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달리 하고 놀 것도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불완전하게 구획되어, 사실상 개방되어 있던 성인 서가에서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보냈다.

 

그 때 칼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 등을 처음 읽었다. 그러다가 <테스>나 <올리버 트위스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과 같은 소설들을 차례로 읽어나갔는데, 태반은 지루해하면서도 꾸역꾸역 읽어대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심금을 울리는 소설도 있었는데 <좁은문>의 경우에는 충격을 받아 읽고 나서 거의 1주일간 식음을 전폐하기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러다 김용의 <영웅문>을 재수없게 접하게 되었다. 이게 재수없는 이유는, 적어도 별달리 할 것도 놀 것도 없었던 그 시절에는, 한 번 읽으면 결국 다 읽지 않고는 못배기게 되기 때문에 일종의 시간 블랙홀을 영접하게 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으로 치면 엄청나게 분량이 많은 미드를 하나 우연히 접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정의에 관하여 논한 논자들의 급을 영웅문의 고수들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화산 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구양진경을 차지하였던 전진교 왕중양은 존 롤즈다.

북개 홍칠공은 로널드 드워킨이다.

남제는 토머스 스캔론.

동사 황약사는 공화주의자 필립 페팃. 많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

주백통은 하버마스.

서독에 해당하는 인물은 없으나, 동시대인이 아닌 사람으로 고르자면 계몽을 전체적으로 후려친 에드먼드 버크가 적합할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양자옹, 찰스 테일러는 영지상인 정도 되며,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는 후통해에 해당한다.

 

전진칠자 중에서 가장 정통의 내공을 가진 마옥은 사무엘 프리먼, 가장 탁월한 무공을 가진 구처기는 노먼 다니엘스에 해당한다.

하버마스를 사숙으로 모시고 있는 왕처일에는 로베르트 알렉시가 들어간다.

가진악에는 조엘 파인버그가, 마사 누스바움은 한소영이 적합하다.

 

물론 이것은 재미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다만, 다음과 같은 짐작은 해볼만 하다.

 

향후 곽정이 나온다면, 그는 왕중양 롤즈의 내공을, 마옥 사무엘 프리먼을 통해 제대로 받고, 북개 드워킨에게서 사사받고, 남제에게도 배우며, 황약사 페팃에게도, 주백통 하버마스에게도 중요한 것을 배워 자기 것으로 한 사람이다. 물론 구양진경에 해당하는 분석철학도 익힌 사람일 것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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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03 10:2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영웅문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한 이미지가 떠올라 재미있었어요 ㅎ 음... 마지막 거.. 낸시 프레이저는 어떤가요? 좀 어긋나는점도 많지만요 ㅎㅎ
    • 2015.01.03 17:19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제가 낸시 프레이저의 책은 아직 한 권 밖에 읽지 못해 연결시키기가 어렵습니다.
  2. 2015.01.04 09:1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초등학생 때 포퍼를 읽다니요.......ㅋㅋㅋㅋ
  3. 스낵
    2019.11.28 13: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어차피 반 재미로 줄세우기 놀이를 하셨을 테니, 저도 반 재미 삼아 질문드리면 노완동 하버마스는 사조영웅전 기준인가요, 남제와 동사가 자신들보다 한 수 위라고 인정한 신 오절 중완동 기준인가요.
    • 2019.11.28 14: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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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같은 세세한 구분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동사서독남제북개 이상은 대략 같은 급으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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