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롤즈의 기본소득에 관한 언급.

 

롤즈 <정의론> 황경식 역  제43절에는 사회적 최소치라는 개념이 나오며, 롤즈가 "정부는 가족 수당 및 질병이나 고용에 대한 특별한 급여에 의해서나 아니면 보다 조직적으로 등급별 보조(소위 네거티브 소득세)와 같은 방도에 의해서 사회적 최소치를 보장하게 된다."고 명기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네거티브 소득세는, 수식으로 풀어보면 그 결과가 기본소득과 같습니다. 즉 실업상태에서는 최소치를 받고, 노동을 하면 갑자기 재정지원이 단절되는 역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할수록 자신의 소득이 늘어난다는 결과가 동일하게 나옵니다.

  사회적 최소치는 정부의 부문 중 (분배처가 아니라) 양도처에 의해 다루어지며, 시장에 의해 제대로 충족되기에 부적합한 기본적 필요에 대한 요구를 사회적 최소치의 형태로 보장하는 것입니다.

 

2. 어떤 기본소득이냐에 대한 고민 

 

롤즈는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면 무조건 지지한 것도, 기본소득을 무조건 반대한 것도 아닙니다.

롤즈가 주의를 기울인 것은, 노동자들 상호간에 호혜성의 원리를 위반하게 되는 불공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리부의 서퍼는 스스로를 부양하여야 한다"는 <Restatment>에서 제시된 격언의 의미입니다. 

 

롤즈가 <정의론>과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진술한 내용들은 모두, 질서정연한 사회(well-ordered society)에서 시행되는 제도에 관한 것이며, 질서정연한 사회는 롤즈가 <정의론> 제2판 서문에서 썼듯이 재산소유 민주주의가 시행되는 사회일 것입니다. 따라서 롤즈의 언급은, 완전 준수론, 즉 질서정연한 사회에서의 정의 원칙의 구현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부와 자산 분포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 문제에 관하여 롤즈는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롤즈가 거부하였다고 정당하게 추론할 수 있는 형태의 기본소득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A형)

 

(i) 그 주된 재원이 노동하는 타 구성원의 노동소득임.
(ii) 국가가 최후 고용 보장자이자 숙련 기회 제공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아니함
(iii) 각자가 갖게 되는 여가를 기본적 가치(primary goods)의 보유 수준으로 감안함이 없이, 여가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에게 동일한 기본소득을 지급함.

 

반면에 롤즈가 수용하였다고 정당하게 추론할 수 있는 형태의 기본소득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B형)

 

(i) 그 주된 재원이 그 사회의 생산수단, 토지, 자연자원 등에 결부된 소득흐름(flow)임

(ii) 국가가 최후 고용 보장자이자 숙련 기회 제공자로서 의무를 다함

(iii) 각자가 갖게 되는 여가를 기본적 가치의 보유 수준으로 감안하여, 여가가 많은 사람은 그만큼의 부분을 공제한 기본소득을 갖게 됨.

 

3. 롤즈가 B형을 수용한 이유.

 

B형 기본소득을 지지하면서 롤즈가 지적한 점은 다음과 같은 점이며, 이 모두는 기본소득 논의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내용입니다.


(0) 기본적 필요를 충족하는 사회적 최소치는 보장되어야 한다.
(1) A와 B의 여건이 동일한 경우에(능력, 건강, 신체 등등) A는 노동하고 B는 여가를 즐기는데, A의 노동소득이 기본소득 형태로 B로 이전되는 것은

  (i) B의 여가의 비용을 A에 전가하는 것이 되어 공정치 못하며

  (ii) 노동에 대한 역인센티브를 설정함으로써 최소수혜자의 장기적 기대치에 불리하다.
(2) 국가는 어떤 형태로든 최후의 고용처 제공자가 되어야 한다. 이는 국가의 직접 고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정책을 써서 고용자가 구체적인 고용신청을 하였을 때 실제로 일자리를 마련해줌을 의미한다.  
(3) 노동을 하건 노동을 하지 않건,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그 사회의 생산수단과 자연자원, 도달되어 있는 기술 수준, 그 밖의 네트워크적인 사회적 자산에 관하여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지분을 가지며, 그 지분은 지금처럼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구성원들에게 대체로 고르게 분점되어야 한다.  

[이에 관하여는 John E. Roemer, <A Future for Socialsm>. 고현욱 옮김, <새로운 사회주의의 미래>, 한울, 1996을 참조 . 로머는 주식회사의 소유권 분점의 경우만에 국한해서, 이 소유권 분점을 무츄얼 펀드에 대한 쿠폰 형태로 각 성인이 구성원됨(membership)의 자격만으로 일정한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로 생산수단 자산이 분점되는 경우, 배당금 지급에 의해 기본소득 지급의 효과가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부록에 실린 로머의 계산표에 따르면 미국의 1987년 기준으로 1488달러, 1988년 기준으로 1635달러 1989년 기준으로 1165달러가 배당금으로 지급되게 된다. 이는 각 연도별 흑인 남성 중위권소득 남성의 1년 소득의 2-3달치에 해당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만약 토지의 지대가 합산되는 경우에는 이보다 좀 더 많은 기본소득이 보장될 것으로 생각된다.]

 

아래 4항에서 소개할 사무엘 프리먼의 논문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롤즈는 위 (4)에서 언급한 자산에서 나오는 소득의 배분은, 노동과 무관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위와 같은 자산 분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소득으로부터 걷은 세원이 주된 재원으로 하여 무조건적 기본소득을 하는 것이 적정한 정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롤즈가 '노동윤리'에 함몰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는 자신의 인생기획의 비용을 타인에게 불공정하게 전가해서는 안된다는 자유주의 원칙을 일관되게 준수한 결과입니다. 이는 값비싼 석탑을 지어야 자신의 종교적 의무를 다하게 되는 사람에게 그와 다른 종교를 믿거나 종교를 갖지 않은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그 비용을 보조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없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4. 참고할 사무엘 프리먼의 글들. 롤즈의 기본소득에 관한 입장을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http://www.civiledu.org/422 문단69이후

http://www.civiledu.org/398 문단46이후

 

5. 불완전준수론으로서 기본소득의 논의

 

(1) 생산수단과 자연자원, 조직과 기술 자산이 고도로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질서정연하지 아니한 사회에서, 질서정연한 사회의 제도로 가는 것은, 그러한 제도의 도입이 (i) 원활하고 (ii) 정치적으로 수용되기 쉬운 경로를 따르며 (iii) 그 자체의 심대한 불공정을 가져오지 않으며 (iv) 그 경로상에서 최소수혜자의 이득을 저하시키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2) 이에 따라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지침을 일응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i)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에 대한 최소치 보장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ii) 생계 대체를 가져오지 않는 수준에서의 보조적인 소득 보장(음식, 주거비에의 지원을 이룰 정도의 보장)는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오히려 노동과 생산, 학습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iii) (ii) 이상 수준의 기본소득의 무조건적 보장은, 생산수단과 자연자원, 조직과 기술 자산의  사회적 분점화가 이루어져야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iv)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국가가 최후고용의무자로서 마련한 정책적 방안에 의해여 산업안전보건법,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규를 모두 준수하는 적정한 일자리를 먼저 마련해줘야 하는 구체적 의무가 있다.

 (v) 국가가 그러한 (iv)의 의무를 시행하지 못하였을 때 그 사회가 사회적 최소치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발현되지도 못한 노동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굶어죽을 것이거나 다중채무자가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이므로 이는 부정의한 일이고, 이 경우 기본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무조건적이고 높은 수준의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얼마나 좋을까"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폭넓은 정치적 합의를 얻기 힘들 것이며, 그 논의가 완전준수론과 불완전준수론을 섞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즉, 불완전한 질서정연성을 가진 사회에서의 제도 도입을 근거지우는 논거로, 완전준수론의 논거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즉, 롤즈가 주의했던 바는 일반 시민들도 주의하게 될 바입니다. 이것을 '노동윤리'에의 함몰로 치부하는 경우, 극소수만이 논의하는 이상적 정책이라는 틀을 깨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즉,  기본소득에 관한 논의는 완전준수론의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본소득의 장점에 관한 논의로 만족하여서는 아니되는 것이빈다.

  그래서 논의는 (1) 국가가 헌법상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2) 국가가 헌법상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논증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국가가 노동능력이 없거나 노동능력이 있어도 적정한 최소한의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대우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부정의의 배척'에 관한 논의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보다 적정한 순서일 것입니다.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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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타가 있습니다.
    2014.12.10 09:4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3. 롤즈가 B형을 수용한 이유'에서 번호가 (2)에서 (4)로 넘어갑니다.
  2. 질문입니다.
    2014.12.10 14:5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완전준수론에 있어서 롤즈의 원칙에 대해 의문이 있습니다.

    1. 'A와 B의 여건이 동일한 경우에(능력, 건강, 신체 등등) A는 노동하고 B는 여가를 즐기는데 A의 노동소득이 B의 기본소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했을 때, 사회적 생산수단으로부터 나오는 소득과 노동소득을 구분하는 문제가 생기고, 이러한 논의는 모든 재화가 상호연결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결국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의 기본 생산 네트워크에 대해 정당한 지분이 있음'을 부정하는 의미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2. "말리부의 서퍼는 스스로를 부양하여야 한다"는 원칙은 말리부의 서퍼를 분별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의 수령자를 분별하기 위해 노동능력을 파악하는 데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극소수에 해당하겠지만, 현대의학에 있어서는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노동능력에 문제가 없다고 판별되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단히 드물더라도 한 인간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상황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정신병자의 경우입니다. 경도의 정신병들은 그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병자가 노동능력이 없음을 주장하고 이를 판별하기 위해 정부가 의학적 검사와 시험을 하게 될 때 정신병자가 겪게 될 인격적 침해의 양과 , 노동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지 않음으로써 납세자가 보호받게 되는 재산권적 자유의 양을 비교 형량하면, 전자가 더 보호받야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경우 부당하게 노동능력이 있다고 판별되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셋째로 노동능력을 잃게 되었을 때 즉시적으로 신고, 증명할 수 없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정부가 노동능력의 유무에 대해서 계속적인 감시를 한다면 인권 침해의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수령하기 위해 시험을 받았던 사람이 다시 의학적, 생리적 이유로 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음에도 이를 증명하는 과정의 불완전성과 인격적 모멸감을 피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도 생길 수 있겠습니다.

    3. 정부가 단순노무직을 위주로 직업을 제공하게 된다면, 일자리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 출퇴근만 하고 일은 별로 하지 않는 상황, 고된 일자리와 쉬운 일자리 간의 차이가 생기는 문제가 연상됩니다.

    4. 자산 수준에 따라 기본소득을 부여하면, 가족이나 친구 중의 한 사람에게 재산을 몰아주고 여러 사람이 부당하게 기본소득을 수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5. 여가 시간을 제약하게 되면, 무산계층과 유산계층 간의 정치 활동 시간, 자기계발 시간의 차이를 구조화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나, 생각합니다. 상속 받은 유산계층과의 차이는 더 불공정하게 느껴집니다. 기본소득이 생계를 완전히 보장하면 노동은 하지 않고 정치 활동만 하는 무산 계층이 생기겠지만, 무산계층의 정치 참여가 유산계층의 정치 참여보다 시간적으로 힘들도록 조직되는 경우에 비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상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6. '각자는 자신의 인생기획의 비용을 타인에게 불공정하게 전가해서는 안된다는 자유주의 원칙'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한
      2014.12.10 18:11
      댓글 주소 수정/삭제
      1. 여건의 동등성을 전제로 하면 그러한 부정의 의미가 없습니다.

      2. 말씀하신 구별가능성 문제는 기본권을 배려하며 제도적, 기술적인 차원에서 해결불가능한 문제가 아닙니다. 노동능력은 별다른 인권침해 없이도 평가될 수 있으며, 실제로 유럽의 복지제도 운용이나 산재 운용에 있어 평가되고 있습니다. 다만,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그와 같은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장점을 갖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고려사항들(considerations)도 있다는 것입니다.

      3. 정부가 '직접' 직업을 제공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며, 쿠폰 형태로 민간 사업장이나 각종 결사체에 쿠폰을 제공하고 그 일자리에서 일하는 방안이 있으며, 그 밖의 사항은 제도적, 기술적인 문제입니다.

      4.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생산수단에 관한 분점된 재산은 지분으로서 갖고 있는 것이지, 양도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의 문제로 자신에게 결국 생긴 소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무슨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5. 그러한 불공정이 분명히 있고, 그 불공정이 더 크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불공정을 해결하는 방식이 무엇이 적절한가 하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소득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모든 소득을 평준화하는 것도 하나의 접근 방식이겠고 이러한 평준화에 따르는 불공정이(어떤 행위를 하건 소득이 똑같다), 기존의 시장 불공정(시장에서 소득이 정해진다)보다 더 적다고 가상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지속가능한 사회운영의 정책으로 적정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동하지 않는 유산계층의 문제는 지대를 사회적으로 귀속화하는 정채과 재산분점을 통해 병행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보입니다.

      6.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 강의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간단한 가상의 예를 들자면, A가 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그 회사에는 B가 A와 동일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하여봅시다. 그리고 회사의 일에는 마감이 정해져 있어서 둘 중 하나가 빠지게 되면, 그만큼 남은 사람이 추가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때, B가 자신은 여가를 더 즐기기 위해 하루 8시간 일하던 것을 5시간을 줄였을 경우 그 3시간의 여가의 대가는 B 스스로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실제 B가 8시간 노동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다는 것은 판별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또한 이러한 불공정이 회사규모가 커진다고 하여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7. 무조건적 기본소득만이 갖는 장점이 분명히 있으며,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1) 기본소득의 액수가 적을 경우에는 그러한 장점이 두드러지며, 단점들은 거의 대두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국민에게 30만원의 기본소득의 보장) 또한 그러한 장점은 하나의 규범형으로서 계속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2) 그러나 어떤 정책이 뚜렷하고 분명한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책만이 갖는 장점을 다른 고려사항보다 최우선시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설득력을 갖는다면, 실제 정치에서 쟁점이 되고 논의될 수 있는 정책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떤 하나의 정책은, 다른 정책들 및 질서의 네트워크 상에서 실시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이 점을 놓치게 되면, 좁은 클럽 내에서의 절대적인 수긍만을 서로 주고 받는 것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어떤 형태의 기본소득이건 기본소득제도는 여러 정책 중 하나이며 홀로 존립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일 수 없습니다. 무조건적 기본소득조차도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의 거대한 자산,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합니다. 그 불평등의 문제는 재산분점을 실현시킬 수 있는 다른 정책을 병행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3. 안녕하세요
    2020.01.28 20: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안녕하십니까. '사회적 최소치'에 대해 질문하고자 합니다.
    사회적 최소치는 존 롤스의 민주국가의 기본구조에 대한 항목에 언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때 사회적 최소치에 대한 개념이 이사야벌린의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를 기준으로 할 때 어떠한 자유와 연관되나요?

    본 질문은 2020년 경희대학교 편입 논술에 등장하였기에 이렇게 질문을 드립니다.
    제시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내가 가정하는 것은 기본 구조는 평등한 시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헌법에 의해 규제된다는 점이다.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는 인정되고 있으며 정치적 자유의 공정한 가치가 유지되고 있다. 상황이 허락하는 한 정치과정은 정부를 선택하고 정의로운 입법을하기 위한 정의로운 절차로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내가 가정하는 것은 (형식적인 것과 대립하는 것으로서) 공정한 기회균등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정부는 일반적인 종류의 사회적 공통 자본을 보존함과 더불어 사립학교를 보조하고 공립학교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비슷한 재능과 의욕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등한 교육과 교양의 기회를 보장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또한 경제활동과 자유로운 직업선택에 있어서의 기회균등을 실시하고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기업과 사립단체의 행동방침을 정하여 보다 바람직한 상태에 대한 독점적인 제약이나 방해물을 제거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끝으로 정부는 가족 수당 및 질병이나 고용에 대한 특별한 급여에 의해서나 아니면 보다 조직적으로 등급별 보조(소위 네거티브 소득세)와 같은 방도에 의해서 사회적 최소치를 보장하게 된다.>>>

    존 롤스의 정의론 중 민주국가의 제도 양식으로부터 발췌한 지문이 출제되었습니다.
    이때 본 제시문을 '기회의평등'으로 봐야할 지 '기회의평등+차등의 원칙'으로 봐야할 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가족 수당과 실업급여, 등급별 보조, 그리고 사회적 최소치가 차등의 원칙에 해당되는 것입니까? 자유주의적 평등이 아닌 민주주의적 평등이기에 적극적 자유로 보아야 하나요??
    • 2020.01.28 23:04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시문만 기재하시고 해당 제시문과 함께 나온 문제를 기재하지 않으셔서 질문이 어떤 맥락에서 던져진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적으신 질문은 그 자체로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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