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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유일까
    2019.12.03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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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법 질서는 자유의지에 기반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자유의지라는 게 행위자 입장에서 강제로 부여("악인은 악을 원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원한 적이 없다.")되고 자극에 따라 일정 범위 안에서 반응하도록 특성이 결정된 일종의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인식되더라도 책임과 질서를 위해 현행 상태가 수정 없이 유지되는 게 옳을까요? 그리고 개인의 인생 내면을 다 들여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의지가 사건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판단하는 게 정말 옳은 걸까요? 이에 대해서 '법에서 다루는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이에 기반한 질서가 옳음을 뒷받침해줄 현대의 책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이런 류의 생각을 많이 접해보셨을 선생님 눈에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사정상 마땅히 물어볼 곳이 없네요. 단순 충고도 좋습니다.
    • 2019.12.03 22:3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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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에서의 자유의지의 문제 이전에 도덕에서의 자유의지의 문제가 선행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목적론적인 비난과 제재의 시스템을 수용할 때에는 자유의지 문제는 아무런 난점을 제기하지 않으며, 목적론적인 방향으로 형사정책의 개혁을 추동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샘 해리스와 같은 결정론적 공리주의자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보면서 자유의지가 없어도 범죄 억지와 관련된 효용 최대화를 위해 처벌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면 처벌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목적론에서는 형사사법체계에서 응보는 물론 관계회복이라는 개념도 없으므로, 이후에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알약 하나만 먹으면 범죄성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 알약 하나만 먹이면 되지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목적론에는 처벌 시에 준수해야 할 의무론적 제약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의무론에서는 처벌은 처벌되는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아니할 수 있었을 때, 즉 그 행위와 관련하여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만 정당하다는 준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의지가 없고, 만일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이 의무론의 준칙에서 말하는 통제력의 결여를 의미한다면, 자유의지의 문제는 현행 형사사법체계에 많은 차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해서 의무론자의 해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 전략은 결정론이 참일 때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통제력과, 법에서 말하는 행위자의 통제력이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 입장을 취하는 대표적인 논자가 다니엘 데닛입니다. (<자유는 진화한다> 참조) 두 번째 전략은 제재의 제일 준칙을, 공적 기능에서 찾는 것입니다. 즉 제재를 정당화하는 것은 범죄로 가해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가해자의 범죄 행위로 인해 왜곡되었음을 공적으로 확인하고 이 관계가 마땅히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관계여야 한다는 점을 공표하는 공적 기능이라고 봅니다. 이와 관련해서 Mathew Talbert의 <Moral Responsibility>와 R. J. Wallace의 <Responsibility and MoralSentiments>를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든 전략에 대하여 분명한 반대 의견을 제시한 책으로는 Bruce N. Waller의 <Against Moral Responsibility>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Waller의 문제의식에 답하 수 있어야 의무론자가 이 문제에 대하여 제대로 된 해결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며, 잘못 논의하였다가는 개념을 조작함으로써 문제를 회피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의무론자의 두 전략에 동조적입니다만, 위의 논자들이 문제를 제대로 풀었는지 여부는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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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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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안내해주신 대로 더 살펴보겠지만 지금 해주신 간략한 설명만으로도 역시 그런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제시되던 부분이 상당히 해소됐습니다.
  2. 우륵
    2019.11.26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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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예전에 읽었던 번역발췌 글 중에 평등에 관한 글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평등이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굉장히 다양하며(결과적 평등, 기회제공의 평등 등), 평등에 대해 상충하는 입장간의 합의가 없는 이상 평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그런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혹시 아직 그 글이 남아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 출간되어서 삭제된 것 이라면 그 책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탐구자2
      2019.11.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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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췌번역] 이언 카터, "존중과 평등의 기반"
      학습자료/외국문헌소개
    • 우륵
      2019.11.29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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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선생님!
  3. 학생
    2019.11.1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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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안녕하세요.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인문학 전공자로서 선생님의 페이지를 꾸준히 방문하며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최근 법학전문대학원 입시를 치루었는데, 1차에서 탈락을 하였네요.
    평가 항목들을 합격자들과 비교해보니, 시험성적이나 활동내역 면에서 별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지라, 아무래도 자기소개서가 부족하였던 것 같습니다.
    자기소개서에 대한 평가는 공개가 되지 않으므로, 제 부족한 점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다른 학생들의 자기소개서와 비교해보니, 다른 학생들은 구체적인 직업과 전문분야들을 제시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확신들도 튼튼하더군요. 사실이어서 참 존경스러운 경우도 있고, 완전히 거짓말이어서 씁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단순히 시민적 연대의 보람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을 보이고, 우리 사회 규범성의 진전을 원하는 것에 대한 문헌공부와 자기탐구 결과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였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짧은 반항심으로는, 법학을 배워보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진로를 계획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만, 올해의 입시결과를 자기 발전의 결과로 삼고자 이렇게 질문을 올립니다.

    1. 법학 공부 이전에 구체적인 직업적 진로계획의 설정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필요하다면 어떻게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지요. 지어내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은 도무지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어서 여쭙는 질문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로서는 (함부로 말하기는 저어됩니다만) 회의적인 구석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 여쭙니다.

    2. 이와는 별개로 실제 법조인으로서 자기의 분야를 설정한다고 할 때, 유의미한 실천이 가능한데도 인력이 부족하거나 연대가 시급한 분야가 있다면 어떤 분야가 있을지요? 현실과의 접점이 뉴스와 동네 봉사 정도 밖에 없는 대학생인지라, 다소 이렇게 뜬구름잡는 것일 수 있는 질문을 드립니다.
    • 2019.11.15 12: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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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저는 로스쿨에 지원 경험도 없고 로스쿨 학생 선발 절차에 참여한 적이 없어 유용한 조언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질문자께서 하신 이유 분석이 타당한지도 저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1. 저는 필요치 않다고 보는 편입니다. 이미 법률가로서 살겠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진로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람에 따라 그 이후의 세부 진로계획 설정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의미는 없는 것이, 진로계획은 이후에 바뀔 가능성이 많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로계획은 자신이 그 길로 가겠다는 어떤 지어낸 확신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언급할 것이 아니라, 법률가의 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아보고 나서 로스쿨 진로를 결정하였다는 점, 그리고 알아보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자신이 이런저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는 점을 드러내는 의미에서 언급할 대상이라고 생각됩니다.
      보통 어느 조직이든 선발절차에서는 후보자가 그 조직의 세부사항 모두를 알고 있을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지원할 분야에 대해서 자신의 기질과 능력이 맞고 여러 직업 중에서도 특히 자신에게 부합하며 자신이 그 직업활동으로 그 직업이 복무하는 가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는 어느 정도 조사가 되었다는 점을 어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기업에 지원한 사람은 A기업에서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A 기업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단지 A 기업이 자신의 마음에 든다 A 기업 제품을 좋아한다, A 기업에 지원하는 다른 사람의 학점만큼은 된다는 점을 어필 할 것이 아니라, A 기업에 들어가서 이런 일을 하면 A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점 정도는 어필을 하는 것을 아마 기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선발절차에서 후보자는 자신이 이미 그 조직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조직에서 어떤 기여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입장에서 지원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로스쿨 뿐만 아니라 모든 질적 선발절차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 의뢰인들이 돈이 없는 분야거나, 돈과 상관 없이 수인의 딜레마 때문에 돈을 내지 못하는 분야는 다른 분야보다 아마도 법률가의 기여가 상대적으로 더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법률가도 살아가지 못하므로, 돈이 없는 분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후원조직을 만들거나 후원조직에 들어가서 단체로 함께 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우에는 그렇게 단체를 결성하여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함께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이것이 법률가에게 필요한 독립적인 정신과 상충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법률가의 일은 분야에 의해서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대한 어떤 접근을 하느냐, 어떤 위험들을 주의하고 어떻게 자기 생활의 지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위험들을 경계하며 법의 정신에 기여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언급하는 특정 분야에 대한 즉석에서 만들어낸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법률가의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를 해가는 와중에 자신에게 자라나는 관심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필요합니다.

      3. 이 모든 조언은 선발절차에서 후보가 된 이의 효과적인 전략과 무관함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이 전략을 저는 알려드릴 수 있는 위치에 없음을 서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단지 어떤 직업경력을 대함에 있어 취할 자세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 학생
      2019.11.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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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보완하기가 까다롭다고 생각된 대목이었는데, 뜯어서 가능한 일들부터 해보아야겠습니다.
  4. 마테차돌이
    2019.11.0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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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혹시 똥파리라는 영화 보셨는지요. 그 영화를 봤는데 그냥 선생님이 그 영화를 보고 리뷰를 남겨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글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시민교육센터에서 선생님의 영화,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이야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이 그 자체로 즐기는 문화, 유흥거리는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러가지 작품에 대한 리뷰나 평론 같은 걸 보고 싶기도 합니다.

    2. 선생님, 여기까지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한 헛소리? 였습니다.

    선생님의 삶은 왜 의미있는가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말하고 탐구하고 후원함으로써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는 내용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말하기라는 것의 무용함입니다. 언어의 무용함을 느낍니다. 저는 삶이 정치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의도를 곡해하고, 주어진 자원을 이용해서 자기 자신의 위치나 명예를 보호하고.. 이런 부정적인 발화들만 난무하는 곳에서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무용한지를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기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창작하기 입니다. 제가 창작하기를 제시하는 이유는, 현대 정치가 프레임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을 창작하는 것, 자기 자신이나 어떤 집단의 목표나 욕망을 위해서 어떤 팩트를 수집할 것인가의 기준이 되어주는 프레임을 창작하는 것. 이것이 말하기의 대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프레임을 창작하는 행위는 도덕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어떤 정치적인 대의를 위해서 그것이 선이 될 수도, 가치로운 활동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치적인 대의라는 건, 특정 세력의 정치적인 대의이므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 특정 세력의 대의라는 것도 비슷한 경험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공유하는 바가 있는 세력이기 때문에 독단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객관적일 수도 있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삶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같습니다. 말하기라는 건 아주 무용한 것이고, 말하기라는 걸 담을 수 있는 어떤 조직을 창작하는 것, 말의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프레임을 창작하는 것. 이런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요즘은 말이 너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아 그리고 이런 면 말고, 아주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창작도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이 이제는 말하기를 대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이제 친구의 위로보다 음악에서 더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어떤 이미지와 음악적 심상으로 표현할 때 더 큰 마음의 안정을 받습니다.

    이런 것의 예가 될 수 있는 게, 저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어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기, 그리고 듣기에 지친 세대가 만든, 새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은 말하기라는 것의 무용함을 나타내주는 전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기에 질린 요즘 세대에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 어플은 어떤 플랫폼이나 프레임을 창작하면 그 안에서 우리가 소통을 한다는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하기보다 그 내용을 담을 그릇을 창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의 예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모두가 가진 스마트폰, 1인 1카메라 시대에 사진은 자신을 더 효율적으로 말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고, 인스타그램은 그걸 이용해 말하기의 무용함과 그것에 따른 부재를 잘 대체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창작하기라는 말의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제 주장을 읽어보면, 창작하기보다 표현하기라는 말이 더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표현을 담는 그릇이 중요하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창작이 중요한 이유는, 표현 그 자체보다 자기 자신의 표현을 담을 그릇을 창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듣기 싫은 말도 좋은 멜로디를 얹으면 듣기 좋은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창작하기, 탐구하기, 후원하기 이 3가지로 속물사회의 어떤 부조리랄까요, 그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부족한 질문에 답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19.11.12 18: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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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런 리뷰도 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는 까닭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므로, 그리 기대를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2. 배경적 가치는 소극적 책임(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책임)과 적극적 책임(권리 체계 강화와 유지의 자기 몫을 할 책임)의 이행에 있습니다. 이 중 적극적 책임은 노동분업의 원리에 따라 하되, 그 중에서도 누구나 할 필요가 있으며 할 수 있는 일로 탐구하기, 말하기, 후원하기를 들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소홀히 취급 받고 있는 것이 탐구하기입니다. 왜냐하면 탐구가 잘못되면 나머지 활동은 완전히 잘못된 방향에 투여된 노력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오염되고 오해되는 문제에 대한 정면 대응은 그 언어를 바로 잡고 논증을 더 많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창작은 말하기의 한 방법으로, 기질과 여건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내용적 가치와 배경적 가치가 있는 일일 것입니다.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에서 창작이 다른 사람의 고통과 서사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러나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가 드러내지 않은 위험도 유의해야 합니다. 창작은 보편적 권리의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주관적인 피해의 감각을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정당한 이유로 보이게끔 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악마화하는 설득력 있는 서사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모든 강경한 정치적 신조의 곁에는 그 신조에 맞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상을 아주 쏙쏙 들어오게 그려내는 풍부한 창작의 문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작은 의미 있지만, 그 창작을 통해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임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탐구 작업이 병행될 때에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 마테차돌이
      2019.11.17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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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 감사합니다. 선생님!
      탐구하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김도형
    2019.09.2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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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삶은 왜 의미있는가 라는 책을 읽고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려고 했던 이유는 제가 요즘 삶이 너무 무기력하고, 허무하기도 해서입니다. 힘든 일이 여러가지가 한꺼번에 오고, 해결책은 보이지도 않고.. 이런 게 몇 번 반복되니 그냥 허무하고 아무것도 하기싫고 무기력해지네요. 그래서 이 책을 읽어서 삶의 의미를 느끼려고 했는데.. 책 내용이 너무 어렵네요 ㅠㅠ 문제를 해결하고자 이 책을 집었는데.. 책 내용이 전체적으로 저에게는 너무 버겁네요 ㅠㅠ 뭘 찝어서 어렵다고 얘기를 못할 정도로 다 어렵네요 ㅠㅠ 혹시 무기력함이나 허무함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나 글 같은 걸 더 추천해주실 수 있나요? 이왕이면 너무 어렵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서요 ㅠㅠ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정복해나가고 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ㅠㅠ
    • 이한
      2019.09.28 00:48
      수정/삭제
      <필링 굿>이라는 책을 먼저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 김도형
      2019.09.28 19:55
      수정/삭제
      선생님,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선생님 글 중에 생활이야기, 조립물 색인이 붙어있는 글 몇 개를 읽어봤습니다. 몇 개 글들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써주시고 무료로 읽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6. 허당학생
    2019.08.18 22:03
    수정/삭제 댓글
    안녕하세요? 에릭 올린 라이트의 『리얼 유토피아』, 권화현 옮김, 들녘 2012, 44-51쪽을 읽다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회가, 모든 이들이 번영(flourishing)할 기회를 누리게 하기 위해 모두에게 평등한 접근권을 제공하고자 할 때 맞닥뜨릴 수 있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질문을 드릴 수 있을까요?

    질문을 구체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라이트는 정의에 대한 "급진 민주평등주의적" 이해는, '사회정의'라는 다음과 같은 규범적 원칙에 근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발달하고 번성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물질적, 사회적 수단에 대해 대체로 평등한 접근권을 가질 것이다."(44쪽)

    그러한 원칙을 받아들였을 때 다음과 같은 사항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1) 즉 "번영에 "필요한 수단"은 사람들마다 다르다"(48쪽)는 것입니다. 그리고 번영을 위해 재능을 개발하는 데에 "이용될 수 있는 자원에 예산 제약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재능 개발 수단에 평등하게 접근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51쪽)입니다. 이를테면 문학을 열심히 읽고 쓰는 것을 번성하는 삶으로 생각하는 영희와 승마 등 즐기는 데에 자원이 많이 투자될 수밖에 없는 스포츠에 집중하는 것을 번성하는 삶으로 생각하는 철수가 있다고 할 때, 자원에 제약이 있는 사회에서는 철수 같은 이들에게 재능을 개발하는 데에 있어 다른 이들이 누리는 것만큼의 개발 수단을 제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2) 다른 문제로 "어떤 재능은 다른 재능보다 인간의 번영을 위한 사회적, 물질적 조건을 창조하는 데 더 많이 공헌할 것이다. 이런 종류의 재능은 다양한 인센티브를 통해 다른 종류의 재능보다 더 격려를 받아야 하는가?"(50쪽)가 책에서 제시됩니다.

    개발 비용이 큰 재능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혹은, 일견 보기에 불평등해 보이는 접근권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다룬 글은 없을까요? 언젠가 우연히 읽은 것 같기도 한데, 평소에 관심을 가지던 주제가 아니어서 검색해도 결과가 마땅하지 않아 질문을 남겨 봅니다!


    • 2019.08.24 21:34 신고
      수정/삭제
      T.M.Scanlon의 <Why Does Inequality Matter>를 보시면 제기하신 질문에 대한, 스캔론이 제시한 답과 논증이 나와 있습니다.
    • 허당학생
      2019.08.25 15:29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다행히 해당 책(Why Does Inequality Matters)이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네요. 얼마 전에 서문 발췌번역 자료가 올라온 것을 확인했는데, 그것도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7. 익명의 질문자
    2019.08.08 01:40
    수정/삭제 댓글
    선생님, 제가 삶은 왜 의미있는가를 읽고 반박겸 질문을 드리고싶습니다. 가능하실까요? 가능하다고 댓글 남겨주시면 제가civiledulee@gmail.com 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8. 대학원생
    2019.07.11 22:45
    수정/삭제 댓글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글로부터 공부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얻고 있는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특히 <단순화의 기예>와 최근 올려주신 작독운향 으로부터 많은 용기를 얻고 또 실질적인 조언을 받아 매일매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득 선생님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궁금증이 들어 다시 여기에 와서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사회과학 분야는 논문의 양과 질을 모두 중시하는 실적 압박이 심한편입니다. 특히 학계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졸업하기 전에 박사과정 학생으로서 써야하는 SSCI급 논문 몇편이라든가 하는 양의 최소기준이 자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다다익선이기는 하지만요..). 국내에서 공부하며 여러가지로 많은 제약을 느끼지만, 더디지만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영어논문이 이미 유사한, 사실 그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아이디어와 세련된 방법론으로 쏟아져나오고 있는 해외 논문들을 볼때면.. 사실 논문 쓰는데 힘이 많이 빠지고 무력감이 듭니다. 학계의 변방인 한국에서 내가 이리 애써서 겨우겨우 논문을 하나 써낸들 그때는 이미 뒤쳐진 논문이겠구나, 하는 뭐 그런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합니다. 규범학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도 한국에서 공부하시는 입장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공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2019.07.15 19: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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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구를 하는 사람의 위치가 탐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i) 어떤 전폭적 지원이 없다면 구할 수 없는 고가의 실험장비가 필요하다. (ii) 어떤 전폭적 지원이 없다면 수행할 수 없는 조사의 재원이 필요하다. (iii) 어떤 종류의 자료를 얻기 위해 필수적인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iv) 문제 해결에 탁월한 기량과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의 네트워크에 들어가서 사고의 자극을 자주 받을 필요가 있다.
      (i)의 경우에는 자연과학이나 공학의 경우에 특히 문제될 것이고, (ii)나 (iii)의 경우에는 경제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대규모 자료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에 문제될 것입니다. 그리고 (iv)의 경우는 모든 학문의 경우에 마찬가지로 문제될 것입니다.
      따라서 탐구를 하는 사람은 가능하다면, (i), (ii), (iii), (iv)의 필요 충족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곳에서 탐구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필요 충족에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해서 탐구가 필연적으로 무의미한 잉여의 것이 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탐구 공동체는 그 주제와 접근 방식의 수직적 범위에서나 수평적 범위에서나 대규모의 분업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비교 우위를 가지고 있는 작업을 하면 기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비교 우위는 위치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질과 여건, 자신이 속한 네트워크에 의해서도 결정됩니다. 주위를 둘러 보면 어떤 사람은 자료의 탐색과 종합, 어떤 사람의 다른 연구자들의 작업에 대한 메타적 검토, 어떤 사람은 정리, 어떤 사람은 시스템 빌딩, 어떤 사람은 시스템 확장과 응용, 어떤 사람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재빠른 적용에 알맞은 기질들은 갖고 있습니다. 충분히 공부한 후에 자신이 어느 쪽 기질을 갖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학위논문은 그러한 기질에 맞아떨어지는 주제와 내용으로 쓰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후 학위논문을 보고 그 사람의 기질을 판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위를 받고 난 뒤에도 이런저런 주제를 백화점식으로 건드리는 것보다는 같은 종류의 역량을 계속해서 발휘하는, 연결된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 좋습니다. 이와 같이 분업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가는, 충분히 공부한 후에 파악되는 자신의 비교우위-자신이 계속해서 그와 같은 종류의 주제를 그와 같은 방법론으로 연결해서 파고들 수 있는 지점-로 결정하는 것이므로, 뭉뚱그러진 지리적 위치보다는 훨씬 중요한 사항입니다.
      또한 (iv)의 경우에는, 학회에 나가서 업데이트를 주고 받는 이상, 홀로 생각을 진득하게 많이 해야 하는 분야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형식적인 아이디어의 교환이 아닌, 논문이나 책으로 완결된 아이디어는 전세계 누구나 같은 시기에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위를 잘 둘러 보면 최소한 자기 이상의 역량을 갖고 있는 동료를 찾을 확률이 높습니다. 동료와는 배경지식이 상당부분 겹치면서도 또 일정부분은 다른 배경지식을 갖고 있을 때 아이디어 교환이 가장 생산적입니다. 따라서 위치는 무력감을 필연적으로 생성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을 전제로 하면 자신의 분야에서의 태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자신의 세부 탐구 분야의 선학자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얻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한 저는 아카데미아에 속한 전업 연구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저로서는 특정 분야의 학생의 마음가짐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드릴 수는 없을 것같습니다.
      다만 일반론으로서, 때때로 무력감은 위치에 의한 것보다는, 중심이 될 기초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기초가 부족한 경우에는 선학자나 동료 학자의 작업 속에서 개선할 부분이나 틀린 부분, 확장할 부분, 또는 자신이 독창적으로 기여할 부분을 찾아내는 중심적인 사고 역량이 없기 때문에, 표면의 새로움에 의해 다소 압도되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초라 함은 우선은, 전공분야의 방법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히 통계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 겉핥기 식으로 통계적 분석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통계학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가 있는 사람은, 어떤 새로운 분석 방법에 제시되었을 때 그 장단점을 주의깊게 가려내고, 스스로도 어떤 개선된 판본을 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철학적 사유 방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들 수 있겠습니다.
      철학적 사유 방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모든 학문에 도움이 되지만, 특히 인간의 규범과 가치, 그리고 믿음과 행위, 성향을 다루는 학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분석철학에 대한 이해는 개념을 잘못 다룸으로 인해 생기는 헛소동을 막는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읽어본 책이 없다면 존 호스퍼스의 <철학적 분석 입문>에서 시작해볼 것을 추천합니다.
  9. ㅇㅇ
    2019.07.05 22:24
    수정/삭제 댓글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선생님께서 작성하신 추천도서목록 pdf 파일을 다운받으려고 찾아보는데 도무지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혹시 게시글 링크를 걸어주시면 안될까요?
    • 2019.07.06 22:34 신고
      수정/삭제
      추천도서 파일을 작성한지 시일이 많이 지나서 목록의 적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어 일부러 삭제하였습니다.
  10. 우륵
    2019.06.26 20:47
    수정/삭제 댓글
    선생님 안녕하세요!
    최근에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 저로서는 어떻게 대답을 내려야 할 지 몰라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최근에 한 과학주의자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분은 세상에서 가장 엄밀한 학문은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철학적 방법론 자체도 엄밀하긴 하지만, 과학이 가진 경험의존성이야말로 우리 현실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더군요. 따라서 과학이 머지 않아 철학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저는 대륙철학쪽에만 관심을 두고 있어서 이러한 분석철학적인 주장에 대해 달리 어떻게 반박해야할 지를 모르겠더라고요. 학문이 어떤 참인 것을 밝히는 과정이라면 대륙철학이나 문학연구 등은 뭔가 열등한 것이 되는 걸까요??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찾아보니 과학주의에서 말하는 '인과적 폐쇄론'? 이런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진화론을 통해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저는 헤겔을 좋아하는데, "현대의 정치철학을 논의하는데 헤겔의 인정투쟁이론이 왜 필요한가? 현대의 과학적 연구만으로도 충분한데"라고 말하는데, 뭔가 할 말이 없더군요. 이 과정에 콰인과 '이론적재성' 등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좀 난감했습니다..
    달리 어디에 여쭤보아야 할지를 몰라서 글 남깁니다.. 혹시 철학 서적 중에 이런 문제들(과학주의와 기타 학문의 우위문제)을 다루는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추가덧글) 아 선생님, 그리고 학문이란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져있는지 밝히는 것에만 국한되는 것인가요?? 그러니까 세계를 바꾸는 실천은 운동가의 영역이고, 세계에 대한 이해는 연구자의 영역인 것인가요??
    • 2019.06.27 03:12 신고
      수정/삭제
      1. 다음 책을 참조하여 주십시오.
      힐러리 퍼트넘, <과학주의 철학을 넘어서>.
      앨런 차머스, <과학이란 무엇인가>.
      쇠렌 오버가르 (외), < 메타철학이란 무엇인가?>
      스티븐 툴민, <논변의 사용>.
      박병철, <쉽게 읽는 언어철학>.
      위 책 중 하나만 고르자면 스티븐 툴민의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위 소개된 책 중 가장 쉬운 책은 박병철 저의 책입니다.

      과학과 다른 학문을 예리하게 구분하고 과학의 지식체계로서의 우위를 주장하는 맥락에서 콰인을 인용했다면 콰인을 잘못 인용한 것입니다. 콰인은 오히려 과학과 다른 학문의 예리한 구분을 지우고자 했던 학자입니다. 예를 들어 콰인은 논리학조차도 과학의 일부라고 봅니다. 다만 그것이 경험적 테스트에 의해 논박되기에는 지나치게 이론의 내부에 있어서 그것을 논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을 분입니다. 수학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콰인은 유클리드의 삼각형 내각은 180도이다라든가 평행선은 만나지 않는다는 공리들은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물리학의 발전에 따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수립함으로써 변경된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이론적재성은 콰인만의 개념은 아니고 오늘날 과학철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개념입니다. 즉 어떤 사실명제의 테스트와 테스트 통과/실패의 판단도 그 판단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보조가설들을 내포하는 이론이 짐지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명제 단 하나만 떼어내서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긴밀하게 연결된 이론 전체를 검토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용어입니다. 콰인의 입장은 그의 가장 중요한 논문들을 번역한 모음집인 허라금 역, <논리적 관점에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2. 세계에 대한 탐구와 탐구된 진리의 공유와 검토는, 인간의 실천 중 중요한 일부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 책 <삶은 왜 의미 있는가> 제13장과 제14장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 철학은 이차적으로 사고하는 활동입니다. 즉 철학은 무엇인가를 메타로 검토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과학 내부에서 지식을 확립하는 방법론 자체가 타당한 방법인가를 검토하는 체계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검토를 과학철학이 합니다. 우리가 인습적으로 받아들이는 도덕도 그 도덕 규칙에 어긋나는 것과 어긋나지 않는 것을 가려내줄 뿐 그 도덕 규칙 자체가 정당한가, 그것이 정당하다고 검사하는 방법이 정당한가를 내부에서 알 수 없습니다. 그런 검토를 도덕철학이 합니다.
      우리의 정치체계도(심지어 헌법도) 스스로 정당성이 있다고 자기선언을 할 뿐이지, 그 정당성을 메타로 검토할 이론적 자원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 역시 정치철학이 할 일입니다.
      철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점의 생활세계와 체계에서 주어진 배경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지 않고 정말로 그 배경은 받아들일 만한 것(앎, 또는 옳은 규범)인가를 메타적으로 조사해 들어가는 탐구 활동입니다. 과거 철학자들의 사상은 자기 나름대로 그런 탐구를 한 자신들의 결과물입니다. 정치철학을 한다 함은 그런 결과물들의 개념들을 엮어 읊고는 보기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질서의 정당성을 검토하고 부당한 것을 가려내고 정당한 것을 제시하는 이성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이성의 능력을 발휘함에 있어 과거 선학자들이 나름대로 탐구한 결과들이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과거 철학자의 탐구 내용을 아는 것은, 성급히 메타문제에 답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철학에서 다루는 문제의 맥락과 진의, 그리고 실패한 방법, 유망한 방법을 가려내기 위해서 필수적인 기초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구체적인 주장 내용이 정말로 유용하고 유망한 참조점이 되는가는, 그것을 주장하는 이에게 입증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니 헤겔의 인정투쟁이론이 없었다면 해결하지 못했을 현 시대의 정치철학적 문제를 풀이하는 글을 쓸 수 있는가 쓸 수 없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추상적으로 과거 특정 철학자의 이론은 도움이 안된다느니 아니면 도움이 된다느니 하는 공론은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 풀이에 유망하다는 어떤 근거 있는 직감이 든다면, 그 문제 풀이틀을 좀 더 부여잡고 발전시켜서 해결책을 공유하면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악셀 호네트는 헤겔을 가지고서 그런 일을 했습니다. 저는 호네트의 번역된 세 권의 책을 읽은 현재, 한 명의 독자로서, 악셀 호네트의 작업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그것은 그의 이론틀이 아니고서는 포착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포착하거나 해결하지도 않으며, 범주들을 혼동시키고 섞어놓으며 권리의 지위에 승격할 수 없는 것들까지 끼어 있는 이해관심의 주장을 그런 지위에로 승격시키는 겉보기의 지렛대를 제공한다는 것이 한 명의 독자로서 저의 판단입니다. 다른 독자는 달리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독자는 악셀 호네트의 이론의 결점을 고치고 수선하고 더 발전시켜서 무언가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일에 착수하기 전에 그것이 과연 다루고 있는 주제에 비추어 보아 유망한 것인지는 검토해볼 만합니다.

      탐구의 방법은 그 탐구의 주제 영역에 따라 적합한 것이 정해집니다. 철학은 메타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활동에 적합한 방법론이 있습니다. 이는 수학의 방법론이 물리학의 방법론과 다른 것, 도덕철학의 방법론이 인류학의 방법론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자세히 논의한 것이 스티븐 툴민의 책이므로 일독을 권합니다. 영어로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없으시다면, T. M. Scanlon의 Being Realistic About Reasons도 일독을 권합니다.
    • 우륵
      2019.06.27 22:35
      수정/삭제
      세심한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최근에 악셀 호네트의 책도 샀었는데 바로 언급을 해주시네요 ㅎ
      매번 느끼지만 선생님 덕분에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갑니다. 지식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만 하는게 아니라, 그 지식이 서 있는 바탕들도 이해하는 것이 진짜 철학 공부인 것 같습니다. 추천해주신 책(선생님 책은 나오자마자 구매했었습니다 ㅎ)들 꼭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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