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사유란,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는 사유를 말한다.

 

그 지식은 누군가 이미 구성해놓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구성된 지식이라고 하더라도 탐구하는 이가 이것을 모르고 스스로 사유하였다면, 이것은 지식을 단지 배우고 잘 이해하고 기억한 것과는 다르다.

 아직 아무도 구성해놓지 않은 지식을 구성하는 사유를, 창의적으로 기여하는 사유라고 한다. 이것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초심자 수준을 넘어 이미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의 지식의 흐름과 한계에 관하여 상당한 배경을 알고 있어야 어느 정도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상한 이분법이 있는데,

(1) 어차피 초심자의 수준에서는 창의적 사유는 할 수 없으니, 기존의 지식을 맹렬히 훈련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2) 발산((發散)적 사유를 무제한적으로 붇돋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나 이 둘 모두 결국에는 수동적 사유로 귀결된다.

 

(1)은 애초부터 수동적 사유만 하도록 배우는 이를 길들이므로, 수동적 사유가 그 산출물로 나온다고 해서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이해할 수 없는 태도는, 공부의 상당한 과정이 지나가기까지는 (1)을 채택해 놓고서는, 그 다음 단계의 배움에는 갑자기 능동적 사유를 기대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부생에게 수동적 사유만을 길들여놓고는, 대학원생이 된 사람에게는 능동적 사유를 기대하는 것이다. 

 

(2)는 두 단계의 과정을 겪는다. 발산적 사유는 창의적 사유의 일부 요건이다. 그러나 타당한 지식체계가 갖추어야 할 '제한'이 걸려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무제한적으로 북돋워진 발산적 사유가 어떤 의미 있는 지식의 구성으로 이르게 될 가능성은 별로 많지 않다.

 

그것은 잘 합의된 언어나 기호의 용법을 무시하거나, 그냥 쓸데없이 여기저기 개념들을 이어붙이거나,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럴듯하게 썰을 풀고 시나리오를 짜는 결과만을 낳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리저리 사유가 아무렇게나 진행하게 하는 발산적 사유를 북돋우는 선생은 그러한 무용한 결과를 모두 수용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무의미하므로, 진심으로 수용하는 것은 아니고, 외견상 태도로만 그런다. 자, 자, 또 창의적 사고를 해보라구.

 

그러나 아무런 제약이 걸려 있지 않은 '발산적 사유'를 해봤자 진지하게 수용되지 않기 때문에 길거리에 걸어다가 받은 전단지처럼 그 사유의 결과물은 순식간에 쓰레기로 사라진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자신의 사유가 결국 무용하다고 생각하면, 발산적 사유를 관두고 수동적 사유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 선생 밑에서 그런 점을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마찬가지 경로를 간다. 왜냐하면 세상의 대부분의 선생들은 발산적 사유를 무제한적으로 북돋우지 않기 때문에, 그 사유의 산물의 무용함을 정면으로 지적받을 때가 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음메 기가 죽어서 결국 수동적 사유로 돌아간다.

 

이것은 이상한 이분법이다. 훈련만을 강조하는 시각은 도대체 어떻게 능동적 사유가 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발산적 사유만을 강조하는 시각은 겉으로는 능동적 사유를 북돋운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의 능동적 사유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결과로 귀결된다.

 

이에 대한 해법은

(1) 기존의 것을 익히는 훈련을 성실히 하되, 그 훈련의 대상이 되는 지식은 잠정적인 것이어서 틈이나 결함, 또는 애매함이나 혼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늘 상기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의문이 생기면 그 의문을 적어두고 해결될때까지 잊어버리지 말고 가보도록 해야 한다.

(2) 발산적 사유는 늘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사유는 오직 지식의 체계가 제시하는 가능성과 제약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그것은 지식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늘 주지받을 수 있게 한다.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붓글씨를 쓰게 면서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않았을 때와 제약을 두었을 때를 비교하면, 제약을 두었을 때 더 창의적인 작품이 나온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능동적 사유를 촉진하는 핵심은, 체계의 제약 속에서 발산적 사유를 촉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제약이 있어야 하는가. 여기서는 형식적인 제약만을 이야기하겠다.

 

(1) 주장은 명제로 표현되어야 한다.

(2) 명제는 공적으로 접근 가능한 개념 요소로 이루어져야 한다.

(3) 그 명제는, 그 명제가 성립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하여, 지식에 다른 점을 가져와야 한다.

(4) 명제는 진리조건을 가져야 한다. 즉, 그 명제가 참인 경우와 거짓이 되는 경우가 이론상으로, 가상적으로는 가능해야 한다. (외견상 복잡해 보이는 명제가 항진명제임을 밝히는 것도, 애초에 항진성이 증명되는 그 명제가 항진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상정된 후에 항진성 증명이 이어지는 것이다.)

(5) 명제의 진리조건들은 정당화되어야 한다. 

(6) 정당화는 충분한 근거들을 제시해야 한다.

(7) 충분한 근거이기 때문에 동일한 자료를 가지고 반대 결론을 도출할 수도 있는 근거여서는 아니된다. 

 

즉, 능동적 사유를 하면,

(1) 주장되는 결론으로서의 명제

(2) 그 명제의 진리조건

(3) 진리조건의 정당화

(4) 진리조건이 충족되는지 여부

라는 네 가지 산출물이 튀어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선(good)은 다원적(pluralistic)인가 아닌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논의를 한다고 해보자. 

 

이럴 경우 수동적 사유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사유한다.

 

첫째, 단순히 직감적으로 선은 일원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므로, 선은 다원적이라고 만족한다. 

둘째, 선을 일원적으로 정의하는 개념을 먼저 받아들이고 나서, 그 개념 틀에 의하면 겉으로 보기에 다원적인 선은 하나의 선으로 환원된다는 점을 확인하고서는 만족한다.

 

셋째,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무어의 "열린 물음 논증"과 같은, 이미 제시된 이론들을 이해하고 기억한다. 

 

(열린 물음 논증은, 일원적인 가치를 제시하였을 때, 여전히 그것은 '선'에 대한 완전한 해명이 아니라는 느낌이 드는 물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쾌락이 유일한 선이다."라고 했을 때에도, "X는 쾌락적이다. X는 선한가?"라고 묻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열린 물음 논증은 우리가 반례를 생각할 수 없는 설득력 있는 '선'의 일원적 가치를 제시할 책임을 일원주의자에게 지우는 입증책임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권위 있는 저자가 은근슬쩍 독단을 제시하면, 그것을 그냥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마이클 샌델이 선은 효용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책에 쓰면 그것을 기억하고는 마이클 샌델이 그렇게 말했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반면에, 능동적 사유를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사유가 진행된다.  

 

첫째,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라면, 자신의 직감적 해답에서 만족하고 머무르지 않는다.

 

둘째, 결론을 미리 선취하는 개념 정의에 의해 문제를 풀었다고 만족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선이란 사람이 원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란 욕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이란 욕구의 만족으로 정의되는 효용이다.)

 

둘째, 이미 제시된 논증에 대해서도 천천히 생각하면서 다시 뜯어본다.

 

(이를테면 무어의 열린 물음 논증의 성격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것이 일종의 입증책임 규칙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사고가 전개된다. 여느 입증책임 규칙이 다 그러하듯이, 이것은 개연적인 논거이지 결정적인 논거는 아니다. 예를 들어 일원적 가치로 제시된 것이 정말로 유일한 가치이기는 하지만, 한참 동안 숙고해보고 추론해보아야지 도달하는 결론이어서, 처음부터 자명하다는 느낌은 주지 않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잡한 수식을 제시하고는, 그것을 몇페이지에 걸친 계산을 통해 단순한 수식으로 바꾸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 "복잡한 수식에서 x값은 3이다. 단순한 수식에서도 그러한가?"라는 물음은 열린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복잡한 수식이 단순한 수식과 같다는 점을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계산과 추론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사유를 위해 일원주의나 다원주의 어느 한 쪽을 잠정적인 출발점으로 삼는다. 즉, 불확정적인 상태로 멍하니 막연하게 사유를 진행하지 않는다.

 

넷째, 그렇게 출발점으로 삼은 어느 한 쪽을 정당화하는 논거와 타당성을 부인하는 중요 논거들을 살펴본다.

 

다섯째, 탐구한 것을 바탕으로, 선이 일원적이라고 할 수 있기 위한 진리 조건, 또는 선이 다원적이라고 할 수 있기 위한 진리 조건을 명제화한다.

 

여섯째, 진리 조건의 각 요건을 정당화한다.

 

일곱째, 진리 조건이 충족되는지를, 실제 사례들을 가지고 생각해본다.

 

여덟째, 각 사례들의 결론을 일반화할 수 있는 명제를 구성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능동적 사유를 하는 탐구자는, 선학자를 함부로 무시하지도, 선학자가 제시한 경로를 무작정 따라가지도 않는다. 또한, 선학자가 설명한 세세한 세부사항에 눈을 뺏겨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는 일도 없다.

 

능동적 사유자에게는 선학자가 책에 적어 놓은 모든 것이 다 똑같이 중요하지 않다.

 

(1) 지금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쟁점에 대하여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논거가 제시된 논증만을 뽑아낸다. 그리하여 그것을 명제 형태로 요약한다. 그리고 그 요약된 논증이 건전한 것인지 살핀다.

(2) 선학자가 개발하거나 발견한 것들을 이 문제를 푸는 데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선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적용한 맥락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그 활용 범위를 그 도구의 성격이 허락하는 한 이리저리 확장하고 돌려본다.

 

이러한 능동적 사유의 틀을 먼저 알려줘야, 능동적 사유를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제한적이고 무정형적인 발산적 사고만 할 뿐이다.

 

능동적 사유의 틀을 익히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능동적 사유를 통해 새롭게 기여한 바를 그 과정을 다시 함께 추체험하여 가는 것이다. 본인 스스로 기여한 바가 없다면, 다른 선학자가 기여한 과정을 재구성하여 함께 추체험하여야 한다. 어느 경우나 모범을,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능동적 사유를 촉구하는 것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끝>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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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민
    2015.04.04 16: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변호사님은 교수를 하셨어야 하는건데 왜 변호사가 됬나요?
    • 이한
      2015.04.04 19:48
      댓글 주소 수정/삭제
      특히 법학에서는, 변호사의 작업과 교수의 작업은 거리가 그렇게 먼 것은 아닙니다.
  2. 2015.04.22 20: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글과 상관은 없지만,질문드립니다.
    왜 판결문같은거 쓸때 만연체 문장으로 쓰죠?사회과학은 만연체문장을 피해야한다고 대학때 배운거 같은데,판례읽어보니 너무 장황하고 논리구조를 파악하기힘드네요..
    • 이한
      2015.04.2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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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한 문장 안에 판결내용을 담는 것이 관습인적이 있었습니다. 예전 판결문일수록 아마 그런 경향이 강할 것입니다. 판결문 간소화 정책이 시행되고 난 뒤 최근 하급심 판결들은 그렇지 않고, 차차 변해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판결문을 읽을 때에는 무엇이 사실관계의 설명인지, 사실관계의 쟁점인지, 법리적 쟁점인고 그 결론이 어디에 가 있는지 파악하면서 읽으면 한결 낫습니다.
  3. 김태희
    2015.04.24 15:3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법조인은 아니지만 교양 수업 때 법학 교수님께 물어보니 비판을 받을 걸 대비해서 일부러 읽기 어렵게 쓴다더군요. 논증의 핵심 구조를 고의적으로 숨긴다고...
  4. ㅇㅇ
    2021.04.0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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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전체가 명제의 예시라 할 수 있는 훌륭한 글이네요. 이런걸 학생 시절 논술수업으로 미리 접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감상이 들 정도입니다. 제 자식만이라도 늦지않게 해주고 싶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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