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의 정치 개입의 규모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까지 드러난 어마어마한 규모조차도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개입의 형태는 i) 정보기관이나 수사기관 등이 불법적으로 정보를 누설하거나 은폐하여 중요한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쟁점을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것 ii) '갇힌 청중'이 되는 국가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에 대하여 일방적인 정치적 교조화를 시행하는 것(예비군 훈련에서의 강의, 보훈처 등등) iii) 언론기관을 조종하거나 통제하여 원하는 기사를 내는 것 iii) 댓글 달기, 트위터 하기, 집회에의 동원 등을 통하여 전체 여론의 흐름을 조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되는 것은 이와 같은 정치 개입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노출된 모든 지식과 정보의 환경이, 권력기관의 불투명한 조작으로 왜곡 형성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불투명성은 근본적 노예상태를 창출하는 것이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기에 저항할 힘이 없는 것은 물리적 노예상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그래서 그것을 교정할 의욕도 가지지 않는 것은, 더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인지적 노예상태다.

 

1사안: A가 B를 노예취급하지만, B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고, A의 힘이 약한 곳을 공략하여 저항하려고 생각 중이라면 B는 완전히 노예화된 것은 아니다.

2사안: A가 B를 노예로 대우하는데, B는 스스로 노예라 생각하지도 않고, A에 종속되는 것이 사물자연의 질서라고 생각하며, B 스스로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면, B는 그 처지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훨씬 낮다는 점에서 위 사안보다 더 근본적으로 노예화된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2사안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대통령이나 정당 지지율, 또한 사안의 심각성에 대한 여론조사로 드러난다. 이러한 '사소화'야말로 2사안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다.

 

배교를 혹독하게 처벌하는 국교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욕구를 현실적으로 갖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자신들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는 현실적 자각이나 압박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사회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나, 간헐적인 차별과 처벌이 있는 사회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노예화가 이루어졌지만, 그 압박을 현실적으로 느끼는 정도는 덜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인지적 노예화의 심각한 측면 중 하나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 사회 구성원들에게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두 번째 노예화의 측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하여도 된다"는 삶의 태도다. 특히 '어떤 일'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국가 기관과 사적 권력자에 의해 비호되거나 권장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따라서 살인이나 강도는 '어떤 일'에 포함되지 않지만 권력 비리에 가담하는 것은 '어떤 일'에 포함된다.

 

국정원의 심리전단 직원들, 국방부의 사이버사령부의 군인들, 그리고 국정원의 불법개입을 파악하였음에도 이를 은폐한 수사관들은 상관의 명령에 대해, 민주주의의 상식에 비추어 의문을 제기하는 일을 하지 못하였다. 의문을 제기하면 그 신분의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는 반면에, 범죄 행위에 가담하더라도 권력기관이 시킨 일이라면 비호되고, 이러한 '합리성'에 대한 고려가 행위를 선택하는 이유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찰은 국정원의 가담 직원들을 불기소함으로써 이 '합리적' 선택의 합리성을 이유있게 만들었다. (그 스스로가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정보 누설 및 쟁점형성이라는 정치개입에 의해 쫓겨난 채동욱 검찰총장이 재직 당시에 이미 가담 직원들에 대한 불기소결정이 내려지고, 반면에 내부고발자에 대해서는 기소결정이 내려졌음을 상기하라)

 

심리전단이나 사이버 사령부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운'으로 작용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공무원에 대해서라도 불법적인 일을 상관이 지시하고 그 일이 권력기관의 사익을 위한 것이라 비호될 가능성이 높다면 그것을 따르지 않을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공무원만이 범죄에 가담하면서 노예 근성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각종 관변단체나 개별적으로 '알바'를 뛰는 사인들도 '돈을 준다면 얼마든지 하겠다'라는 태도로 사태에 접근한다.

 

노예근성이 이미 정신을 침식한 것이다. 불법적인 일이 '만만한 이'가 아니라 '권력자'에 의해 지시되었을 때 이의를 제기할 만한 시민 정신은 이미 많이 실종된 상황이다.

 

재발방지책을 논의할 때는, 이러한 노예화의 진전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단순히 형식적으로 형량을 높이고, 선언적으로 "~해서는 안된다"라는 점을 다시 강조하는 것, 권력적 정보기관의 권한 중 일부를 이리저리 재배치하는 재발방지책은 아무 효과를 내지 못한다.

 

(1) 이번에 불법 비리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은 증거가 있는 한, 모두 처벌되어야 한다. 이는 '불법적인 권력비리에 가담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모두 뒤집고, 불법행위 전부를 낱낱이 밝히는 특검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2) 권력범죄에 대한 내부고발자 보호제도를 강화한다. 내부고발자가 고발을 접수하는 기관을 행정부 내의 국가기관으로 두어서는 안된다. 여야가 동수로 참여하는(다시 말해 국회의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있다 하더라도 그 정당이 가져갈 수 있는 위원회석은 1/2이 최대다) 특별독립위원회에서 고발을 검토해야 한다. 내부고발자가 이러한 독립위원회에 고발을 하게 되는 경우, 그 사안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명백한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경우에 징계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고발이 사실로 인정되지 아니하여도, 고발 자체만으로 그러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 또한 이러한 위원회에서 불법사실을 인정하거나, 또는 혐의를 인정하여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불법판정을 받게 되면 내부고발자에 대한 거액의 포상(최소 도시 노동자 4인 가구 5년치의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금액)을 제공해야 한다. 이후 고발자에 대하여 징계가 될 때에는 그것이 고발에 대한 보복이라는 법률적 '추정'을 하고 이 추정을 파쇄할 무거운 입증책임을 행정청이 지도록 해야 하나. 범죄에 가담한 자가 고발한 경우에는, 포상금은 없으나, 상위 지시자가 있는 경우에는 모든 민형사 책임을 면제하고 신분 보장도 마찬가지로 한다. 독립위원회의 2분의 1 구성원 합의에 의하면 관련된 국가기관에 모든 정보제출을 명할 권한이 있으며, 특별검사에게 고발을 할 권한이 있다.(즉, 2분의 1만 동의하면 되지 과반수가 될 필요는 없다. 위원회는 최종적인 조치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4) 권력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은 빠짐없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권력범죄에 대하여는 검찰의 기소유예 권한이 없는 것으로 명확히 규정하여야 한다. 또한 그 경제적 이익을 징벌적으로 필요적으로 환수해야 한다. 공무원이 월급을 받으면서 권력범죄를 지시, 가담, 조력하였다면 그 범죄에 연루된 재직기간 동안의 모든 급여의 50배를 환수한다. 사인이 국가기관으로부터 돈을 받아 은밀히 권력범죄에 조력하였다면 그 받은 돈의 50배를 환수한다. 어떤 명목으로든, 이 권력 범죄 가담과 관련하여 따로 받은 돈이 또 있다면 역시 그 돈의 50배를 환수한다. 환수금은 포상금으로 쓰인다.

(5) 국가기관의 정치개입의 4유형에 속하는 권력범죄에 대하여는 무조건적, 자동적으로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가 되어야 한다.

 

즉, 공무원과 사인들에게, 불법권력범죄에 가담하면 개인적으로 커다란 신분상, 경제상 손해를 보게 될 확률이 높으며, 고발을 하면 큰 이익을 보게 되며, 같이 가담한 이가 먼저 면책받으려고 언제든 고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노예화가 이미 전진된 한국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이분법적인 분명한 메시지를 새 제도가 주지 않으면, 인지적 노예화의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야당은 이 점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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