇ에는 공익이라 할 수 있으나 ii)의 경우에는 애초에 그것을 공익이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ii) 부분의 경우에는 목적의 정당성 부분에서 이미 날라가야 되어서, 수단의 적합성 이후 부분을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례와 결정례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이것은 목적의 정당성 부분의 추상수준 및 이익으로의 개념 전환 통제가 전혀 체계적으로 요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요구는 빠뜨릴 수 없는 도그마틱의 일부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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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iguayo
    2013.11.03 13:1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흠, 이렇게 글 읽어보면 꽤 쓸만한 소리들인데 왜 애꿎은 샌델을 깠을까?
    잘 읽고 갑디다.
    • 이한
      2013.11.03 22:36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정의란 무엇인가>와<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를 모두 읽어보셨다면 '애꿎다'는 인상비평 대신에 좋은 질문이나 정제된 의견을 올려주시면 서로의 공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질문이나 의견을 올리시면 두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아닌지 다른 이들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두 책을 읽어보셨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이 글의 논지에 동의하는 경우에는, 동시에 샌델의 미덕 파악에 의한 권리 설정 방법론(추상수준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방법론)에는 동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 점은 샌델의 입장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민주주의의 불만>, <정의의 한계>를 읽어보시면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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