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2015. 2. 26. 2009헌바17 등 결정은 간통죄를 위헌으로 선언하였다. 법정의견인 위헌의견 중 다수의견의 논거를 간통 처벌을 규정한 형법(1953. 9. 18. 법률 제293호로 제정된 것) 241조가 합헌이라는 반대의견의 논거와 대비함으써, 위헌의견의 형량에서 결정적 논거가 무엇인지 효과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므로 다소 자세한 분석을 개진하겠다.

먼저 부수적인 쟁점에서 반대의견이 제시한 논거들은 자유권적 기본권을 제한하는 적합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간통죄 규정의 합헌을 주장한 반대의견은 우선, “배우자 있는 자의 간통은 혼인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선택하는 자기결단을 한 자가 혼인에서 비롯된 성에 대한 성실의무를 위배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점을 알면서 상간하는 것은 사회적법적 제도로서의 혼인을 보호하는 공동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행위까지 성적자기결정권의 보호영역으로 포섭하는 다수의견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성이 서로 사랑하고 정교관계를 맺는 것은 자기결정권의 보호영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간통 및 상간 행위는 자신만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인격체나 공동체의 법익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성적자기결정권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하여 잠정적 보호영역을 설정할 때 좁은 구성요건 이론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좁은 구성요건은 기본권의 제한의 잠정적 사유가 되는 논거인 공익논거를 엉뚱한 단계에서 쓴다. 그것은 형량에서 고려되어야 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기본권의 보호영역 자체를 협소하게 정의하는데 쓰는 것이다. 이렇게 공익을 기본권 자체를 협소하게 정의하는 데 쓰는 경우 그 이후의 논증이 자의적으로 생략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좁은 구성요건 이론은 타당하지 아니하며, 헌법재판소가 통상 택하고 있는 이론도 아니다.

그리하여 위헌의견에서는 간통죄 처벌 규정이 헌법 제10조는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은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을 전제로 한다.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심판대상조항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은 개인의 성생활이라는 내밀한 사적 생활영역에서의 행위를 제한하므로 헌법 제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역시 제한한다고 하여 넓은 구성요건 이론을 택하고 난 뒤, 그 제한의 정당성을 검토하였다.

, 반대의견은 간통은 사회의 질서를 해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 우리의 법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여, 권리의 경계 설정 문제를, 다수의 심리 상태(metal state) 문제로 환원하는 논거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권리에 관한 심리 상태가 잘못된 헌법적 논증에 기초한 것일 경우 그것을 교정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임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논거는 타당하지 아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헌 의견 역시 간통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를 논거로 들기는 하였지만, 이것 역시 공적으로 평가 가능한 논거가 되지 못한다. ‘이제는 많이 변화하였다는 심리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필요하다는 심리 상태에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의 논거들은 양측 모두 논증 가치가 서로 상쇄될 수 있는 빈약한 지위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더 나아가 반대의견은 철학자 헤겔이 말하는 가정사회국가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공동체의 틀을 훼손할 수 있다는지적을 하면서 형벌의 제재를 동원한 행위금지를 선택한 입법자의 판단이 자의적인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공동체의 틀자체를 지키려는 공동체의 결단을 논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첫째로, 헌법적 형량은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헌법적으로 굴절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따라서 훼손을 막아야 하는 근본적인 공동체의 틀이란, 구성원들의 근본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인 것이지, 그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일부 구성원들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양태는 아니다.

둘째로, 이미 단일한 의견을 가진 공동체의 결단을 논거로 쓰는 것은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또는 다수결로 결정된 공동체의 결단을 논거로 쓰는 것도, 그 다수에 속하지 않는 구성원을 비국민으로 보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수결의 결과 자체를 심사하는 헌법재판의 성격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공동체가 결단하였다고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입법부가 결정하였다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결단의 권한이 입법부에게 있느냐를 밝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에 관하여 반대의견이 어떠한 범죄를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하는 문제국민일반의 가치관 내지 법감정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광범위한 입법재량 내지 형성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할 분야라는 것은 논거 없이 병행하는 차원의 논의를 끌어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쟁점 자체가 과연 간통죄에서 그러한 입법재량이 한계를 넘어섰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사안의 분야를 언급한 다음 입법재량이 인정되어야 할 분야라고 것은 결론을 선취해서 논거로 쓰는 것이다. 그러한 선취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기본권 주체에 대하여 실질적인 정당화를 하는 것이 기본권 논증의 과제다. 단순히 입법재량을 선언하는 것은 이 과제를 소홀히 한 것이다.

이에 더해 반대의견은 간통죄를 존치시켜야 할 추가적 논거로 이혼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약자가 더 많은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하여 고소권이 필요하다’, 이혼이 많아지면 청소년 비행이 늘어난다와 같은 것도 들고 있다. 그러나 위헌의견이 적절하게 지적하였듯이 위자료 제도는 법체계상 형사처벌 제도와는 별개로 운용되는 것이다. 유책배우자가 정말로 더 많은 금전배상을 할 객관적 필요성이 있으면 그에 따라 금전배상이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같은 별도 제도에서 인정되고 결정될 금전이 공정하지 않다고 하면, 그것을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의 의무다. 민사제도를 그대로 둔 채, 추가적으로 금전을 이전케 하기 위해 처벌을 동원하는 것이 국가의 권한이라는 것은 자유 제한의 논거로 수용될 수 없는 원리이다. 그럴 경우 어떤 행위자가 금전과 같은 자원을 얻기 위하여 타인의 자유를 탈취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소년 비행과 같이 인과적으로 수많은 요소가 개입하여 나타나는 전반적인 사회현상은, 그 중 한 원인인 간통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논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이혼 자체를 금지하거나, 실직 상태, 경제적 파산과 같이 혼인가족 생활의 영위와 유지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다른 인과적 고리에 개입되어는 요소 모두도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논거가 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여러 복합적 사정이 개입되어 이어질 수도 있는 사회현상으로서 인과관계에 대하여 범죄로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였을 때 죄가 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의 이념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 위헌의견의 반론은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경제적 약자는 오히려 고소를 꺼릴 수 있다’, ‘여성 배우자를 보호하는 기능이 많이 상실되었다는 점을 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충적인 논거는 될 수 있어도 정면으로 다루어야 하는 논거는 아니다. 반대 의견의 논거 중 가장 문제되는 부분은, 복합적인 인과관계를 통하여 나타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현상을 이유로 그 자체로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행위를 형벌로 금지할 수 있다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기능적 논거에서 드는 기능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기 이전에, 애초에 그런 기능 수행을 위해 자유 제한을 동원할 수 있는가라는 원리적 심사를 먼저 해야 했던 것이다.

이제 핵심적인 쟁점을 살펴보자. 그 쟁점은 간통죄가 간통을 억지하는 효과가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전제했을 때, 그 억지를 위해 형벌을 동원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에 관하여 반대의견은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한 행위규제는 법률혼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동안 간통할 수 없고, 법률상 배우자 있는 자라는 사실을 알면서 상간할 수 없다는 특정한 관계에서의 성행위 제한이다. 이는 간통행위자에 대하여는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형성한 혼인관계에 따르는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의 내용일 뿐이라는 근거를 추가로 제시하였다. ,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부담한 성실의무에 따라 제한된 행위를 하여 처벌받는 것이므로, 이것이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헌의견은 법익균형성 항목에서 심판대상조항은 개인의 내밀한 성생활의 영역을 형벌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라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므로, 결국 심판대상조항은 법익의 균형성도 상실하였다.”고 판시하여 이 부분을 정교하게 다루지 아니하였다.

그 앞에 서술되어 있는 형사 처벌의 적정성 여부라는 항목에서 서술된 설시 개인의 성행위와 같은 사생활의 내밀영역에 속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그 권리와 자유의 성질상 국가는 최대한 간섭과 규제를 자제하여 개인의 자기결정권에 맡겨야 한다. 국가형벌권의 행사는 중대한 법익에 대한 위험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최후의 수단으로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그쳐야 한다.” 부분 역시 만족스럽지 못하다. “최대한 () 자제”, “중대한 법익”, “위험이 명백”, “최후의 수단”, “필요 최소한의 범위라는 비중 은유들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이다. 논증이 그와 같은 비중 은유를 종착지로 하여 머물러 있게 되면, 반대 의견과 같은 입장을 개진하는 측에서는 간통죄가 규정이 바로 자제를 거듭한 후에도 정당화되는 것이며, “최후의 수단이자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 속한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다. 이로써 표면적 논증 가치는 상쇄되고 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핵심쟁점에 관하여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의 차이는 공익의 중요성 여부나 기능적 효과성에 관한 판단, 그리고 관련된 법익들의 경중을 심리적으로 가늠한 판단의 차이,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심원한 가치에 대한 재판관 개개인의 근원적 결단의 차이로 소급되어야 하는 숙명에 처하는 것은 아니다. 과잉금지원칙의 정교한 이해와 구성에 따르면, 이 쟁점은 공적으로 논증을 표현할 수 있는 원리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원리란 "모든 기본권 주체의 일정한 자유는 다른 기본권 주체의 같은 유형의 자유의 행사와 온전히 양립가능한 한, 자신과 가장 밀접하게 결부된 평등한 몫의 개별적인 배경적 자유를 잠정적으로 갖는다.”는 내용이다.

모든 기본권 주체에게 가장 밀접하게 결부된 평등한 신체 자유 몫은, 자기 자신의 성적 자기결정권이지,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아니다. 종용과 유서를 하거나 하지 않는 재량을 통해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통제할 권한을 서로 교환하는 것은 덜 밀접하게 결부된 몫의 통제권을 위해 가장 밀접하게 결부된 몫의 배경적 자유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한 다른 방향으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는 권리의 행사 포기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간통죄를 통하여 기혼자 각각에게 부여되는 덜 밀접하게 결부된 몫의 통제권이란, ‘상대의 동의에 의하지 아니하고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통제하는 그러한 통제권 부분이다. 상대가 애정과 신의가 있다면 계속해서 동의에 의해 상호간에 의사가 합치하는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것을 넘어서서 상대가 동의하지 아니함에도 통제할 권한은 지배권이다. 따라서 간통죄 하의 혼인계약은 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취득하는 대가로 지배받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교환을 하는 것이다. 이로써 간통죄 규정이 있는 법질서에서 기혼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다음과 같이 기술된다.

“a는 스스로의 법률행위에 의하여, 성적자기결정권의 자유를 갖지 않는다. a가 이제는 보유하지 않는 그 자유를 행사하는 경우 a는 국가에 의하여 처벌받는다. 대신 af에 관한 행위는 b가 통제한다.”

그리고 이는 a의 배우자인 b에 있어서도 대칭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

이것은 성적자기결정의 자유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간통죄를 통해 국가는 그리고 그 자유권의 포기를 법적으로 유효하다고 확인하고, 그 포기가 관철되도록 국가 형벌의 강제력을 통해 실효적으로 집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몫에 속하지 아니하고, 자기와 밀접히 관련 없는 타인에 대한 지배권을 취득하고 행사하는 데 국가가 조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의 관계를 확립하여야 하는 입헌 국가의 임무에 어긋난다.

따라서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형성한 혼인관계에 따르는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의 내용일 뿐이라는 반대의견의 논거는 배경적 권리를 행사하는 한 방식으로서 권리 행사의 포기(waiving)과 배경적 권리 자체의 포기(relinquishing)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근로계약 이행을 형벌로 강제하는 사회에서 사용자와 근로자가 2년을 기간으로 정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하였을 때, 이것을 형벌로 강제집행하는 것은 부분적 노예계약 제도를 설립하는 것이다. 근로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거나 무단결근을 하는 경우에 국가가 형벌을 행사하는 경우, 그것은 기본권 주체를 특정 사용자의 지휘명령을 받아 노동하는 것을 그만둘 자유라는 입헌적 권리를 더 이상 보유하지 않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특별한 친밀성을 기반으로 하는 혼인제도의 특수성은 이와 다르게 판단하여야 할 아무런 원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스스로 친밀성에 기하여 지속될 헌신과 사랑의 약속을 한 사람들에게,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지배권을 교환하여야 할 필요는 발생하지 않는다. 처벌의 위협에 의해 친밀성을 강제하는 제도는 오히려 헌신과 사랑을 왜곡하고 타락시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랑의 신실성은,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의 신실성과 유사하다. 만일 어떤 종교적 신념을 깊이 견지하게 되어 결코 배교하지 않으리라고 현재 생각하고 이러한 서약을 그 종교단체 주제 하의 의례를 통해 한다고 하여보자. 절대자와의 약속(또한 함께 절대자를 섬기는 사람들과의 약속)은 고유하고도 매우 특별한 친밀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이 죽을 때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되리라고 정말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신념이 변했을 때 배교계약을 위반한 죄로 자신을 감옥에 가두어 달라는 보증이 필요 없을 것이다. 같은 종교생활을 하는 타인도 그러한 보증을 위해 새롭게 서약하는 이의 배경적 자유를 박탈시키는 통제권을 획득할 필요가 없다. 정말로 친밀함과 신의를 기반으로 한 관계라면, 그 관계의 상대방을 부분적 노예상태로 빠뜨려 공형벌권의 위협을 동원해야 성립되는 신의를 기반으로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인간을 존엄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그릇으로 보는 존재로 여기는 사고에 기반한다. 친구가 우정을 깰 경우에 처벌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그래서 미래의 친구가 잠재적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게 보증해놓으면 이 특별한 관계는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다.

같이 함께 하기로 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여 이 특별한 친밀성이 유지되지 않을 위험이 있고, 그 위험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미리 생각하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서로는 언제든지 자신을 제어하고 상대방에 억지 효과를 갖기에 적정한 배상을 약속하는 사적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처럼 자유 의사에 기반한 다른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있기 때문에, 미래의 자신이 또는 상대방이 현재 약속한 신의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기본권 주체는 일반적인 형사처벌 제도를 마련해둘 것을 청원할 자격을 갖지 않는다.

국가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처음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경우, 친구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을 경우, 입신출세하지 못하여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잠자리에 머무르는 경우, 애인에게 신실하지 못하였을 경우 스스로 실망하게 될 미래의 자신을 공형벌권 행사로 처벌해달라는 사전 청구를 들어줌으로써 자기규율(self-discipline)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지 않는다. 자신이나 자신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약하다고 해서 그 신의를 위반한 행위 일반을 모두 처벌해달라는 청원을 국가에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통제력이 약하다는 자기 취약성을 이유로 자기의 몫에 속하지 않는 모든 시민들의 자유를 일괄적으로 같이 제한하여 달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자기 몫이 아닌 권리까지 함께 처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계획과 약속을 통하여, 자신이 지금 바라지 아니하는 행위를 했을 때의 페널티를 충분히 강하도록 스스로 설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굳이 취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까지 처분하고 타인의 신체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코자 하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자기매몰적인 관점에 불과하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신뢰의 부족, 미래의 자기 자아를 규율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자유와 인신까지도 일괄적으로 함께 구속하고자 하는 의지인 것이다.

이러한 취지는 형사처벌의 적정성 항목에서 다수의견이 비록 비도덕적인 행위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크지 않거나 구체적 법익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대 형법의 추세이다.”라고 한 바에서 표현되었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악”(harm), “구체적 법익”(concrete legal interest)이라는 개념들이다.

해악과 구체적 법익은 단순히 불리한 영향(adverse effect)나 추상적인 법익(abstract legal interest)와 대조된다. 이 개념들은 다른 이의 자유를 축소하고 제약한다는 문제만이, 자유 제한을 정당화하는 논거로 적합하다고 인정하는 거름틀 역할을 한다.

동 결정이 천명하는 헌법규범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사람들은 잠정적으로 동등하게 가장 자신과 밀접하게 결부된 자유들을 보유하는 데서 자유권 제한의 헌법 논증은 출발한다. 둘째, 따라서 그러한 자유들은 제약되어 있는 상태에 원래부터 있다고 선언되어서는 안된다. 셋째, 어떤 자유 행사가 다른 자유를 제약하거나 수축시킨다는 논거가 아니라면, 즉 해악이나 구체적 법익을 침해한다는 논거가 아니라면, 불리한 영향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 가능성의 증대만으로 기본적 자유가 제한되지 못한다. 넷째, 지배권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지배와 예속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유의 전체계가 악화된 것이다. 다섯째, 별개의 제도를 수정하지 않으면서 형사 제도로 그 효과를 고치려고 하는 것은 적합한 논거가 아니다.

동 결정의 법정의견 중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사이에 오고 간 논증을 헌법규범 원리에 의해 해명하고 나면 이 판례를 오로지 간통죄 사안에만 국한된 판례로 이해하지 않게 된다. , 단순히 시대가 변해서 재판관들이 자기 마음 속의 저울이나 심원한 가치 판단을 통해 결정하고 말았다는, 사법심사의 정당성을 침식하는 이해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결정에서 천명된 헌법규범을 정합성 있게 다른 사안에 적용할 논증의 가능성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그 계약대로 노무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형벌로 처벌하는 현재의 업무방해죄 규정의 위헌성에 대하여 재고해보도록 하는 것이다. <>

Posted by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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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기오소리
    2015.06.28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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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읽으면, 간통죄가 상당히 불합리한 법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애초에 왜 그런 법이 있었던 걸까요? 다른 선진국은 없다는데, 우리나라 법 다른 나라 법 많이 참고하여 만들었다 들었는데.... 참고할땐 옛날에도 간통죄가 있었던건가요? 우리나라의 창의적(?) 발상이었던걸까요?

    간통죄란 결혼식날 이런 서약을 하는 것과 같다는 걸 알았어요."네가 만약 나와의 약속을 어긴다면, 국가의 힘을 빌어 너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오늘부터 나는 가짐을 선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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