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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20.10.2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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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4장 출산 권리를 다루는 부분에서 베너타는 국가가 개별 사람들 동의없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피임약을 식수에 섞거나 공기에 살포하는 행위는 그 구성원의 자율성을 침해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자율성 침해는 사람이 존재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거대한 해악을 막기 위해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요. 교수님께서도 이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2. 솔로몬의지혜
    2020.09.16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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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바꾸는 탐구 습관 잘 읽었습니다
    습관의 힘이 중요합니다.
    정말 시간을 귀하게 사용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 bac
    2020.09.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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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필예정이라고 하신 책들 중에,

    8. 오도된 법개념 이해의 탈학습과 법률가를 위한 법논증법

    위와 관련한 책은 언제쯤 출간예정이신가요
    • 2020.09.11 17:2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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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목적에 일부 기여하는 역할을 할 책 중 하나가 내년 2월에 <헌법논증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4. 교회
    2020.09.06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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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면 예배는 성경에 없기 때문에 전염병이 만연해도 반드시 대면 예배를 보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삶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인 종교생활이 무너진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현대 자유주의에서는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 2020.09.08 17:2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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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의 조정 문제이며, 해당 문제는 <기본권 제한 심사의 법익 형량>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5. 권도간
    2020.09.0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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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무론과 결과론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집필할 생각이 있으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언제쯤 나올까해서 문의드립니다.ㅎㅎ
  6. 질문돌이
    2020.08.06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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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교수님에게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교수님은 종교를 믿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종교를 믿어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왜냐면, 종교는 언제나 자신의 종교가 완벽하다는 전제 하에서 자신의 종교를 믿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근데 사실 모든 종교가 다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완전하지 않은 것을 완전하다고 믿는 것이 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의 많은 전쟁과 폭력이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걸 보면, 종교라는 것의 불완전성을 우리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종교를 믿는 것이 종교로 인한 전쟁, 폭력에 어느정도 기여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죄책감이 제 안에서 발생합니다. 그냥 종교를 안 믿으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서 자꾸 종교를 믿고 있는지,, 제 자신이 한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생각은 굉장히 야박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종교를 믿게 되는 건 이 종교가 진실인지 따져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위로 받고 싶어서 믿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위로받고 싶은 인간의 특징을 생각하면, 종교를 믿는 것 쯤은 허락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 생각이 충돌하는데,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여쭙고 싶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2020.08.08 16: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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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믿지 않음은 명제의 참, 거짓 즉 세계에서 성립하는 것이나 규범으로서 타당한 것에 관한 것으로서, 오롯이 유관한 인식적 이유에 기초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유관한 인식적 이유 때문에 어떤 것을 믿는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으나, 인식의 구조는 이를 포착할 수 없게끔 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어떤 것을 믿고 믿지 않고를 결정할 기초가 무엇인지, 그리고 적합한 기초를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서는 <인생을 바꾸는 탐구습관>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질문하신 문제에 대해서도 제시된 일반적 해명을 자신의 오성을 활용하여 적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 2020.08.0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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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 답변 감사합니다!! 답변을 한 번 만들어봐야 겠습니다 ㅎㅎ
  7. 권도간
    2020.07.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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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 밀과 하트의 경우 공리주의자이면서 자유주의자라고 하셨습니다. 변호사님의 '가치와 규범의 구별과 기본권 문제의 해결' 논문을 보면(물론, 저한테는 어려워서 앞부분만 봤습니다) 자유주의를 가치에 대한 이론이 아닌 규범에 대한 이론으로 봐야한다, 즉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서의 지위가 훼손되지 않을 규범에 의해 각인의 가치추구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공리주의자라면, 전체 효용의 증진이라는 목적을 위해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라는 지위가 훼손되지 않겠습니까? 즉, 밀이나 하트의 경우에 자유라는 가치도 전체 효용증진이라는 가치에 종속되는 가치로 본다면, 공리주의이자 자유주의자라고 보는 것보다는 공리주의자라고 보는것이 더 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 여쭤봅니다. 그 논문에서 개인주의적 완전주의와 자유주의는 차원을 달리하므로 양립가능하지만, 여기서 공리주의와 자유주의는 충돌이 일어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입니다.
    • 2020.07.15 21:3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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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하신 내용은 용어법의 쟁점과 실질적 쟁점이 혼융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분리할 수 있는 한, 용어법을 어떻게 쓰는가는 논자가 고정하기 나름이라고 봅니다.
      용어법1: 의무론적 자유주의만을 자유주의라 칭하고, 그 이외의 모든 이념은 자유주의라 칭하지 않음.
      용어법2: 동등하고 양립가능한 자유의 전체계로부터 나오는 자유권을 다른 이익에 우선시하는 일련의 사상 사조.

      용어법1에 의하면 공리주의는 자유주의에 속하지 않을 것입니다.
      용어법 2에 의하면 공리주의자라 할지라도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경우에는 자유주의에 속할 것입니다. 아마도 허버트 하트의 경우에도 여기에 속할 것입니다. 파인버그도 명시적으로 의무론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자유주의에 속할 것입니다. 근대 형법의 주요 원칙을 만들어낸 베카리아도 자유주의에 속할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상사에서 위에서 언급한 사상가들은 자유주의자들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논자가 고정한 특수한 맥락이 아니고서는 일반적으로는 용어법2가 적절할 것입니다.

      이와 다른 용어법을 쓸 수 있는 논의의 맥락이란, 자유주의의 이론적 기초로서 무엇이 궁극적으로 타당한지를 따지는 맥락입니다.

      그러한 이론적 기초를 따지는 작업이 실질적 쟁점에 관한 작업이라 할 것입니다.

  8. 2020.07.07 23:4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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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조적 이해와 실체적 이해에 대한 구분은 의무론/목적론 구분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목적론 중에서 엄격한 규칙 목적론의 형태를 취하는 이론들은 구조적 이해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구조적 이해란, 권리체계가 각 권리 보유자들에게 어떤 역할과 통제권, 재량을 할당했다고 보는 이해입니다. 그러므로 권리를 보유한다 함은 어떤 양과 질의 실체적 좋음을 누리도록 잠정적으로 보장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범위의 이유가 아니고서는 간섭될 수 없는 역할과 통제권, 재량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영업의 자유권을 보장받았다는 것은 그 영업을 잘하든 못하든 탁월한 경쟁자가 나타나든 나타나지 않든 천년만년 그 영업에서 최근 나오던 소득을 계속 올릴 수 있는 이득을 보장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의 탁월함으로 인해 사업이 무너지는 것은 그 역할과 통제권, 재량에 전혀 어긋나지 않지만, 그 영업 내용이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신조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폐업시시키는 등의 간섭에 의해서는 할당받는 통제권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지위를 보장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나 <자유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목적론자들 중 일부는 어떤 규칙들은 아주 특별한 예외가 아니고서는 일반적으로 준수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을 최선으로 달성하게 해준다는 이론을 개진합니다. 이런 규칙 공리주의는 실체적 이해보다는 구조적 이해에 더 부합합니다. 의무론적 규칙의 존중을 주창하는 현대의 유명한 규칙 결과주의자로는 Hooker가 있습니다. 또한 H.L.A. Hart 역시 공리주의자이면서도 자유의 규칙을 지지하는 자유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목적론이 특별한 예외를 얼마나 느슨하게 보는가에 따라 실체적 이해에 위험할 정도로 가깝게 갈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9. 권도간
    2020.07.0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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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권 제한 심사의 법입형량" 42-43쪽에 권리를 이해하는 두가지 방식, 즉 구조적 이해와 실체적 이해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정치철학에서 여러 학파를 크게 권리론진영(의무론 진영)과 공리주의 진영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위의 구조적 이해에 따르면 권리를 '더 많은 전체적 선의 산출이라는 이유'로 제한을 하는 경우도 권리론자라고 할 수 있는지요? 아니면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의 성격에 따라 권리론자, 공리주의자로 분류되는지요? 즉, 앞의 예에서 '더 많은 전체적 선의 산출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제한했다면 그 이유의 성격으로보아 공리주의다라고 해야하는 건가요?
  10. 파란연꽃
    2020.06.17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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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전에 올리신 '감사하는 습관의 수수께끼'를 매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심리학의 성급한 일반화와 조작적 정의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교수님이 연구하시는 규범윤리학과 정치철학에서도 최근에 심리학이 내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의 영역에서 도덕철학이 경직된 당위만을 내세우고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를 결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도덕심리학자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의 저서 옳고 그름을 인용하자면『 도덕심리학은 이따금 도덕철학의 추상적 영역에 끼어드는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덕철학이 도덕심리학의 표현이다. 도덕철학은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깊은 심리적이고 생물학적인 빙산의 지적인 귀퉁이일 뿐이다. p.492』결국 인간이라는 주체가 작동하는 원리와 선험적인 조건을 간과한 채로 당위적인 윤리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찍이 맹자가 항산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항심을 갖추기 어렵다는 말처럼 규범 윤리학은 인간 조건을 도외시한 채로 항심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 2020.06.17 13:27 신고
      수정/삭제
      1. 심리학의 실험방법론과 조작적 정의에 대한 비판의 함의는 글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경험적 연구는 경험적 연구방법에 따라 수행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일 어떤 사회학자가 법이라는 것을 그 사회의 공직자들 대다수가 정규적으로 따르는 규칙이라는 의미로 조작적으로 정의하고 그러한 법이 성립, 와해, 약화되는 여건에 대하여 연구한다면, 그 연구는 그 자체로 유의미합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이 그러한 기술적 학문에서 통용되는 법의 정의를 가져와서 참여자로서의 법해석에 사용할 때 발생합니다. 해당 글은 감사의 태도를 1인칭 관점에서 윤리적으로 어떻게 해명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의 논의로서, 심리학의 성급한 일반화라는 단어는 언급되지도 않았습니다.

      2. 규범윤리학이 인간 조건을 도외시한다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전체 학문을 꿰뚫어 통찰하는 듯한 인상비평입니다. 데이비드 흄은 도덕 심리학과 도덕이론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 학자입니다. 이러한 흄의 논의를 일부 받아들여 존 롤즈는 적절한 부족상태(온건한 희소성)이나 심층적으로 갈등하는 다원주의의 사실을 정의의 여건으로 포함시켰습니다. 존 롤즈의 정의의 원칙은 이런 여러가지 현실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성립하는 제약들을 구축해 넣은 원초적 입장에서 구성된 것입니다. 또한 존 롤즈는 안정성의 테스트를 통하여 질서정연한 사회의 시민들이 공지된 정의의 원칙을 이해하고 실천할수록, 그 정의의 원칙을 준수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화되고 그 원칙에서 이탈하고자 하는 성향은 진압되는가 여부를 따졌습니다. 이에 반해 공리주의 원칙은 전체 총 공리에 기여분이 적은 개인은 추상적인 전체 총 공리를 최대화하기 위해 평생을 희생할 것을 감수하여야 하므로, 이는 분개의 감정이나 그렇지 않아도 소외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롤즈의 이론은 단지 사람들이 어떤 규범을 따르기 싫어한다는 관찰에서 그 규범은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닙니다. 도덕 심리학의 사실들이 규범 이론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적절한 자리에서 적합한 방식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규범을 그저 따르기 싫어한다는 자기 관찰로부터 그 규범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그 어떤 범죄자라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라고 느껴집니다'라고 하는 한 번에 꿰뚫는 듯한 인상비평에서 출발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한 접근입니다. 풀 가치 있는 문제를 설정하고 탐구에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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